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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는 왜 생면부지 작가의 수묵화에 빠져들었나

송고시간2019-03-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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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요세파 수녀, 수묵화가 김호석 작업 소개한 '수녀님…' 출간

김호석, 세수하는 성철스님
김호석, 세수하는 성철스님

[작가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마산 트라피스트 봉쇄 수녀원에서 수도 중인 장요세파 수녀는 김호석 수묵화 '세수하는 성철스님'을 보고 '넋을 잃었다'.

처음에는 세숫대야 위에 살짝 쪼그려 앉은 스님 뒷모습만 보인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물에 비친 얼굴과 마주하며 자아를 성찰하는 큰스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미술에서 높고 깊은 정신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수녀는 정신세계를 이러한 은유로 압축한 작업에 빠져들었다. 생면부지 작가를 한참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닿으면서 수녀와 화가의 인연이 시작됐다.

장요세파 수녀의 신간 '수녀님, 화백의 안경을 빌려 쓰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법정·성철 스님 등의 수묵 인물화로 이름을 날려온 김호석 그림을 소개하면서 그에 얽힌 여러 일화와 단상을 전한 책이다.

세월호, 5·18, 4·19 등을 담은 묵직한 작업과 뱀·파리·매미·미꾸라지 등을 통해 생명을 경시하고 불의에 눈감는 세태를 겨눈 작업, 선비 정신을 담아낸 작업 등 다양한 그림이 실렸다.

책은 사실상 수녀 눈과 입을 통해 작가의 예술 철학을 전한다.

전통 배채법(背彩法·뒤에서 채색해 은은하게 배어나도록 하는 기법)을 터득한 작가가 그려낸 초상의 형형한 기운은 치밀한 붓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상대의 정신이 내 안으로 걸어들어올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고집스러운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측이 사겠다고 나섰으나 작가가 거절했다는 '개죽음'(1991)은 민주화 투쟁으로 스러진 젊은이들을 가리킨다는 것이 수녀 설명이다.

달동네 속에 높이 선 교회당 첨탑을 그린 '구원'(1980) 등 초기작들도 눈에 띈다.

1979년 대학(홍익대) 3학년 때 '아파트'로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받으며 수묵화단의 유망주로 부상한 뒤 전개한 작업이다.

수녀는 "(화백이 그린) 이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삶, 부귀, 명예를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라면서 "예술과 종교가 따로 노는 현대이지만 화백의 작품 속에서는 그 추구하는 바가 함께 만나는 것을 본다"라고 평했다.

선출판사. 432쪽. 2만9천 원.

[교보문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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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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