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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in제주] 4·3길을 걸으면 제주가 달리 보인다

송고시간2019-03-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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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 숨은 여전히 슬픈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

북촌마을 4·3길의 일부인 북촌포구 모습
북촌마을 4·3길의 일부인 북촌포구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어린 동생이 끌려가던 길이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눈물로 던진 길이었다

여기다, 여기다 하며 두려움이 떨어뜨린 길이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

까마귀도 총소리에 숨죽인 길이었다

섯알오름에서 노을이 핏물처럼 흘러내리는 길이었다

땅 밑에서 고구마가 굵어지고

땅 위에서 고구마 꽃이 자주 빛 울음을 터뜨리는 길이었다

누이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막고

초경을 앓던 길이었다

동생에서 누이에게로 흘러내린 붉은 핏줄기가

상모리 불타는 골목마다 비린내를 몰고 가는 길이었다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검정고무신'을 쓴 박용우 시인은 4·3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아픔을 '길'에 이렇게 투영했다.

제주 4·3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길'이라는 공간 위에 재구성해 기억을 되새기려는 노력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제주도는 2015년 동광마을 4·3길을 시작으로 2016년 의귀마을, 북촌마을, 2017년 금악마을과 가시마을, 2018년 오라동까지 6개의 4·3길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 4·3길 위치도
제주도 4·3길 위치도

[제주도 제공]

각각의 4·3길에는 표지·안내판과 상징 리본 등이 짜임새 있게 부착됐고, 길에 속한 유적들도 말끔히 정비됐다. 각 길마다 4·3과 마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문화해설사까지 배치돼 탐방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제 4·3길은 역사 교육의 장으로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4·3 71주년을 앞두고 현재까지 개통된 6곳의 4·3길을 총정리해본다. 4·3길을 걸으며, 과거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4·3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어떨까.

▲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마을 4·3길

'동광마을 4·3길' 개통
'동광마을 4·3길' 개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5년 10월 31일 첫 4·3길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만들어졌다.

동광마을은 제주4·3의 참극을 세계에 알린 영화 '지슬'에 등장하는 유적지 큰넓궤와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舞童洞) 등의 유적이 자리한 곳이다.

동광마을 4·3길은 '무등이왓 가는 길'과 '큰넓궤 가는 길' 등 각각 6㎞ 에 이르는 두 개의 길로 구성됐다.

'무등이왓 가는 길'에선 '최초 학살터'와 시신을 찾지 못해 묘만 조성한 '헛묘', '잠복 학살터', 무등이왓 마을이 번성했던 당시의 개량 서당인 '광선사숙' 등을 볼 수 있다.

무등이왓에서는 4·3사건 당시인 1948년 11월부터 토벌대의 잔인한 학살로 1949년까지 아이와 여성 노인 등 마을 주민 1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등이왓 주민들은 토벌대를 피해 서쪽으로 2∼3㎞ 떨어진 '큰넓궤'라는 굴에 숨어들었지만, 이내 발각돼 정방폭포 등지로 끌려가 학살됐다.

이후 마을은 재건되지 않았고 오랜 기간 사람들의 발길마저 끊겨 '잃어버린 마을' 이라 불렸다.

1600년대 중반 관의 침탈을 피해 쫓기던 사람들이 들어와 화전을 일구면서 정착, 한 때는 130여 가구가 살았을 정도로 큰 마을이던 무등이왓은 마을이 생긴지 300여년 만에 그렇게 사라졌다.

▲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마을 4·3길

의귀마을 4·3길 개통
의귀마을 4·3길 개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6년 9월 두 번째로 개통된 4·3길인 의귀마을 4·3길은 '신산모루 가는 길'과 '민오름주둔소 가는 길' 2개 코스로 구성됐다.

신산모루 가는 길은 의귀마을 복지회관에서 출발해 의귀초등학교, 현의합장묘, 송령이골을 돌아오는 7㎞의 길이다.

