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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를 애도하며

송고시간2015-03-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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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리콴유(李光耀. 91세) 전 싱가포르 총리가 23일 타계했다. 19세기 초까지 말레이시아, 네덜란드 영향권에 있던 항구도시를 거쳐 영국의 작은 자치 정부에 불과했던 싱가포르의 오늘을 설계한 인물이다. 식민통치, 동서 냉전이라는 어둡고 혼란스런 시기를 헤쳐오며 싱가포르의 경제 번영과 사회 안정을 달성했다. 동시에 부정부패에서 깨끗한, 작지만 강한 국가의 토대를 세웠다. 엘리트 위주의 권위주의 통치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싱가포르를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8위이면서 국가 청렴도는 세계 5위로 성장시킨 신화의 배경엔 그의 강력하고 실용주의적 리더십이 있었다는데 큰 이견이 없다. 싱가포르 국민과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싱가포르의 '국부', 전후 아시아의 위대한 전략가로 존경하는 까닭일 것이다.

부유한 화교집안에서 태어난 리콴유는 영국 유학을 마치고 변호사로 일하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했다. 35세이던 1959년 자치정부 총리를 맡았고 싱가포르가 독립한 1965년 초대 총리로 취임한 뒤 26년후인 1990년 총리에서 물러났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31년간 총리를 맡으며 그는 창조적 실용주의와 강력한 권위주의를 결합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경제 정책에 있어선 이념을 초월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했다. 전 국토의 80% 이상을 국유화, 공공아파트를 지어 서민층에 보급했고 세계 초일류 컨테이너 항구 및 창이 국제공항 건설, 국제금융기관 유치 등을 추진해 싱가포르를 오늘날 동서양의 물류,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게 했다. 공직사회가 뇌물 등 부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지급하는 동시에 부정부패에 대해선 단호했다. 자치정부 총리 시절 부패방지법을 개정, 공직비리조사국(CPIB)의 권한을 강화하고 총리 퇴임 1년 전에는 부정축재 몰수법을 제정했다. 총리에서 물러난 1990년 1만 2천750달러이던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지난해 5만 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 경쟁력 조사에선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 청렴도 순위는 세계 5위다. 그에게 싱가포르의 설계자란 또 다른 호칭을 붙일 수밖에 없는 화려한 성적표다.

물론 그의 이런 리더십에 논란과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기집권, 지나친 엘리트 위주의 통치시스템, 노조 활동 억압, 무거운 벌금과 태형 등 전근대적 사회통제 기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경제성장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아시아 고유의 민주주의를 채택할 수 있다는 그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공과(功過)를 따지기엔 아직 싱가포르의 성취, 이를 가능케 한 그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더 높은 것도 사실이다. 리 전 총리는 지난 2007년 한 서방언론과 인터뷰에서 부존자원이 없는 다민족 국가 싱가포르의 `생존'을 국정의 최고 기준으로 삼고 이를 위해 `반부패, 효율성, 엘리트주의'를 추구했다고 밝혔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이지만 부패하지 않는 청렴결백함이 있었고, 엘리트 중심의 경제ㆍ사회 발전전략을 추구하면서도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실용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기에 싱가포르의 성공은 가능했다. 미래에 대한 통찰과 혜안으로 현대사 격동기를 국가의 대도약이란 성과로 마무리해낸 고인의 긴 여정은 끝났다. 리 전 총리의 영면을 기원하며 싱가포르 국민과 정부에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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