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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국의 나무가 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송고시간2019-03-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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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시민권자는 서재필이다. 1884년 갑신정변에 실패해 일본을 거쳐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으로 개명하고 1890년 6월 10일 시민권을 얻었다. 그러면 한국으로 귀화한 미국인 1호는 누구일까. 미군 장교 출신의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는 민병갈이란 이름으로 1979년 서양인 최초로 한국 국적자가 됐다. 올해는 그의 귀화 40주년이기도 하다.

그는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란 별명을 갖고 있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는 그가 가꾼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선정했다. "내가 죽으면 무덤을 쓰지 말고 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으라"는 유언을 남겼을 만큼 나무를 사랑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고아 4명을 입양해 키웠고, 한식과 한복을 즐겼다.

손자를 안고 며느리가 준비하는 식사를 기다리는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

손자를 안고 며느리가 준비하는 식사를 기다리는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버크넬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해군정보학교에서 일본어 과정을 이수하고 1945년 6월 일본 오키나와에 배치돼 일본군 포로와 종군위안부를 직접 신문했다.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을 관할한 미국 군정청에 부임했다가 한국의 인심과 풍광에 이끌려 한국 근무를 자원했다. 미국의 경제협조처(ECA)와 국제협력처(AID)에 근무한 인연으로 1953년 한국은행 상근고문으로 초빙돼 눌러앉았다.

민병갈은 미 군정청에서 만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을 친아버지처럼 따랐다. 군에서 전역할 때 유일한의 권유로 가진 돈을 몽땅 유한양행 주식에 투자해 목돈을 모았고, 이를 종잣돈 삼아 주식 투자로 번 돈을 수목원에 쏟아부었다. 한국은행 시절 민병도 총재와 형제처럼 지냈는데, 그의 성과 돌림자를 따 한국 이름을 지었다. 민병도도 퇴임 후 민병갈의 도움을 얻어 강원도 춘천의 남이섬 가꾸기에 매달렸다.

2018년 유색 벼를 심어 피아노 건반 모양을 연출한 천리포수목원의 논 모습. [천리포수목원 제공]

2018년 유색 벼를 심어 피아노 건반 모양을 연출한 천리포수목원의 논 모습. [천리포수목원 제공]

민병갈이 수목원 조성에 나선 계기는 생뚱맞아 보인다. 여름 휴가 때면 태안의 만리포 해수욕장을 즐겨 찾았는데, 1962년 인근 천리포에 들렀다가 딸의 혼수 비용이 필요하니 바닷가 야산을 사 달라는 마을 노인의 부탁을 받고 2만㎡(약 6천 평)의 땅을 사들인 게 시작이었다.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해 도우려고 한 일이었다. 소문을 들은 주민들이 내 땅도 사 달라고 졸라대자 차례로 매입한 뒤 1970년 수목원 공사에 나섰다.

그는 금요일 오후만 되면 천리포에 내려와 월요일 새벽 서울로 다시 출근할 때까지 나무를 심고 숲을 돌봤다. 57만9천281㎡(약 17만5천 평)의 수목원 구석구석을 돌며 삽과 호미질을 했고, 식물도감을 뒤져 나무와 풀의 학명을 모두 외웠다. 해마다 미국 나무 경매장에도 한두 차례씩 들러 신품종 묘목과 종자를 사들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3월 11일 청와대에서 민병갈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3월 11일 청와대에서 민병갈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병갈은 자식처럼 키운 나무에 상처를 줄 수 없다며 인위적으로 나무를 보기 좋게 다듬는 것을 싫어했다. 수목원 직원들은 "나무를 지켜만 주고 주인 노릇을 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고 한다. 농약과 기계를 쓰지 않는 것도 특징이고, 철저한 기록과 관리로 정평이 났다. 1982년 완도호랑가시나무를 발견해 국제학회에 등록하는가 하면 새로운 목련 품종을 잇따라 개발하는 등 학문적 성과도 적지 않다.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1974년 산림청장 감사패, 1989년 영국왕립원예협회 공로메달, 1992년 국제목련학회 공로패, 1996년 환경부장관상, 1999년 한미우호상, 2000년 국제수목학회 공로패와 미국호랑가시나무학회 공로패 등을 받은 데 이어 2002년 금탑산업훈장의 영예를 안았다. 경기도 포천 광릉의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도 박정희·현신규·임종국·김이만에 이어 2005년 5번째로 헌액됐다.

포천 광릉의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된 민병갈의 흉상 부조. [연합뉴스 자료사진]

포천 광릉의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된 민병갈의 흉상 부조.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2002년 4월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유족과 천리포수목원 임직원들은 차마 유언을 따를 수 없어 완도호랑가시나무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가 10주기인 2012년 유골을 수습해 뼛가루를 고인이 아끼던 태산목(목련과 나무의 한 종류) '리틀젬'(Little Gem) 아래 수목장으로 안치했다. 묘터에는 작은 표지석을 설치했다.

그의 뒤를 이어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현 한솔섬유 대표)과 이은복 한서대 생물학과 교수(현 생명과학과 명예교수)가 차례로 이사장을 맡았다. 환경부는 2006년 천리포수목원을 멸종 위기종인 가시연꽃·노랑무늬붓꽃·망개나무·매화마름·미선나무의 보전기관으로 지정했다.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의 흉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의 흉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은 2009년 이전에는 사전 허락을 받은 식물연구자나 후원회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금단의 비밀정원'이었다. 그러나 2007년 12월 기름 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태안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 일반인에게도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겠다며 2009년 개방을 결정했다. 민병갈의 별세 후 가중된 재정 위기에 숨통을 트려는 의도도 있던 것으로 풀이된다. 오는 4월 1일은 일반 개방 10주년 기념일이다.

밀러가든·에코힐링센터·큰골·남새섬·목련원·침엽수원·종합원 7개 구역으로 나뉘는 천리포수목원에는 목련 700여 종, 호랑가시나무 600여 종, 동백나무 500여 종, 무궁화 300여 종, 단풍나무 250여 종 등 1만6천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종수로는 국내 최다이고 광릉 국립수목원의 갑절을 넘는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은 6만5천623㎡(약 2만 평) 규모의 밀러가든과 에코힐링센터 등 일부 지역이다. 민병갈의 일대기와 유품을 전시해놓은 민병갈기념관과 밀러가든 갤러리도 들어서 있다.

지난 20일 천리포수목원을 찾은 상춘객들이 영춘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일 천리포수목원을 찾은 상춘객들이 영춘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요즘 천리포수목원에는 봄을 맞이한다는 이름의 영춘화(迎春花)가 활짝 피어 상춘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민병갈의 기일인 4월 8일 전후로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했던 목련이 소담스러운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깃든 목련꽃을 감상하며 아름다움과 향기에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민병갈의 한국 사랑과 나무 사랑을 한 번쯤 떠올리기 바란다. (한민족센터 고문)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국의 나무가 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 8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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