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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러 통상 가교 될래요"…'한·러' 동시변호사 조현식씨

송고시간2018-05-0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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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수능실패 후 러시아 유학…현지변호사 된 뒤 올해 변시 합격

6년반 유학 중 1년반 어학만…수업 준비에 밤새우기 일쑤

인종주의자에 집단폭행 '여기서 포기하면 끝'이란 생각으로 버텨

한국-러시아 변호사 된 조현식 씨
한국-러시아 변호사 된 조현식 씨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조현식(29) 변호사가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조 변호사는 모스크바 국립법률대와 서강대 로스쿨을 나와 러시아와 한국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2018.5.8
jk@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20대는 '수능 실패'와 함께 시작했지만, 30대는 '한국-러시아 동시 변호사'라는 화려한 법조 타이틀로 문을 열었다.

모스크바 국립법률대(MSAL)에서 러시아 변호사 자격을 따고서 서강대 법률전문대학원을 나와 올해 한국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조현식(29) 변호사 얘기다.

8일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이달 기준 협회에 등록된 변호사 중 러시아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한국과 러시아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아무런 시련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거 같은 조 변호사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의외였다. 10년 전 '수능 실패'가 러시아로 건너간 계기였다고 했다.

그는 "호기심이나 도전 정신 같은 말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고3이던 2007년 수능을 망쳤던 것이 러시아로 넘어간 솔직한 이유"라며 "소위 '스카이(SKY)'급 학교를 노리던 터였는데 만회를 위해 재수와 제3의 길을 고민하다가 러시아를 택했다"고 떠올렸다.

당시 수능을 어느 정도 망쳤는지 묻자 "점수를 보고는 원서 낼 생각도 안 했던 터라 정확히 감이 안 온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그땐 부모님도 '단순히 영미권을 갈 생각이라면 반대'라고 하셨고, 러시아는 어느 정도 '블루오션'이라고 봤다"며 "고3 때 '수능을 못 보면 외국으로 튀자'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게 현실이 돼 버렸다"고 웃었다.

수원에서 학교에 다녔던 공립고 졸업생의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연고가 없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낡은 시설과 차량을 보고서 '여기가 러시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생활에 필수였던 러시아어는 걸음마부터 배웠다. 유학생활 총 6년 반 중 처음 1년 반을 어학에 쏟아부었다.

그는 "'다음 날 수업 준비만 다 해가자'는 원칙을 세웠더니 처음엔 밤새우기가 일쑤였다"고 떠올렸다.

한국-러시아 변호사된 조현식 씨
한국-러시아 변호사된 조현식 씨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조현식(29) 변호사가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조 변호사는 모스크바 국립법률대와 서강대 로스쿨을 나와 러시아와 한국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2018.5.8
jk@yna.co.kr

쉽지 않았던 유학생활 중에 '인종차별' 극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지하철 한 정거장 가는 동안 세 명이 나를 폭행했다. 지금은 덜하지만, 당시 러시아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있을 법한 경험"이라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난 유학이었고, 거기서 못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공부의 벽도 높았다. MSAL은 세르게이 소뱌닌 현 모스크바 시장 등 유력인사를 배출한 러시아의 명문 학교다. 여느 유럽 학교처럼 입학은 비교적 쉬워도 학년 진급과 졸업이 어려워 조 변호사와 같이 입학했던 한국인 3명 중 2명은 중도 포기했다.

낯선 곳에서 고생한 끝에 2014년 러시아 변호사 자격을 땄지만, 기대만큼 기쁘지는 않았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그땐 '일차적으로 해냈다'는 기분이었고, 이젠 한국에서 변호사가 될 차례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로스쿨에 입학하고 올해 제7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서야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한국-러시아-북한을 연결하는 통상 전문 변호사다.

지난달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한층 긴밀해지고 있고 한반도 주변 4강인 러시아가 평화 무드 조성에 기여하는 과정에서 두 나라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로서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최근 한반도 정세를 볼 때 한국-북한-러시아를 가로지르는 철도나 가스관 건설이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하다고 본다"며 "한국과 러시아 법에 정통한 전문가가 거의 없는 만큼 제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러시아는 법조문은 다 갖춰져 있지만 1991년에야 사회가 개방됐기 때문에 그 후의 판례 축적이 아직 부족한 편"이라며 "한국이나 북한과 관련된 판례 형성에 제가 많이 관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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