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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이주노동자에게 인권을> ①2만명 농촌 잔혹사

송고시간2014-03-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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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에 최저임금도 못받는 현대판 '농노'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최근에 건네받은 사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두 명은 충남 논산에 있는 한 농장에서 9개월여간 일하다 더 참지 못하고 나왔다. 사진 속 비닐하우스 안의 농기계 뒤쪽에 있는 작은 가건물이 이들에게 제공된 숙소다.

<※ 편집자주 = 국내 농축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수가 2만 명에 달합니다. '3D' 업종으로 꼽히는 국내 제조업의 노동력 공백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웠듯, 우리 농축산업 역시 외국인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 기반 자체가 영세한 농축산업 현장에서 이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이주노동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및 인권 실태와 제도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특집 기사 3건을 24∼26일 사흘에 걸쳐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경기 이천의 농장에서 일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차이 스레이 오운(24·여) 씨의 하루는 아침 6∼7시 시작됐다.

그는 비닐하우스에서 치커리, 상추, 겨자, 시금치 등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일을 했다. 6월부터 9월까지 비닐하우스 안은 찜통처럼 더웠고, 허리를 펴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점심을 먹는 30∼40분 정도였다. 10월에는 특히 일이 많아 하루 11시간씩 29일을 일하고 이틀밖에 쉬지 못했다. 한 달간 일한 시간은 309시간이었다.

하지만, 가장 일을 많이 한 10월에 차이 씨가 받은 월급은 118만5천100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4천860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그가 받아야 할 월급은 150만1천740원이다.

비닐하우스 일은 겨울로 접어든 11∼12월에도 별로 줄지 않아 하루 9∼10시간씩 꼼짝없이 일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각각 246시간씩 일하고 받은 돈은 107만3천320원과 102만4천770원이었다. 법정 최저임금대로라면 119만5천560원을 받았어야 했다.

1월이 되어 일감이 확 줄자 고용주 이모(62) 씨는 열흘간 "일이 없다"며 차이 씨를 강제로 쉬게 하고 달랑 66만9천940원의 월급을 줬다. 차이 씨가 "휴업 급여를 주든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근로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될 일이 아니었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최근에 건네받은 사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두 명은 충남 논산에 있는 한 농장에서 9개월여간 일하다 더 참지 못하고 나왔다. 사진 속 가건물 방 안이 이들이 잠을 잔 곳이다.

이 씨는 "쉬는 동안 다른 곳에 다녀오라"며 숙소의 전기와 난방을 끊어버렸고, 차이 씨는 비닐하우스 가건물 숙소에서 혹독한 추위에 떨며 한겨울 추위를 견뎌야 했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농노'와도 같은 삶을 산 차이 씨의 사례는 국내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3D 업종으로 분류돼 내국인 노동력이 빈 제조업 분야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웠듯, 1차산업인 농축산업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 몫을 해내고 있다.

24일 확인한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1월 말 현재 농업 분야 취업 비자로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총 1만7천603명(합법체류 1만4천267명, 불법체류 3천336명), 축산업 분야는 총 1천865명(합법 1천758명, 불법 107명)이다. 농축산업을 합치면 총 1만9천468명에 달한다.

성별 구성은 농업이 남성 1만1천724명, 여성 5천879명이고 축산업이 남성 1천830명, 여성 35명이다. 농축산업 분야의 여성 이주노동자 비율은 30.4%, 농업만 보면 33.4%나 된다. 이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의 비율 9.6%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국내 농축산업에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온 것은 2003년부터다. 국내 농촌의 고령화와 함께 농축산업 분야 노동력의 공백이 생기면서 정부는 농업 부문에도 산업연수제를 도입했다. 첫해 923명이 외국인 농업연수생으로 들어왔고, 2004년 고용허가제로 바뀌면서 농축산업 분야 고용허가 쿼터로 그해와 이듬해 1천 명씩, 2007년 3천600명, 2008년 5천 명이 배정됐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들이 해외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외국인 노동자 쿼터는 계속 늘고 있다.

2012년 4천500명이던 것이 지난해 6천 명, 올해도 6천 명이 배정됐다. 고용노동부는 2012년까지 사업주에게 선착순으로 고용 기회를 줬는데, 농축산업 사업주들이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으려 고용센터 앞에서 장시간 대기할 정도였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인권 사각지대에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인권 사각지대에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최근에 건네받은 사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두 명은 충남 논산에 있는 한 농장에서 9개월여간 일하다 더 참지 못하고 나왔다. 사진 속의 취사도구로 밥을 해먹어야 하는 열악한 생활 환경이었다.

지난해부터는 여러 항목의 평가지표에 따른 점수제로 바꿔 이주노동자를 배정하고 있지만, 농촌 일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이주노동자들의 고용 수요는 여전히 높다.

그런데 사업장별 고용 규모가 2∼3명 수준으로 작고 지역적으로 고립돼 있는 농축산업 특성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뒤늦게 알려질 수 있었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 수가 2만 명에 육박하면서 이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가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지난해 10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대상 이주노동자 161명 중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가 33.5%나 됐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계약 내용 자체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경우가 61.1%나 됐다. 이 중 90.7%가 근로계약서보다 더 긴 근무시간을 강요당했고 17.3%는 휴일이 근로계약상 일수에 못미쳤다.

이들의 실제 근무시간은 월 평균 283.7시간에 이르고 월 평균 휴일은 2.1일에 불과했다. 이렇게 일하면서 받는 임금은 월평균 127만2천602원(남성 131만8천579원, 여성 117만7천995원)으로, 법정 최저임금 월 137만8천782원보다 적었다.

임금을 늦게 지급하는 경우가 68.9%, 아예 지급하지 않은 경우가 32.9%, 휴일 일당을 임금에서 공제한 경우가 26.1%, 벌금 명목으로 임금에서 일부를 공제한 경우가 12.4%였다. 시간 외 근로와 휴일 근로를 강제로 시킨 경우도 57.8%나 됐다.

특히 농한기가 있는 작물재배업의 경우에는 고용주가 임금을 주지 않거나 마음대로 해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농한기에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받았다는 응답이 23.1%, 아예 해고됐다는 응답이 12.4%였다.

농장에서 불법으로 노동자들을 다른 농장에 '빌려주고 돌려쓰는' 사례도 많았다. 설문 대상 161명 중 98명(60.9%)이 인근의 다른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그 횟수가 '네 번 이상'이라는 응답이 71.4%나 됐다.

어느 이주노동자는 "사장이 나를 팔았다. 사장이 일당 6만 원을 받고 내게는 4만 원을 줬다"며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한탄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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