현의합장묘는 1949년 1월 의귀초등학교에 주둔했던 군인들이 무장대의 습격을 받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주민 80여명을 집단학살한 뒤 인근에 방치됐던 시신들을 2003년 안장한 곳이다.

송령이골은 의귀초등학교 전투 당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이 묻힌 곳이다.

민오름주둔소 가는 길은 옷귀마테마타운을 출발해 영궤 등 민오름 주위를 도는 약 7㎞ 코스다.

민오름주둔소는 1952년 전투경찰사령부 1개 소대가 주둔하면서 무장대 진압 작전을 폈던 곳이다.

옷귀마테마타운 근처엔 당시 토벌대가 영궤루주둔소를 설치해 전방 초소로 사용했던 의귀마을 공동목장이 있다.

영궤는 당시 토벌대를 피해 주민들이 은신했던 곳으로 궤 입구가 넓어 토벌대에 발각되기 쉬웠기 때문에 임시로 피난처로 사용됐다.

▲ 제주시 조천읍 북촌마을 4·3길

하늘에서 본 제주 북촌마을
하늘에서 본 제주 북촌마을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그만 해안마을인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는 해마다 음력 12월 19일이면 집집마다 통곡의 제사를 지낸다. 1949년 1월 17일(음력 12월 19일) 이 마을에서 주민 300여 명이 무차별 학살로 희생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 마을에서 군인 2명이 무장대의 습격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지자 진압군이 주민들을 학교 운동장으로 모이게 한 뒤 처참한 학살을 자행했다.

이 사건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된 북촌마을의 4·3길은 2016년 12월 개통됐다.

북촌마을의 팽나무들
북촌마을의 팽나무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북촌마을 4·3길은 너븐숭이4·3기념관을 출발해 서우봉(일제 진지동굴, 몬주기알), 환해장성, 마을의 문화유산인 '가릿당', 4·3의 역사가 서린 북촌포구, 낸시빌레, 꿩동산, 포제단, 마당궤(은신처), 당팟(희생터), 정지퐁낭 기념비 등을 둘러보는 7㎞ 코스다.

너븐숭이에는 북촌마을의 아픈 역사를 설명해주는 4·3기념관과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 순이삼촌 문학비 등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 제주시 한림읍 금악마을 4·3길

제주 금악마을 4·3 길 개통 사진전
제주 금악마을 4·3 길 개통 사진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맛있기로 유명한 제주산 돼지고기의 주산지 금악마을도 4·3의 광풍을 피하지 못했다.

제주도는 2017년 6월 제주시 한림읍 금악마을에 네 번째 4·3길을 개통했다.

금악마을은 예부터 크고 작은 샘과 하천이 많아 밭농사와 목축이 행해진 부촌이었으나 일제강점기 과다 공출과 1946년 콜레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1948년 4·3 때 소개령이 내려져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

지금의 금악마을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3년부터 재건됐다. 1960년 아일랜드 출신의 임피제(맥그린치) 신부가 종돈 등을 들여와 제주 최대의 축산마을이 됐다.

금악마을 4·3길은 6.5㎞의 '웃동네 가는 길'과 4.5㎞의 '동가름 가는 길'로 구성됐다.

'웃동네 가는 길' 중심에 있는 금오름에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수많은 진지 동굴의 흔적이 있고, 이 동굴들은 4·3 때 피난처가 되곤 했다. 이후 대부분 메워져 현재 2개의 진지 동굴만 남았다. 사방이 탁 트인 천혜의 전망을 주는 금오름엔 정상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며,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으로도 쓰이고 있다.

'동가름 가는 길'에 있는 만벵듸 묘역은 한국전쟁 때 예비검속 당시 4·3 가족이란 이유로 잡혀가 서귀포시 대정읍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수십 명의 희생자 시신을 수습해 조성한 묘역이다.

