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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속 3·1운동] ④ 韓人 여학생이 띄운 편지, '대륙의 심금'을 울리다

송고시간2019-02-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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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고 칼에 베이는 우리, 하늘 향해 울부짖습니다" 절절한 호소

中언론, 앞다퉈 전문 게재 속 동정 여론 기폭제 돼

전세계 언론이 주목한 3·1 운동
전세계 언론이 주목한 3·1 운동

(서울=연합뉴스) 3·1 운동과 독립선언 소식은 일본의 조직적인 조작과 통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아시아, 유럽, 남미 등 전세계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사진은 1919년 3월 이후 독립선언과 3·1 운동을 보도한 전세계 신문 지면을 합성한 것이다. 2019.2.15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 편집자주 = "조선 독립 만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한반도 전역을 울렸던 이 함성은 '세계'를 향한 우리 민족의 하나 된 외침이었습니다. 한민족이 앞장서 '행동'함으로써 제국주의에 신음하던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의 각 민족을 자각시켜 함께 전 세계적 독립운동을 끌어가자는 외교적 호소였습니다. 강대국의 이권 다툼이 판치던 당시 국제질서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자격을 얻었던 일본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고만장하던 일본이 두려워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움직이는 외신 보도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3.1운동 초기 보도통제와 '프레임 조작'으로 관련 보도를 막는 데 그야말로 전력투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이지, 진실을 감출 순 없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중국 상하이(上海)로부터 시작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D.C.에 이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러시아 모스크바, 브라질 상파울루, 싱가포르로 3·1운동 소식은 요원의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길지 않은 기사도 많았지만 이에 자극받은 각 식민지 국가에서는 앞다퉈 독립선언문이 나오면서 민족적 독립운동이 촉발됐습니다. 비록 한민족이 '자립'(自立)에는 실패했지만, 외신의 창(窓)을 통해 민족 자결과 독립에 대한 세계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포진한 특파원망을 총동원해 당시 외신 보도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지금까지 3·1운동을 보도한 외신 일부가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세계 주요국 별로 보도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발굴해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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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여학생의 독립 호소 편지 게재한 1919년 발행 민국일보
한인 여학생의 독립 호소 편지 게재한 1919년 발행 민국일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잔인한 일제의 3·1운동 진압상을 고발하고 파리강화회의 참석자들과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제시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대한의 독립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한인 여학생의 편지 전문을 보도한 1919년 3월 25일 중국 민국일보. 2019.2.15 [상하이도서관 민국일보 영인본]
cha@yna.co.kr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일제의 지배를 거부한 전 민족적 항쟁인 3·1운동 당시 독립 지지를 간절히 호소하는 한 한인 여학생의 편지가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한국 독립 지지 여론이 확산하는 데 기폭제가 된 사실이 연합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3·1운동의 열기가 한창 고조되던 1919년 3월 25일, 상하이에서 발행된 국민당 기관지 민국일보(民國日報)는 '조선의 여지사(女志士)가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슬픈 마음으로 울며 하늘을 향해 기도하다'라는 제목을 붙여 한 익명의 한인 여학생이 보내온 독립 호소 편지 전문을 게재했다.

'한인 여학생 호소 편지' 실린 민국일보 표지
'한인 여학생 호소 편지' 실린 민국일보 표지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일제의 3·1운동 진압상을 고발하고 파리강화회의 참석자들과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제시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대한의 독립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한인 여학생의 편지 전문을 보도한 1919년 3월 25일 중국 민국일보의 표지. 2019.2.15 [상하이도서관 민국일보 영인본]
cha@yna.co.kr

일제의 삼엄한 통제망을 뚫고 중국에 전해진 편지는 3월 10일 쓰인 것이다.

잔인한 일제의 3·1운동 진압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파리강화회의 참석자들과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제시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대한의 독립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제에 적발될 것을 우려해 실명을 밝히지 않은 필자는 "세계 각지 인민들이 모두 자유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있다"며 "우리 조선 인민 남녀노소 역시 일어나 우리가 받는 압제를 고발하고 조선의 독립을 호소한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우리는 매 맞고, 감금되고, 칼에 베이고 찔리고,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고, 살해당하고 있지만 저항하지 않고 두 손을 모아 우리나라의 자유와 권리를 원하는 것 뿐이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다"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조선의 독립을 인정해달라"고 절규했다.

