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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broad] 모스크바의 '지하궁전' 지하철역

송고시간2019-06-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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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그림이 걸려있는 마리나로샤 승차장 [사진/조보희 기자]

6개의 그림이 걸려있는 마리나로샤 승차장 [사진/조보희 기자]

(모스크바=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모스크바는 날씨가 따뜻할 때 방문해야 참모습을 즐길 수 있다. 그동안 몇 차례 모스크바에 갔지만 모두 추운 겨울이었고 빠듯한 일정 때문에 붉은광장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

처음으로 온화한 날씨에 방문한 모스크바는 겨울과 달리 활기가 넘친다. 여러 곳을 돌아봤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은 뜻밖에도 지하철역이었다.

모스크바에 가기 전 무료 앱 '얀덱스 메트로'(Yandex.Metro)를 깔았다. 러시아 지하철 노선도와 최적 경로, 소요시간 등 필요한 정보를 러시아어뿐 아니라 영어로도 볼 수 있는 앱이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14호선까지 있어 노선체계가 복잡하고 이용객도 많다. 역이름 등 표지판은 키릴문자 외에 영어도 병기돼 있어 적응하기 어렵지 않다.

노선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어 환승할 때 역사에 표기된 색깔과 노선번호를 따라 이동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환승역이라도 노선에 따라 역명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찾은 호텔 근처의 스몰렌스카야. 아르바트 거리와 연결된 역이다.

빨간색 M자 로고가 걸려있는 3층 정도 높이의 노란색 역사엔 육중한 나무문이 나란히 3개씩 두 군데 있다. 한쪽 3개는 입구 전용, 다른 쪽 3개는 출구 전용으로 이용객들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출입구를 따로 두고 있다.

트로파료보 승차장의 조명나무 [사진/조보희 기자]

트로파료보 승차장의 조명나무 [사진/조보희 기자]

역사 안으로 들어서 짧은 계단을 내려가니 공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X-레이 수하물 검색기와 안전요원이 기다리고 있다. 테러에 대비해 러시아 대부분의 건물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선 항상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큰 짐을 가지고 있거나 의심스러운 승객들을 선별적으로 검사한다.

지하철 승차권은 유인 판매소나 자동 발매기를 통해 사면 된다. 빨간색 직사각형 종이로 되어있는 승차권은 버스와 트램도 환승이 가능하다.

요금은 거리에 상관없이 동일 요금 체계라서 탈 때만 개찰구를 통과하고 내릴 때는 표를 내지 않고 개찰구를 지난다.

현재 1회 요금은 55루불(약 1천원)이다. 창구에서 438루블(약 8천원)에 3일권을 구매했다. 개찰구는 스마트 터치형으로 표를 갖다 대면 문이 열린다.

아침 출근시간 콤소몰스카야 에스컬레이터를 탄 시민들 [사진/조보희 기자]

아침 출근시간 콤소몰스카야 에스컬레이터를 탄 시민들 [사진/조보희 기자]

◇ 끝이 보이지 않는 에스컬레이터

개찰구를 통과하면 상상을 뛰어넘는,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만나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에스컬레이터 3대가 나란히 설치돼 있고 그사이엔 높이 80cm 정도의 원통형 조명등이 약 3m 간격으로 설치돼 불을 밝히고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처음엔 살짝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우리나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보다 30∼40%는 빠른 느낌이다.

보통사람이 걸어서 오르내릴 거리는 아니지만 걷거나 뛰는 모스크바 시민도 많아 왼쪽 줄은 비워놓는다.

한참 만에 도착한 승차장은 바닥과 벽면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유럽 궁궐에서 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의자도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그 위의 조명장식도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럽다. 승차장 안쪽 면에는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작품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끈다.

원형의 천장은 높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말로만 듣던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모스크바 지하철역 중 가장 긴 파르크포베디 에스컬레이터 [사진/조보희 기자]

모스크바 지하철역 중 가장 긴 파르크포베디 에스컬레이터 [사진/조보희 기자]

모스크바 지하철의 가장 큰 특징은 땅속 깊이 위치해 에스컬레이터가 매우 길다는 것이다. 100m가 넘는 곳이 흔하다.

가장 깊다는 파르크포베디는 평균 깊이가 지하 84m, 최대 깊이는 97m다. 에스컬레이터 길이는 126m이고, 740개의 계단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면까지 약 3분이 걸린다. 서울 지하철에서 가장 긴 9호선 당산역의 에스컬레이터가 48m다.

에스컬레이터 바로 아래에는 근무자를 의미하는 '제주르나야'가 상주하며 안전사고에 대비한다.

두 번째로 배차 간격이 아주 짧다. 1∼2분만 지나면 오기 때문에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승차하지 않아도 된다. 출퇴근 시간엔 1분 이내에 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승차장은 1면 2선식의 섬식 승차장이기 때문에 반대편으로 갈아타야 할 경우 맞은편 열차를 타면 된다.

승차장 양 끝에 현재 시각과 열차가 출발한 지 얼마가 지났는지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다. 승객 입장에서 편리하고 운전하는 기관사에게 유용한 장치라고 한다.

승객으로 붐비는 키에프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승객으로 붐비는 키에프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승차장에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스크린도어는 없다. 그 때문에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진다.

지하철 문 닫히는 속도도 빠른 편이고 몸이라도 끼인다면 다시 열어주는 게 아니고 2∼3차례 짧게 열고 닫히는 정도라 주의해야 한다. 열차에 오르면 소음이 심한 편이지만, 금방 적응이 된다.

