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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유적지를 가다] ③'저항의 시작' 인천 공립보통학교

송고시간2019-0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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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처럼 번진 인천 만세운동 시발점은 학생 동맹휴업

인천 최초 3·1운동 발상지 일대 만세운동 재연
인천 최초 3·1운동 발상지 일대 만세운동 재연

[인천시 동구 제공]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부산과 원산에 이어 1883년 개항장이 된 인천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주요 거점도시였다.

일찍부터 일본영사관을 비롯해 일본식 은행과 학교가 들어서는 등 일제 지배력이 절대적인 곳이었다. 1919년 당시 인천 인구 2만211명 가운데 44.4%인 8천973명이 일본인이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인천 지역 초기 3·1운동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활발하거나 강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이 들고일어나자 독립운동은 들불처럼 인천 곳곳으로 번졌다.

1919년 3월 8일 오후 9시. 인천 공립보통학교(현 인천 창영초등학교) 3학년생 김명진·이만용·박철준·손창신 등은 당시 우각동(현 금창동)에 있는 학교 건물 2층에 몰래 들어갔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절단용 가위로 전화선을 끊어 경찰서와 연결된 통신을 차단했다.

교직원들이 이틀 전 시작된 학생들의 동맹휴업 사실을 경찰에 알리는 등 독립운동을 방해한 데 대한 저항이었다.

이 사건으로 가택 침입 및 전신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붙잡혀 징역형을 받은 김명진은 당시 경찰에 '내 나라 독립을 위해 한 점도 부끄럽지 않다'고 외쳤다.

3·1 독립 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기념비
3·1 독립 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기념비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천 지역 3.1운동은 1919년 3월 6일 인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시작됐다. 이 학교 학생들은 서울의 독립운동 만세 시위에 동맹휴업으로 호응했다.

휴업에 들어간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인천공립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 학생들과 합세해 만세운동을 벌였다. 노동자 행동을 촉구하는 격문과 독립선언서도 인천 전역에 뿌렸다.

차츰 시위 행렬이 늘더니 3월 9일에는 300여명이 동참했다. 당일 오후에는 기독교 신자와 교회 청년 등 30여 명이 만국공원에 모여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산됐다.

인천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동맹휴업은 열흘 가까이 계속됐다. 경찰이 학부형 회의를 소집해 주동자 25명을 처벌하겠다는 강경책을 발표하자 이 학교 학생 405명 가운데 85명이 다음 날 결석해 항일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이 지역 만세운동은 소강상태로 접어든 시내 쪽과 달리 오히려 외곽에서는 불길이 타올랐다.

그해 3월 13일 인천 남쪽의 소래면과 북쪽의 계양면에서 주민 수백 명이 각각 소래산과 계양산에 올라 봉화를 올린 뒤 만세를 외쳤다. 일제는 시위운동이 점차 확산하자 부평지역 시위에 대비해 순사대를 증원했다.

인천 최초 3·1운동 발상지 일대 만세운동 재연
인천 최초 3·1운동 발상지 일대 만세운동 재연

[인천시 동구 제공]

같은 달 24일에는 청년들이 부평장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면사무소로 쇄도했고 일제 경찰의 발포에 5∼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붙잡힌 청년을 데려오기 위해 몸싸움을 하던 이은선 열사는 일제 경찰의 칼에 찔려 순국했다.

사흘 뒤 인천 지역 조선인 가게에는 '조선독립신문'과 함께 격문이 배포됐다. '만세를 부르고 철시하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독립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고 일제 경찰은 가게 문을 다시 열라고 협박했다.

그해 4월 2일 만국공원(현 인천 자유공원)에서는 박용희·장붕·김규·이종욱·이규갑·홍면희·안상덕 등이 조선국민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는 조선 13도 대표자 명의로 3·1독립선언의 뜻을 계승해 임시정부를 선포하려 했다.

그러나 일제의 통제로 선포식을 열지 못했고 이후 장소를 바꿔 4월 23일 서울에서 전국 13도 대표 24인 명의로 국민회의를 개최하고 임시정부 선포식을 열었다.

3·1 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기념비
3·1 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기념비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천 창영초교 총동창회는 1995년 학교 화단에 '3·1 독립운동 인천 지역 발상지' 기념비를 세웠다.

김명진 지사의 유족은 그가 1996년 국민훈장과 함께 받은 연금을 모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아 '김명진장학회'를 만들었다.

인천시는 올해 100주년 3·1절 기념행사를 이 학교에서 열 예정이다.

3·1운동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헌시를 지역 대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지도자인 죽산 조봉암 선생의 유족이 낭독한다.

기념식 후에는 창영초교에서 동인천역 북광장까지 만세운동 시가행진이 펼쳐진다. 일본 헌병과 독립열사로 분장한 연기자들이 실제 만세운동을 재현한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은 우리나라 독립과 정부 수립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이라며 "순국선열의 숭고한 정신과 100년 전 역사의 날을 기리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관련 기념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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