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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 김혜림 "제가 뭐라고 이렇게 응원을…많이 울었어요"

송고시간2019-04-1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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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한 이별'로 '최고의 1분'…"'불청' 가족 생긴 것 같아"

'DDD'로 데뷔해 30주년…"엄마 故나애심·조용필 태산같은 분"

SBS TV '불타는 청춘' 콘서트 함께 꾸민 가수 김혜림(오른쪽)과 작곡가 김형석
SBS TV '불타는 청춘' 콘서트 함께 꾸민 가수 김혜림(오른쪽)과 작곡가 김형석

[김혜림 측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감정을 참는 듯 가사를 꾹꾹 눌러 부르던 가수 김혜림(51)이 마이크를 객석으로 돌렸다.

'돌아와 니가 있어야할 곳은/ 바로 여긴데 나의 곁인데/ 돌아와 지금이라도 나를 부르면/ 그 어디라도 나는 달려나갈 텐데'('날 위한 이별')

숨죽이며 몰입하던 관객들은 그제야 '떼창'으로 화답하며 그의 떨리는 마음을 응원했다.

김혜림이 지난 9일 방송한 SBS TV '불타는 청춘' 콘서트에서 부른 대표곡 '날 위한 이별' 무대는 이날 순간 최고 시청률 10.1%를 기록하며 '최고의 1분'을 장식했다. 김혜림의 1994년 4집 타이틀곡인 이 노래를 작곡한 김형석이 25년 만에 무대에 함께 올라 피아노를 연주하자 감동은 배가 됐다.

이날 공연에서는 '끝판왕' 가창력을 선보인 신효범, '내시경 밴드'를 결성해 퀸의 대표곡을 들려준 김광규·장호일·김도균 등이 1980~1990년대 추억의 명곡으로 귀를 호강시켰지만, 김혜림 무대에 유독 '눈물이 난다', '추억이 새록새록하다'는 평이 쏟아졌다.

특히 김혜림이 가수로 시청자들 앞에 선 것은 오랜만이어서 반가움은 더욱 컸다. 그는 지난 2017년 12월 별세한 어머니를 10년 넘게 병간호하느라 간간이 무대에 오르면서도 방송과는 거리를 뒀다. 어머니는 1950~1960년대 가요계와 영화계를 주름잡은 '노래하는 은막 스타' 나애심이다.

지난 10일 전화로 만난 김혜림은 "어제 방송을 본 선후배들과 방송사 선생님(PD)들이 전화를 너무 많이 주셔서 오늘 아침까지 너무 많이 울었다"며 주위 관심에 쑥스러워했다.

"(이)기찬이와 통화하면서 '몰라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했어요. 묘해요. 옛날 어릴 때 추억이 겹치고 엄마 생각도 많이 났어요. 4집이 직접 제작한 앨범이라, 홍보 CD를 들고 방송사에 가서 '한 번만 틀어주세요'라며 씩씩하게 다니던 모습도 머릿속에서 교차했고요. 정말 하늘에서 신호를 준 것처럼 절로 사랑받은 노래였죠."

김형석은 김혜림이 용기 내 어렵게 출연을 요청하자 해외 스케줄까지 취소하고서 지원군이 돼줬다.

김혜림은 "제가 뭐라고…"라고 거듭 말하며 "시간이 지났는데도 큰 힘이 돼준 형석 오빠, '불타는 청춘' 촬영장에서 살뜰히 챙겨주고 예쁘게 편집해 주는 제작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다. 정말 '불청' 가족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 망설임 끝에 '불타는 청춘'에 처음 출연한 것은 지난해 가을. 연예계 '마당발'로 유명한 그는 홍석천 등 '새 친구'뿐 아니라 출연진 다수와 친분이 있어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 예능 나들이가 오랜만이었지만 화장기 없이 털털한 모습, 유쾌한 성격으로 청춘들의 여행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예능 출연은 큰 결심이었어요. 20대 때 별별 분장을 다 시켜도 망가지는 걸 개의치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 모습도 변하니 망설여졌죠. 하하. 그런데 제가 놀랄 정도로 예전처럼 '리얼'한 모습이 되더라고요."

김혜림 1집 '디디디'와 4집 '날 위한 이별' 재킷
김혜림 1집 '디디디'와 4집 '날 위한 이별' 재킷

그는 1988년 KBS '젊음의 행진'이 만든 전속 프로젝트 그룹 '통크나이'로 데뷔했다. 시원한 입매와 미소, 상큼한 단발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솔로로는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그는 1989년 1집 '디디디'(DDD)가 크게 히트해 MBC 10대가수 신인상을 받으며 '나애심의 딸'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첫 앨범을 낸 기획사는 '가왕' 조용필이 있던 필기획. 조용필은 김혜림이 가수가 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엄마 덕에 가수로 데뷔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가 무척 심하셨죠. 엄마와 친분이 있던 용필 오빠가 설득을 해줘서 필기획에서 데뷔했어요. 제게 태산 같은 분들인 엄마와 용필 오빠는 잘하든 못하든 '자신감은 가지되, 자만심은 절대 안 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지금까지 큰 가르침이죠."

그는 지난해 12월 어머니 1주기를 보내고서야 부재가 실감 난다고 했다. 살면서 외롭단 생각도, 혼자라고 느껴본 적도 없었는데 "문득 진짜 혼자네"란 생각이 든다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았다.

"엄마 병간호를 시작한 게 38살인데, 지금 제가 50대예요. 엄마는 저를 남편처럼, 친구처럼 여기셨어요. 물론 제가 어렸을 때는 공연 차 한 달씩 해외에 나가시는 바쁜 엄마였죠. 하지만 저 고교 때부터 활동을 안 하신다면서 끔찍한 사랑을 주셨어요."

그는 지난해 2월 방송된 KBS 1TV '가요무대'의 나애심 특집 자료 화면을 준비하면서 생전 활동 모습이 너무 멋있어 눈물이 났다고 떠올렸다. "엄마가 워낙 노래를 잘하셔서 주눅 들어 집이 아닌 차에서 연습하고, 명성에 누가 안 되려고 애도 썼다"면서 "돌아가시고 보니 역시 '김혜림의 엄마 나애심'이 아니라 '나애심의 딸 김혜림'이었다"고 말했다.

옛 기억을 짚던 그는 또 한차례 힘들었던 시기로 2014년 가족처럼 아낀 신해철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를 꼽았다. 두 사람은 필기획 매니저 출신 유재학 대표가 설립한 대영기획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가깝게 지냈다. 이후 대영AV로 이름을 바꾼 이 기획사는 015B, 전람회, 넥스트 등의 앨범을 출시하며 19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그는 "해철이를 잃었을 때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누가 절 괴롭히면 나서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주위에서 걱정할 정도로 그 충격이 오래갔다"고 기억했다.

앞으로 방송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달라고 하자 그는 시원스러운 웃음으로 대신했다. 앨범은 1998년 김동률, 이적, 유희열 등이 대거 참여한 7집과 1999년 베스트 앨범, 2007년 전영록이 작곡한 싱글음반 '어쩌면 좋아' 이후 끊겼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는 그는 "시간을 펼치니 오랜 시간 가요계에 몸담으며 그 역사를 지켜본 것 같다"고 했다.

"또래와 달리 어린 시절엔 엄마 동료들인 선생님들을 뵈었고, 데뷔하고선 제 세대 친구들, 세월이 지나 지금은 후배들과 만나고 있잖아요. 여러 세대와의 인연이 새삼 남다르게 다가오네요."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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