▲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마을 4·3길

제주 '가시마을 4·3길'
제주 '가시마을 4·3길'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7년 10월 4·3 당시 소개령으로 초토화됐다가 재건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마을에도 4·3길이 개통됐다.

가시마을 4·3길은 가시리사무소에서 출발해 4·3 당시 마을 주민이 외부인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섰던 고야동산, 가시마을을 세운 한천의 묘를 모셔둔 한씨방묘, 지금도 마을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가 행해지는 구석물당, 가시마을을 만든 한천의 후손들을 위해 면암 최익현 선생이 남긴 비문과 비석, 잃어버린 마을 새가름, 가시천 등 11개 장소를 돌아보는 7㎞ 코스다.

가시리는 1948년 360여 가호가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그해 11월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마을은 폐허가 되고, 주민들은 표선리에 있는 속칭 한모살, 버들못에서 집단으로 희생됐다.

지금의 가시마을은 1949년 5월 재건되기 시작했다. 당시 재건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안흥규, 안재호 선생의 공덕을 기리는 동상과 비가 가시리사무소에 세워졌다.

▲ 제주시 오라동 4·3길

오라동 4·3길
오라동 4·3길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시 한복판에 위치한 오라동은 4·3 초기부터 여러 사건으로 유독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오라동은 4·3이 평화협상의 파탄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학살극으로 이어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 된 1948년 5월의 '우익청년단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25가구 130여명의 주민이 살았던 오라리의 어우눌 마을은 군경의 초토화 작전으로 잿더미로 변했고 복구되지 못하고 끝내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인근의 고지레 마을 역시 하루아침에 모든 집이 불에 타 사라져버렸다.

제주도는 지난해 7월 이 오라동 일대에 2개 코스, 총 12㎞ 길이로 오라동 4·3길을 개통했다.

1코스는 총 6.5㎞로 연미 마을회관을 시점으로 조설대·어우눌·월정사 등을 탐방하는 코스로 구성됐으며 2코스는 총 5.5㎞로 연미 마을회관, 오라지석묘, 고지레, 선달뱅듸 등을 탐방하는 코스다.

조설대는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제주 유림 12인이 '집의계'를 결성하고 일제의 부당함에 항거하고자 '조선의 수치를 설욕하겠다'는 뜻인 조설대라고 비석에 새겨 의지를 다진 곳으로 매년 경모식이 열리는 곳이다.

▲ 4·3길 탐방객 급증…역사·평화·인권 교육 현장 발돋움

4·3길 상징 로고와 띠
4·3길 상징 로고와 띠

[제주도 제공]

5년 간 4·3길 여섯 곳의 문화해설사들이 집계한 단체 탐방객 수는 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단체 탐방객 대부분은 전국의 초·중·고·대학생과 역사기행팀으로 파악된다.

문화해설사와 동행하지 않은 개별 탐방객들의 숫자는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8년말 기준 4·3길 별 탐방객 수는 북촌마을 4·3길이 7천501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동광마을 4·3길 4천160명, 금악마을 4·3길 3천115명, 의귀마을 4·3길 2천731명, 가시마을 4·3길 2천612명, 오라동 4·3길 310명 순이다.

▲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면 더 의미있는 4·3길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북촌마을 4·3길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북촌마을 4·3길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도는 4·3에 대한 이해를 돕고 현장체험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주말마다 각 4·3길에 문화해설사 총 14명을 배치해 탐방을 돕고 있다.

각 마을별로 1∼3명씩 선발된 문화해설사들은 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탐방객들을 안내한다.

4·3 당시 각 마을 주민이 겪은 아픔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도록 마을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춘 주민을 해설사로 선정했다. 동광마을과 가시마을 해설사 일부는 4·3을 생생히 겪었던 이들이다.

문화해설사들은 4·3길에 대한 설명 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습은 물론 관광명소, 유적지, 맛집 정보 등도 제공한다.

4·3길 문화해설사 동행 신청은 제주도 4·3지원과(☎064-710-8452, 8454)로 하면 된다.

ji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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