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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가 만년에 쓴 비문, 임실서 발견

송고시간2019-05-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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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최씨 최성간 묘비…"장중하면서 짜임새 있는 작품"

추사 김정희가 쓴 최성간 묘비
추사 김정희가 쓴 최성간 묘비

[전라금석문연구회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서화가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만년에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가 전북 임실에서 발견됐다.

전라금석문연구회와 임실문화원은 임실군 신덕면 수천리에 있는 전주최씨 만육파 후손 최성간(1777∼1850) 묘비를 분석해 앞쪽 글씨를 추사가 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김진돈 연구회장은 "임실군 김철배 학예사로부터 제보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며 "묘소는 사륜차로도 들어갈 수 없는 오지에 있으며, 금석문이 학계에 보고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최성간 묘비 글은 조카인 최한중이 1851년 10월에 지었다. 그런데 김정희는 1851년 7월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됐기 때문에 이듬해 10월 해배 이후 쓴 것으로 추정된다.

묘비 뒤쪽 글씨는 추사 외가인 기계유씨 가문 유화주(1797∼1860) 작품이다. 비석을 세운 장소는 '임실(任實) 하신덕면(下新德面) 율치(栗峙)'로 기록됐다.

김 회장은 "추사만의 독특한 좌우 대칭을 이룬 균형 있는 필획이 나타난다"며 "예서(隷書·고대 서체인 전세를 간략하게 만든 서체)로 쓰면서도 '중'(中)자와 '사'(事)자 등에서는 해서(정자체) 특징이 보인다"고 말했다.

추사 연구자인 박철상 박사는 "묘비 글씨는 추사체가 완성돼 가던 시기에 썼다는 점에서 김정희 서법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자료로, 이 시기 추사의 예서는 많지 않다"며 "전서, 예서, 해서 등 여러 서체를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사람 인(人)자는 추사가 말년에 종종 사용한 형태의 글씨인데, 비문에서는 처음 발견됐다"며 "전체적으로 장중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어 김정희가 말년에 남긴 묘비 금석문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추사 김정희가 쓴 최성간 묘비 탁본
추사 김정희가 쓴 최성간 묘비 탁본

[전라금석문연구회 제공]

연구회와 임실문화원 측은 고창 선운사 '백파선사비'(白坡禪師碑), 완주 '전주유씨 묘비', 임실 '정려비' 등 전북 지역에 유독 김정희 글씨가 많은 데에는 추사의 인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 회장은 "추사와 교유한 초의선사는 효성이 지극했던 임실 지역 인물 김기종과 친했고, 김기종은 최한중과 친교 관계를 유지했다"며 "최한중은 추사와 친교했고, 최성간 묘비를 세우는 데에도 많은 공적을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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