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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답하다] 안병우 위원장 "민족 동질성 회복, 역사에서 찾아야"

송고시간2018-12-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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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은 남북교류의 가장 모범적 사례"

"금속활자 발굴…개성역사지구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여"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안병우 공동위원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안병우 공동위원장

(서울=연합뉴스) "남한과 북한은 1948년 분단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유구한 한반도의 역사를 함께 해왔기 때문에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에서 찾아야 합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안병우 공동위원장은 민족의 동질성 회복 차원에서 역사학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안 위원장은 "남북의 학자들이 역사의 공통적 소재와 문화재에 대해 얼마든지 많은 얘기를 나누고 공동으로 사업을 벌일 수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교류이며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고려사를 전공한 안 위원장은 2004년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출범부터 실무 역할을 맡았으며 지금은 공동위원장으로 이 학술 단체를 이끌고 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북측과 공동으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9년간 모두 7차례에 걸쳐 고려의 정궁(正宮)인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고려의 사회상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를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를 발굴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만월대 발굴조사는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2016년에 중단됐다가 최근 3년 만에 재개돼 8차 조사를 벌이고 있다.

-- 평소 역사학 분야의 남북교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 남북관계는 여러 측면이 있는 것 아니냐? 그런데 정치·군사적 측면이 남북관계의 모든 면을 좌지우지하면 독자적으로 해나갈 분야가 없다.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컨대 인도적 지원은 정치·군사적 상황이 어떠하든 지속해서 추진해나가야 한다. 문화·학술교류도 마찬가지다.

남북은 1948년 분단 정부가 각각 들어선 이후 정치체계와 이념을 달리하기 때문에 각 분야에서 이질적 요소가 켜켜이 쌓였다. 그러나 분단의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구한 한반도의 역사를 남북이 함께 해왔다.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역사학 분야는 소재의 공통성이 풍부하다. 문화재 역시 남북이 공동으로 향유한 선조들의 유산이다. 남북은 공통의 역사적 소재와 선조들의 유산에 대해 얼마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학술대회와 발굴조사 등 공동사업도 벌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교류이며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이다.

-- 남과 북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지 않은가.

▲ 북한은 기본적인 사상체계가 유물사관에 입각한 주체사상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여서 다양한 역사관이 존재하며 대체로 발전적인 역사관을 지닌다. 남과 북이 관점과 시각에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에 대해 남한은 7세기 중엽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로 본다. 북한은 고려를 최초의 통일국가라고 가르치고 배운다. 후삼국 통합을 진정한 한반도 최초의 통일로 여기는 것이다.

단군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우리는 단군을 설화 속 인물로 보고 이 설화가 당시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부합하는가,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런 설화가 만들어졌는가를 파악하려 한다. 북한은 단군을 실존 인물로 여기고 있다. 1993년에는 평양시 강동군의 단군릉을 발굴해 단군과 부인의 유골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외적이 침입했을 때 대응한 전쟁에 대해서 남한은 객관적 시각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반면 북한에서는 인민들의 항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처럼 상이한 관점과 해석의 차이를 좁혀나가기 위해서라도 역사학 교류는 필수적이다. 통일 이후를 내다보고 분단의 경험을 역사 해석 속에 어떻게 녹여나갈까 하는 고민을 남과 북이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

-- 개성 만월대에 대한 남북 공동발굴이 최근 재개됐다.

▲ 만월대 발굴은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사업이다. 2007년 5월 역사적인 남북공동발굴조사의 첫 삽을 뜬 후 9년간 7차 공동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2015년 10월에는 서울과 개성에서 '남북공동 출토유물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후 정치·군사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발굴조사가 끊겼다가 지난 10월 22일 8차 조사를 착수했다. 이번 조사는 이달 10일까지다. 우리 학자 10명이 개성공단 내 송악프라자에 기거하면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공동발굴조사에 참여한 북한 학자는 과거 20명이었는데 이번에는 두 배로 늘어났다. 11억600만 원의 예산도 확보됐다.

-- 만월대 공동발굴의 의의와 성과라면.