또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안내방송을 성별로 구분해서 한다는 점이다. 도심으로 진입하는 열차는 남자가, 외곽으로 나가는 열차는 여자가 각각 안내방송을 한다.

원형으로 운행하는 5호선의 경우 시계 방향으로 도는 열차는 남자가,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열차는 여자가 각각 안내한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열차 위에 전선이 없다. 구형 객차는 객차 간 이동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신형 열차는 객차 간 문이 없어 객실 전체가 탁 트여 있고 휴대전화 충전기를 꽂을 수 있는 어댑터가 설치된 것도 있다.

지하철역 환승 통로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언뜻 듣기에도 연주 수준이 전문가급이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귀를 즐겁게 해 준다.

모스크바 지하철 체계는 열한 개의 노선이 바큇살 모양으로 중앙의 허브에서 도시 외곽까지 뻗어 있고, 5호선과 14호선이 원형으로 중심과 외곽에서 다른 노선들을 이어 주며 도시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구조로 되어있다.

2018년 현재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은 224개이며, 노선 길이는 381km로 세계에서 5번째로 길다. 하루 평균 7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며 2014년 12월 26일 하루 최대 탑승객 수가 971만 명이었다고 한다.

일렉트로자보드스카야 승차장 [사진/조보희 기자]

일렉트로자보드스카야 승차장 [사진/조보희 기자]

◇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지하철역

모스크바 지하철은 1935년 5월 11km 길이에 13개 역을 가진 첫 번째 라인이 개통됐고 2단계는 1941년 완공됐다.

3단계는 2차대전 중 건설됐는데 이때 지어진 역들은 독일군의 폭격을 피할 수 있는 지하 방공호 역할을 겸하도록 건설됐다.

4단계와 5단계는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냉전 시기에 건설됐다. 이 역들은 핵 공격을 받아도 견뎌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모스크바 지하철역이 궁전 같은 화려함을 갖춘 데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치적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

1930년대는 대공황으로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사회가 곤경에 처한 시기이다. 스탈린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시민들이 사용하는 지하철역을 선택한 것이다.

모스크바 지하철역의 화려함과 웅장함은 탄생 당시 정치적 의도로 출발했지만, 최근에 건설된 역도 현대식의 고급스러움과 예술미를 갖추고 있어 여전히 과거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스크바 지하철을 타면서 이름난 역뿐만 아니라 가능한 많은 역에 내려 내부를 살펴보았다. 내리는 역마다 다양한 실내장식과 조명 시설은 각기 다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을 찾은 느낌이었다.

지하철역 여행을 할 땐 승객이 몰리는 시간은 피하는 게 좋다. 이용객이 워낙 많기 때문에 러시아워는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대로 감상하기도 어렵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이 좋을 수 있다.

지하철은 아침 5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운행한다.

◇ 모스크바의 특기할만한 지하철역

마야콥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마야콥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 마야콥스카야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지하철역. 러시아 혁명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1938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 지하철 품평회에서 우승해 당시 소련의 위상을 드높였다. 원형의 백열등으로 둘러싸인 34개의 천장 모자이크화가 유명하다. 지하 33m에 위치해 제2차 세계대전 중 공습 대피소로 활용됐다.

콤소몰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콤소몰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 콤소몰스카야

모스크바의 가장 번잡한 교통 허브인 콤소몰스카야 광장 아래에 있으며 노란색 천장에 장식된 대리석 조각과 색유리를 쪼개 붙인 모자이크화가 유명하다. 호화로운 샹들리에가 화려함을 더한다.

플로샤드 레볼류치 [사진/조보희 기자]

플로샤드 레볼류치 [사진/조보희 기자]

▲ 플로샤드 레볼류치

붉은광장이 있는 역. 붉은 대리석 아치 양쪽에 자리한 76개의 청동조각상이 유명하다. 각 아치에는 군인, 농부, 운동선수, 작가, 비행사, 산업노동자, 학생 등을 묘사한 조각상이 한 쌍씩 있다. 개를 데리고 있는 군인의 동상이 인기가 높은데 개의 주둥이를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해서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도 쓰다듬고 간다.

파르크포베디 [사진/조보희 기자]

파르크포베디 [사진/조보희 기자]

▲ 파르크포베디

모스크바에서 가장 깊은 역. 이곳은 두 개의 승차장이 연결되어 있는데 타는 곳과 내리는 승차장이 다르다. 두 승차장 기둥의 빨간색과 회색 대리석은 디자인이 같지만, 색상은 정반대다. 승차장 끝에는 1812년 프랑스의 러시아 침공과 제2차 세계대전을 묘사한 대형 벽화로 장식돼 있다. 대합실의 둥근 천장 장식도 아름답다.

벨로루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벨로루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 벨로루스카야

벨라루스와 서유럽으로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인근 벨로루스키 기차역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벨라루스를 테마로 일상생활을 묘사한 12개의 팔각 모자이크화와 다양한 장식을 갖추고 있다.

도스토옙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도스토옙스카야 [사진/조보희 기자]

▲ 도스토옙스카야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을 딴 역. 지하철 이용객을 맞는 커다란 도스토옙스키 얼굴과 승차장 곳곳에 그가 쓴 소설의 장면이 벽화로 새겨져 있다. 흰색의 아치형 천장 아래 줄지어 선 둥근 조명 구멍이 아름답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jo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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