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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쓰는 노수녀 "내 시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맹물"

송고시간2019-0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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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베드로 수녀, 동시 전집 '고향 마을' 출간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동시 전집 '고향 마을'을 펴낸 황 베드로 수녀가 책을 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동시 전집 '고향 마을'을 펴낸 황 베드로 수녀가 책을 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그저 자연을 보고 읊을 뿐이에요. 별을 보고 달을 볼 때마다 시상이 떠올라요. 시를 쓰면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아납니다."

올해로 수녀원에 입회한 지 60년 된, 여든을 눈앞에 둔 노수녀는 소녀처럼 행복한 얼굴로 동시를 쓰는 기쁨을 전했다.

약 50년에 걸쳐 출간한 동시집 13권과 신작 동시집 '마당 보조개'를 묶어 동시 전집 '고향 마을'(더비움 펴냄)을 펴낸 황 베드로(79) 수녀다.

19세였던 1959년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입회하고 1969년 종신서원을 한 황 수녀는 1970년 낸 첫 시집 '조약돌 마을'을 시작으로 평생 동시를 썼다.

1973년 새싹문학상, 1980년 소천아동문학상, 1989년 대한민국동요대상, 1991년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았고, '눈 온 아침', '흐린 날', '작은 것' 등의 작품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됐다.

신작을 포함해 총 899편 동시를 실은 이번 전집에는 그의 삶이 온전히 담겼다.

서울 청파동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서 만난 황 베드로 수녀는 "다른 분들 시를 보면 참 놀라운 게 많다"며 "내 시를 보면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맹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물이 마시고 싶을 때는 탄산음료보다 맹물이 낫지 않느냐"며 "무엇을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대로 소박하게 쓴다"고 덧붙였다.

강원도 원주에서 자란 황 수녀의 "맹물처럼" 맑고 꾸밈없는 시에는 자연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 나타난다. 그는 고향에서 어린 시절 보고 느낀 아름다운 감정을 빌딩 숲속에서도 다시 살려낸다.

그는 "기도하는 수도 생활이 단순해 어렸을 때 마음을 잃지 않은 것 같다"며 "아직 추운 봄날 화단에 식구도 없이 홀로 피어난 새싹, 새벽에 성당에 가려고 나서면 보이는 샛별, 초승달까지 자연을 보면서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황 수녀 시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오랜 수도 생활로 얻은 깨달음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웅덩이가 작아도/흙 가라앉히면//하늘 살고/구름 살고/별이 살고//마당이 좁아도/나무 키워 놓으면//새가 오고/매미 오고/바람이 오고"('작은 것')

황 수녀의 원고를 챙겨 전집 출간을 도운 윤재동 수녀는 "자연을 묵상한 아름다운 시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사욕을 가라앉히면 하느님이 주신 본성이 드러난다는 가르침이 들어있다"며 "종교적인 언어를 넘어서 각자 맑은 물에 담고 싶은 대로 담을 수 있게 표현하신다"고 설명했다.

황 수녀는 신앙심이 깊은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0남매 중 맏이인 그가 수녀가 된 것도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황 수녀에 이어 여동생 3명이 수녀가 됐고. 남동생 1명이 신부가 됐다.

시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월간지 '옥잠화'에 실으면서 본격적으로 쓰게 됐고 아동문학가 고(故) 윤석중, 김남조 시인의 도움을 받았다.

황 수녀는 "다른 걸 할 줄 몰라 그런 건데 수필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다른 이들과 달리 오로지 동시만 썼다고 윤석중 선생님이 생전에 칭찬을 하셨다"며 "다른 것은 수준이 완전히 바닥이라 동시만 썼더니 훌륭한 사람과 비슷하게 대우받았다"고 웃었다.

그는 "요즘은 은퇴해 다른 소임을 맡지 않고 새벽부터 기도하며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며 "정신이 있는 날까지 계속 시를 쓰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황 베드로 수녀의 동시 전집은 저자의 뜻에 따라 전국 어린이도서관 약 100곳에 기증됐다.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동시 전집 '고향 마을'을 펴낸 황 베드로 수녀가 책을 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동시 전집 '고향 마을'을 펴낸 황 베드로 수녀가 책을 들고 있다.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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