▲ 만월대 공동발굴은 남북교류의 가장 모범적 사례다. 남북의 학자들이 협력해서 계획을 세우고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북한이 국보유적 제122호로 지정한 만월대는 919년(태조 2년) 건립된 이후 약 440년간 고려왕조의 중심으로 자리했다. 궁성의 규모는 둘레 2천170m, 넓이는 25만㎡다.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하는 지역은 궁성 내 서부건축군 3만3천㎡이다. 중앙건축군은 의식(儀式)을 하던 곳이고 서부건축군은 실질적인 궁궐의 중심 공간이다. 발굴조사의 성과라면 5대 왕의 초상화를 봉안한 경령전(景靈殿)과 왕이 조회하거나 외국의 사신을 맞아들이던 건덕전(乾德殿) 등 기록에만 남아있던 주요 전각의 유구를 거의 온전한 형태로 발굴해냈다는 점이다. 만월대는 거란의 침입과 이자겸의 난, 무인정변 때 화재로 소실돼 여러 차례 다시 지었다. 발굴조사에서 이런 층위(層位)들도 모두 확인됐다. 이밖에 명문 기와와 청자 등 최고급 궁중 유물 2만여 점을 발굴했다. 이 발굴조사가 2013년 개성역사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큰 결실로 이어졌다.

--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도 공동발굴했다.

▲ 7차 발굴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극적으로 금속활자가 출토됐다. 북측은 1956년 만월대 유적 보수·정비 과정에서 '이마 전(方+角+頁)'자가 새겨진 금속활자 1점을 수습했었다. 북측의 제안으로 2015년 6월부터 금속활자가 출토된 지역에 대해 집중적인 발굴조사를 벌였지만 5개월이 넘도록 금속활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조사단의 애를 태웠다. 조사를 마무리 지어야 할 무렵인 그해 11월 14일 자전에 없는 옛 글자로 '전일할 전(女+車+寸)과 비슷한 금속활자 1점을 발굴했다. 크기는 가로 1.36㎝, 세로 1.3㎝, 높이 0.6㎝, 글자 면을 제외한 몸체의 두께는 0.16㎝다. 북한은 단독으로 추가 발굴조사를 벌여 '물 흐르는 모양 칙(水변에 仄)', '지게미 조(糟)', '이름 명(名)', '밝을 명(明)' 등의 글자를 새긴 금속활자 4점을 추가로 발굴했다. 만월대는 홍건적의 난으로 소실된 1361년까지 황궁으로 사용됐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1455년에 제작됐다. 따라서 만월대 출토 금속활자는 서양보다 1세기를 앞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월대 추가 발굴조사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자 세계문화유산인 금속활자가 더 출토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 향후 계획은.

▲ 만월대 서부건축군에 대한 발굴조사는 목표의 70% 정도 이루어졌다. 나머지 동부건축군 등도 발굴에 나서야 한다. 붕괴 위험이 큰 축대도 보수·복원작업을 벌여야 하고, 유물보존센터도 건립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고려박물관을 신축해야 한다. 현 고려박물관은 북한이 사적 50호로 지정한 개성의 성균관의 건물과 부지를 활용했다. 성균관 내 대성전 등을 전시공간으로 쓰고 있는 형편이다. 성균관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역사유적이다. 이곳 유물과 만월대에서 출토된 고려 시대 유물을 함께 보관·전시할 고려박물관을 따로 지어야 한다. 성균관도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해야 한다. 이런 계획에 대해 남북한 당국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북한 지역에 산재한 고구려 고분이 4천~5천 기에 달한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100여 기에 불과하다. 남북관계가 악화하자 중국, 일본, 프랑스의 학자들이 고구려 고분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선조들의 유적 발굴조사는 남과 북의 학자들이 협력해서 벌여야 한다.

※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안병우(64) 공동위원장은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로 33년간(1984~2017년) 교단에 섰으며 지금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2008~2009년)을 역임했으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한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의 상임공동대표를 10년째 맡고 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창립 회원인 안 위원장은 그동안 20차례 가까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역사학 분야의 남북교류에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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