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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탐지견 실험, 학교에 맡긴 '셀프 심의' 도마에

송고시간2019-05-0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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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 제출한 계획서에 '탐지견' 명시…예외인정 심의 실효성 의문도

검역 탐지견 '메이' 서울대 실험 전후 사진
검역 탐지견 '메이' 서울대 실험 전후 사진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서울대 연구팀이 은퇴한 탐지견을 실험에 사용하고 학대했다는 의혹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실태 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관련 심의 절차에 근본적인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학계와 당국 등에 따르면 이번에 논란이 된 서울대 이병천 교수 연구팀은 2017년 2월 농림축산부 장관과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장 앞으로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 과제의 '연차실적·계획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2016년 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5개년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 가운데 2017년 3∼12월의 세부 계획이 담겼다.

해당 프로젝트는 5년간 총 25억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돼 있다.

계획서는 이 연구를 두고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해 '신품종 우수 검역탐지견'을 복제 생산하고 이 세포를 기반으로 유전자 편집기술을 적용 후 집중력과 운동능력이 2배 이상 향상된 스마트 탐지견을 개발할 것"이라며 "이들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검증 평가해 검역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소개했다.

구체적인 연구 내용으로는 ▲ 현재 활동 중인 우수 검역 탐지견의 체세포를 뱅킹(보관)했으며 지방 유래 성체 줄기세포를 세포 뱅킹 ▲ 우수 검역 탐지견의 복제 생산을 위해 세포주 확립 ▲ 2마리의 대리모로부터 총 3마리의 복제 개 생산 등을 적시했다.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 과제의 '연차실적·계획서' 일부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 과제의 '연차실적·계획서' 일부

관할 부처인 농식품부에 보고된 내용에서 분명히 동물보호법이 금지하는 현역 사역견 실험이 포함된 것이다.

동물보호법 제24조는 동물실험 금지 대상으로 '사람이나 국가를 위하여 사역(使役)하고 있거나 사역한 동물'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농림축산식품부령 시행 규칙은 예외적으로 ▲ 인수공통전염병 등 질병의 진단·치료나 연구 ▲ 방역 목적 실험 ▲ 동물 또는 동물 종의 생태·습성 등에 관한 과학적 연구에 대해서는 이를 허용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문제의 서울대 연구가 공항 등에 투입되는 검역 탐지견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방역 목적에 해당하는지 살펴볼 여지가 있을 것"이라며 "개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연구가 예외 사례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문턱은 하나 더 있다.

바로 동물실험 시행기관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동물실험이 타당한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탐지견 '메이'가 이 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는지는 현재 실태 조사 중"이라며 "조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역견도 예외적으로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한 이 심의 제도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기관이나 제3자 기관이 아닌 실험 시행기관, 즉 학교 측이 주관한다는 데에 의문을 제기한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용역비를 따낸 상황에서 이 같은 '셀프 심의'가 과연 엄정하게 연구를 들여다보고 필요하다면 '노'(NO)를 밝힐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 평가서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 평가서

더구나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 프로젝트의 평가서에는 ▲ 연구 목표 및 내용과의 부합 정도 ▲ 기술 개발 수행 능력 ▲ 기술 개발 추진 전략 ▲ 기술 개발 결과의 실용화 및 산업화 가능성 등의 항목이 있지만, 실험의 윤리성이나 실험동물의 복지를 따지는 부분은 없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제2의 메이' 사례를 막으려면 연구 윤리 관련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비글구조네트워크 관계자는 "당시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받은 심의 계획서에 메이가 국가 사역견이었다는 부분이 명시돼 있는지 궁금하지만 공개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며 "위원회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운영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외부에서 관리·감독하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처벌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동물실험을 엄격하게 해야 할 터인데, 그 요건을 엄격하게 하자는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심의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며 "외국의 규제 사례와 다양한 목소리를 살펴본 뒤 필요하다면 제도 개선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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