이어 "이 편지가 파리강화회의에 실제로 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이 편지를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이 편지를 보시는 분이라면 우리의 아픔을 느끼시고 파리강화회의에 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필자는 3·1운동의 동력이 된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윌슨 대통령에게는 특별히 "저는 당신을 아버지 같이 여긴다"며 "우리의 독립 선언을 들어주시고, 세계 각국에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이 편지의 존재는 그간 알려진 적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외신이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 발생한 한민족 봉기의 발생과 진행 상황을 주목하던 때 3·1운동 현장에서 날아든 여학생의 편지는 중국에서 특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날 중국 신신보(新申報)도 이 편지 전문을 게재했다. 비슷한 시기 기독교 계열 신문인 통문보(通問報), 성공회 계열 주간지인 신민보(新民報), 베이징여자고등사범학교 문예지 등이 앞다퉈 같은 편지를 실었다.

"고려 여학생의 슬픈 목소리"
"고려 여학생의 슬픈 목소리"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조선 독립을 호소하는 한인 여학생의 편지 전문을 게재한 1919년 신민보 2019.2.15 [상하이도서관 근대문헌자료DB]
cha@yna.co.kr

당시의 중국의 언론 환경을 고려했을 때 가히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것이다.

중국 신문들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전하면서 필자를 '조선 여학생', '고려 여학생' 등으로 일부 다르게 표현했는데 이는 영어 또는 한국어로 쓰인 편지를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나타난 차이로 보인다.

그간 한국에서는 이 편지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 이 편지는 당시 중국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면서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강하게 각인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이 편지가 알려지고 난 이후 중국 주요 언론의 논조는 일본의 강압적인 한반도 통치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조선 독립을 지지하는 쪽으로 눈에 띄게 선회해 눈길을 끈다.

3·1운동 직후인 4월 11일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국민당 기관지인 민국일보는 3월 30일 '존경스럽고도 가련한 조선인들'이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를 싣고 한인들의 독립 의지를 높이 평가하면서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존경스럽고도 가련한 조선인들"
"존경스럽고도 가련한 조선인들"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존경스럽고 가련한 조선인"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에서 벌어지는 3·1운동 소식을 전한 1919년 3월 30일자 국민당 기관지 민국일보. 2019.2.15 [상하이도서관 민국일보 영인본]
cha@yna.co.kr

당시 일본 언론을 주로 인용하면서 3·1운동을 '소요 사태'로 주로 표현하던 대중지 신보(申報)도 1919년 4월에 접어들어서는 김규식의 파리강화회의 독립 청원 소식을 전하는가 하면 '한성 독립운동의 봉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는 등 한인 독립운동에 온정적인 논조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편지의 내용이 파리강화회의 참석자들이나 윌슨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인들의 굳건한 독립 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장차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주 무대가 된 중국에서 우호적인 여론을 끌어냈다는 점에서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래는 당시 중국 언론들이 보도한 위 편지의 전문

『파리 강화회의 참석자 여러분. 우리 조선의 여아(女兒)들이 하느님 앞에 성의를 다해 여러분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불행히도 여자의 몸으로 수치스러운 대우를 받고, 누차 모욕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이 억울함을 호소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만 합니까. 우리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지만 누가 우리를 가엽게 여기겠습니까.

세계 각지의 인민들이 모두 자유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조선 인민 남녀노소 역시 일어나서 우리가 받고 있는 압제를 고발하고 조선의 독립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매맞고, 감금되고, 칼에 베이고 찔리고 있습니다. 머리채가 잡혀서 끌려가기도 합니다. 우리의 집들도 파괴되었습니다. 정의가 사라지고 인도주의도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일요일에 예배당에서 모일 수도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기독교도인지 자주 질문을 받곤 합니다. 만일 그렇다고 답하면 그 자리에서 뭇매를 맞습니다. 이 때문에 살해당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항하지 않습니다.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이렇게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유와 권리를 원하는 것 뿐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불쌍히 여겨 조선의 독립을 인정해주시겠습니까? 여러분들께서 일본의 이런 잔혹한 학정과 불공평한 대우를 막아주시겠습니까? 이 편지가 파리강화회의에 실제로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 편지를 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보시는 분이라면 우리의 아픔을 느끼시고 파리강화회의에 전해주시겠습니까? 저희에게는 권력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만을 믿습니다. 필히 여러분들을 감동시켜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할 뿐입니다.

한일합방은 우리의 바람이 아니며 일본의 계략일 뿐입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님께 호소합니다. 저는 당신을 아버지 같이 여깁니다. 우리의 독립 선언을 들어주시고, 세계 각국에 알려주십시오. 이것은 제가 간절히 기도하는 바입니다. 조선의 여학생 올림. 1919년 3월 10일. 조선에서』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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