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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훈의 골프산책] '핫식스'는 미국 가서도 뜨거울까

송고시간2018-11-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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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진출을 결심한 이정은.
미국 진출을 결심한 이정은.

[KLPGA 제공]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지난 한달여 동안 국내 골프의 '핫이슈'는 이정은(22)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이정은의 미국 진출 여부였다.

지난 4일 이정은이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Q 시리즈에서 수석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다.

LPGA투어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을 얻었기에 당연히 내년에는 LPGA 투어에 진출할 것이라는 예상이었으나 정작 당사자의 말은 신중했다.

Q 시리즈가 끝난 직후 이정은은 "아직 영어도 못 하고 미국이 너무 크다고 느껴져서 결정하지 못했다"면서 "부모님, 스폰서 등과 얘기해봐야 할 것 같다"고 잔뜩 몸을 낮췄다.

귀국하자 공항 인터뷰에서는 "모든 것이 준비돼 있을 때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준비가 안 되면 못 간다'는 쪽에 방점이 찍혔다.

이어 시즌 최종전에서 상금왕을 확정한 이정은은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부분이 다 준비되어야 갈 수 있다"고 다시 한번 '준비'를 강조했다.

이정은은 그러나 "이번 겨울에 준비를 시작해서 시점은 언제인지는 몰라도 원하는 준비가 다 됐다고 판단되면 미국에 가겠다"고 말해 LPGA 투어 진출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때 그는 "안 간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면서 "가지 않을 수는 없지 않겠나. 다만 무작정 갈 순 없지 않으냐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만날 때마다 조금씩 미국 진출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정은이 미국 진출을 머뭇거린 가장 큰 이유는 부모와 시즌 내내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친 이정호(54) 씨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이다. 다른 선수 부모와 달리 미국에 가서 딸의 투어 생활에 동행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정은은 외동딸이다. 효심도 남다르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 그리고 이런 아버지를 옆에서 보살피는 어머니를 두고 미국으로 떠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외동딸을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헌신한 부모님이다.

부친 이 씨와 모친 주은진(48) 씨는 이런 딸에게 "더 큰 무대로 나아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걱정하던 정착 준비도 후원사의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확인하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그렇다면 LPGA 투어에서 이정은의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일단 연착륙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이정은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작년에 이어 상금왕을 2연패 했다.

LPGA 투어에 경기력이 크게 밀리지 않는 KLPGA 투어에서 상금왕을 2년 연속 차지했다는 사실은 이정은의 경쟁력이 LPGA 투어에서도 충분하다는 증거다.

지금까지 KLPGA 투어에서 상금왕에 오른 시즌 직후 LPGA 투어에 진출한 선수 가운데 연착륙에 실패한 사례가 없다.

가깝게는 2016년 KLPGA 투어 상금왕 박성현(25)이 LPGA 투어에서 신인왕과 상금왕까지 꿰차며 화끈한 루키 시즌을 보냈다.

2015년 KLPGA 투어 상금왕에 올랐던 전인지(24) 역시 이듬해 LPGA 투어에서 가볍게 신인왕을 차지했다.

2014년 상금왕 김효주(23), 2013년 상금왕 장하나(26)도 LPGA 투어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정은이 특별한 단점이 없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사실이다.

이정은은 올해 드라이버샷 비거리 9위(평균 250.229야드), 그린 적중률 10위(76.96%), 평균 퍼트 3위(평균 29.46개) 등을 찍었다.

장타력과 정확한 아이언샷, 그리고 그린 플레이 모두 정상급이다.

이정은은 2년 연속 60대 타수로 평균 타수 1위에 올랐다. 60대 시즌 평균 타수는 지금까지 신지애(30), 박성현, 그리고 이정은 셋밖에 해내지 못했다.

이정은은 올해 LPGA 투어 대회에 6차례 출전했다. 톱 10 입상 한 번(에비앙 챔피언십 6위)에 컷 탈락 한번(KPMG 여자 PGA챔피언십)을 경험했다.

국내에서의 활약에 비교하면 크게 두드러지는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컷 탈락 한 번을 뺀 5차례 대회에서 20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국내 투어를 뛰면서 원정을 다닌 결과치고는 나쁘지 않다.

LPGA 투어 대회 6번 출전해 벌어들인 상금 27만7천500달러는 올해 LPGA 투어 상금랭킹 67위에 해당한다. 올해 상금랭킹 67위 마리아 스택하우스(미국)는 26차례 경기에 출전해 27만3천260달러를 받았다.

KLPGA 투어 대회가 열리는 코스는 LPGA 투어보다 전장이 다소 짧을 뿐 난도는 큰 차이가 없다. 그린 경도나 스피드도 KLPGA 투어도 수준급이 많다.

이정은은 또 공격적 성향의 경기 스타일과 강인한 승부 근성이라는 무기를 지녔다.

LPGA 투어에선 타수를 지키는 스타일보다 적극적으로 버디를 노리는 선수에게 유리한 코스 세팅이 추세로 자리를 잡았다.

이정은은 수비보다는 공격을 더 선호하는 경기를 펼치는 선수다.

지고는 못 사는 승부 근성으로 KLPGA 투어에서 손꼽는 '악바리'로 통하는 선수가 이정은이다.

이정은의 경기력과 근성이라면 LPGA 투어에 전념할 경우 당장 1승 이상은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이정은이 내년 시즌 LPGA 투어에서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스크가 없지는 않다.

이정은의 염려된다고 자주 언급한 '영어 리스크'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원 인력 등 완벽한 준비만 한다면 영어가 서툴러서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은 거의 없다고 보인다.

가장 큰 숙제는 시즌 내내 숨 가쁘게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LPGA 투어의 고단한 일상과 외로움 등을 어떻게 이겨내느냐다.

일요일 경기가 끝나면 다른 대회 장소로 이동하느라 쉴 틈이 없는 일정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투어 생활은 심신을 지치게 한다. 더구나 늘 옆에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던 가족도 없다.

이정은의 근면성과 승부 근성이 외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이정은은 KLPGA 투어에서 연습을 열심히 하는 선수로 정평이 났다.

시즌 중에도 연습량이 많은 편이다. 연습량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적으면 불안하게 느낄 정도다.

대회 장소 간 이동 시간이 길고 3라운드 대회가 거의 없는 LPGA 투어 무대에서 뛰려면 시즌 중에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하기 어렵다. 짧은 시간 안에 밀도 높은 연습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강한 근성 역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US여자오픈 우승이 나오기 전까지 박성현이 겪은 시련은 "이러려고 미국 온 게 아닌데…"라는 초조감과 낭패감에서 비롯됐다.

2년 가까이 우승 없이 보낸 전인지가 3번째 우승을 차지하고선 보인 눈물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 쌓은 명성과 기대에 걸맞은 성과(우승)를 하루빨리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이기고 싶다'는 근성과 맞물린다. 이를 어떻게 다스리냐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이정은은 이런 리스크를 잘 파악하고 있다.

"안정적 적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면서 "성적이나 타이틀 욕심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다"는 출사표는 이런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 나겠다는 자기 암시나 다름없다.

박세리 이후 KLPGA 투어 무대를 석권한 스타 선수는 거의 예외 없이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냈고 대부분 성공했다.

이정은 역시 2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성공 DNA'를 장착하고 장도에 오른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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