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3ㆍ1운동.임정 百주년](11)건국절 논란…"통일돼야 진짜 건국"

송고시간2019-01-16 06:00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10여년간 학계·정치권 충돌…'1919년'ㆍ'1948년' 주장 대립

"건국시점 특정 어려워…소모적 건국절 논란 지양해야"

1948년 정부 수립 경축식
1948년 정부 수립 경축식

[국가기록원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대한민국은 언제 세워졌는가?"

학계와 정치권이 오랜 시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갈등을 빚어온 물음이다.

건국 시점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큰 관심을 끌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규정하고,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설립해 각종 행사를 추진하면서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는 민감한 사안으로 부상했다.

당시 뉴라이트 학자와 보수 진영 정치인들은 우리나라가 일제 폭압에서 벗어난 1945년 8월 15일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1948년 8월 15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8·15를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에 역사학계 일부와 진보 진영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하면서 건국절 지정 시도에 '임시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각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건국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대립축인 1919년설과 1948년설에는 각기 나름의 논리적 근거가 있다.

우리나라가 1919년에 건국했다는 견해의 핵심 논거는 임시정부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그해 4월 1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임시헌장을 공포했다.

현행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해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승만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이라고 말했고, 그해 9월 1일 정부가 발행한 관보는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1919년설을 강력하게 지지해온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저서 '역사농단'에서 "이승만은 (해방 이후) 건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발언한 적도 없다"면서 이승만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잇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가 1948년에 건국됐다고 한다면 민족 정통성을 논의할 때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북한보다 우위에 설 수 없고, 해방 이전까지 한반도를 점유하고 통치한 주체가 누구였는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대두된다"고 역설했다.

3·1운동 대형 그라피티
3·1운동 대형 그라피티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퍼포먼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면 1948년설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임시정부가 국가 구성 요소인 영토·국민·주권을 갖추지 못했고 국제사회에서도 공인되지 않은 반쪽짜리 정부였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일제강점기에는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은 항일운동 세력도 있었는데, 1919년에 건국됐다고 한다면 많은 저항인사가 소외되거나 반역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임시정부가 1941년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도 1948년설을 뒷받침하는 사실로 거론된다. 건국강령은 총강(總綱)·복국(復國)·건국(建國)으로 구성된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논문 '건국 기점 논쟁'에서 "임시정부가 건국을 논의했다는 점은 임시정부에 의한 건국이 완전한 건국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1945년 해방 직후인 9월 3일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는 '건국의 시기로 들어가려 하는 과도적 계단'이라고 밝혔다"고 지적했다.

10여년간의 치열한 논쟁에도 결론이 나지 않은 대한민국 건국 시점은 2017년 광복절에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은 건국 100년이라고 밝히면서 일단락 지어진 듯하지만, 정부 성향이 달라지면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학계에서는 10년 남짓 끌어온 건국 시기 논쟁을 차분히 돌아볼 시점이 됐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1919년설과 1948년설로 나뉘어 싸우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건국기념일을 숙의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역사는 다이내믹해서 건국 시점을 특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임시정부처럼 10월 3일 개천절을 건국절로 삼을 수도 있고, 건국 운동의 시발점이 된 3·1절을 건국절로 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중요한 사실은 통일이 돼야 한반도를 아우르는 건국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점"이라며 "이제는 이데올로기에 치중한 건국절 논쟁을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psh59@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