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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에 기증' 만세운동 기록 내방가사 어디로 갔나

송고시간2019-02-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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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유족 기증, 근거 서류도 없이 '행불'…시 "성과 없으면 수사 의뢰"

김해 만세운동 기록 '내방가사' 사본
김해 만세운동 기록 '내방가사' 사본

(김해=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1919년 경남 김해에서 벌어진 만세운동 주동자의 어머니가 만세운동과 아들의 재판에서 석방까지 전 과정을 '내방가사' 형식으로 작성한 희귀 자료가 김해시 관리부실로 사라져 이를 찾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유족이 원본을 기증하기 전 사진으로 촬영해둔 사본 마지막 부분. 2019.2.14
b940512@yna.co.kr

(김해=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1919년 경남 김해 장유에서 벌어진 만세운동 주동자의 어머니가 만세운동과 아들의 재판에서 석방까지 전 과정을 '내방가사' 형식으로 작성한 희귀 자료가 김해시 관리부실로 사라져 이를 찾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김승태 만세운동가'란 제목으로 추정되는 이 자료는 당시 김해 장유 만세운동 주동자 김승태의 어머니 조순남 여사가 기자 보다 더 생생하게 내방가사란 장르를 빌어 기록한 것이다.

일제 강점하 독립운동 사료나 문학 자료로서도 가치가 클 것으로 평가된다.

14일 조순남의 증손자인 김융일(77) 씨에 따르면 유족들은 2005년 장유 3·1운동 기념식장에서 만세운동가 원본을 김해시에 기증했는데 시에 확인 결과 자료 행방이 묘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씨는 "당시 시장이 참석한 시 주관 행사에서 친척 형님이 봉투에 넣어 자료를 전달하는 장면을 분명히 봤다"며 "할머니에 대해 최근 독립유공자 신청을 해, 곧 원본 자료가 필요할 것 같은데 자료가 없어졌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사실은 이홍숙 창원대 외래교수가 지난 13일 김해시청에서 열린 김해 3·1운동 100주년 학술회에서 '장유의 만세운동'과 조순남의 '김승태 만세운동가 관계 고찰'이란 제목으로 발표할 논문을 준비하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김융일 씨는 "지난해 이 교수가 논문 발표 준비를 하면서 알려져 함께 확인한 것은 맞지만 그전에도 시 관계자로부터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해시는 이 교수가 지난해 4월 자료 원본 열람을 요청했을 때 알았다고 해도 최소 10개월가량 자료분실 사실을 알고도 찾지 못했다.

유족 이야기대로 시가 그 전부터 알았다면 귀중한 사료를 기증받고 행방불명됐는데도 적극적으로 찾지 않고 방치, 무책임한 행정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시는 최근 뒤늦게 시청 자료실과 시문화원 수장고는 물론 향교 등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가 내부적으로 확인한 결과 만세운동가 원본을 기증받고도 이 사실을 확인할만한 근거 서류도 없어 자료와 함께 관련 서류도 찾고 있다.

"시에 기증한 자료 원본 찾아야"
"시에 기증한 자료 원본 찾아야"

(김해=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1919년 김해 장유에서 3천명이 넘는 주민들이 궐기해 '전쟁'을 방불케 했던 만세운동과 이후 재판 과정 등을 '내방가사' 형태로 기록한 자료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김승태 지사의 손자인 융일씨가 할머니의 기록 사본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2019.2.12
b940512@yna.co.kr

장유면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2일 김종훤과 김승태 등이 주축이 됐다.

지방 농촌지역으론 이례적으로 3천명이 넘는 군중들이 참여한 가운데 만세운동이 대규모로 벌어지면서 일본 헌병의 발포로 3명이 숨지고 일본 주재소가 부서지는 등 전쟁을 방불케 했다.

일본 헌병들이 주동자 검거에 나서고 지역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김승태와 김종훤 등이 나서 "우리가 주동자다. 죄 없는 주민들은 풀어주라"고 나서면서 사태가 진정됐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만세운동 과정을 비롯해 아들 김승태 등의 연행, 부산 형무소 수감, 재판, 출감 등 과정을 기록한 것이 김승태의 어머니 조순남 여사의 내방가사 '김승태만세운동가'다.

내방가사는 원래 두루마리 형식이지만, 이 자료는 37쪽 정도 분량의 소책자로 돼 있다.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양반집 교양을 갖춘 부녀자들이 한글로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내방가사는 규방가사 등으로도 불린다.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비롯해 생활 주변을 다룬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독립운동을 다룬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홍숙 교수는 "한 독립운동가의 어머니가 일제에 대한 울분을 참을 수 없어 친필로 기록해 뒀다"며 "만세운동이 대체로 구전으로 전해 오는데 이 기록으로 장유 만세운동 증거는 분명해졌다. 전국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소중한 자료로 판단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순남 여사는 일제 감시를 피해 책을 친정 종질녀에게 맡겨 몰래 보관해왔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장유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후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유족이 기증 전 자료를 모두 사진으로 촬영해둬 책 내용은 온전하게 전해진다.

김융일 씨는 "김해시에서 자료를 잘 찾지 못하면 청와대 국민청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청원을 통해 자료를 제대로 출간할 수 있도록 지원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해시 관계자는 "백방으로 찾고 있으며, 민간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면 자료를 제 자리로 돌려주도록 홍보할 예정"이라며 "성과가 없다면 수사 의뢰하는 방안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b94051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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