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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이 다 무섭다는 건 커피가 다 쓰다는 것처럼 편견이죠"

송고시간2019-06-2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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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바리스타 배출하는 '내일의 커피' 문준석 대표 인터뷰

내일의 커피
내일의 커피

[문준석 대표 제공]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활력이 넘치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낙산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대로변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작은 카페와 음식점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곳에서 아프리카 커피를 판매 중인 카페 '내일의 커피'도 그중 하나다.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찾은 이곳은 밝고 따뜻한 주변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있었다.

내일의 커피가 주변 카페와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바리스타가 아프리카 출신 난민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주문을 받고 커피를 제조하며 고객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다른 카페의 바리스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일의 커피를 운영하는 문준석(36) 대표는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시기도 한다"며 "자연스럽게 손님과 바리스타의 관계로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들이 어디에서 왔고 현재 한국에서 어떤 신분으로 있는지 따로 설명하거나 내세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내일의 커피에서 일한 난민 바리스타들
내일의 커피에서 일한 난민 바리스타들

[문준석 대표 제공]

내일의 커피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난민들은 현재까지 총 10명이다. 길게는 2년, 짧게는 1년씩 교육을 받은 뒤 자립해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현재는 케냐와 에리트레아에서 온 난민과 함께 카페를 운영 중이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문 대표도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바리스타들이 홀로 가게를 책임진다.

내일의 커피는 이들에게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자립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돕는 '훈련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이곳은 난민을 고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종의 '레퍼런스'(추천 보증)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여기에서 일했다면 믿고 고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커피, 서비스업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한국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신경 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을 거쳐 간 대다수 친구가 한국에서 험한 작업장에서 일했던 탓에 손님들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면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에 와서 누군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게 처음이라는 친구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바리스타 선발은 문 대표가 난민지원단체를 통해 서비스업에 적합한 난민을 추천받은 뒤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한다.

특별한 선발 기준이 있냐고 묻자 그는 "바리스타는 소통이 중요한 직업이라 일단 손님과 소통의 어려움이 없어야 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친구들을 눈여겨본다"고 말했다.

내일의 커피 바리스타들
내일의 커피 바리스타들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종로구 동숭동 내일의 커피에서 일하는 난민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제조하는 모습 [2019.6.20]

문 대표의 이런 선발 기준 때문인지 이곳을 거쳐 간 바리스타들은 손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편이라고 한다.

그는 "단골들은 '제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난민들이 너무 밝고 재능이 많다'고 말한다"며 "이곳을 거쳐 간 바리스타 한 명이 한국에서 결혼을 했는데 손님 10명 정도가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했다. 난민을 자연스럽게 이웃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웃었다.

문 대표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지난 2009년 난민 봉사단체에서 봉사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는 그는 오랫동안 난민을 위해 봉사를 하며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런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커피를 좋아했던 그가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직접 소개하는 아프리카 커피'를 컨셉으로 내일의 커피를 창업하게 된 이유다.

문 대표는 "저도 처음에는 난민에 대해 막연히 안쓰럽고, 불쌍하고, 무서운 존재라 생각하고 이들이 어둡고 우울할 것이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대부분 일용직이고 생활고도 심한데 에너지가 넘치고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이들이 나를 위로해주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내일의 커피의 모습
내일의 커피의 모습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난민 바리스타 카페 내일의 커피의 전경 [2019. 6.20]

문 대표가 10년 넘게 난민과 지내며 난민에 대한 편견이 깨졌던 것처럼 그는 한국 사회에 난민이 스며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제주도에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을 두고 터져 나온 수많은 논쟁을 보며 속으로 그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 대표는 "제가 본 난민들은 한국 사회 취약 계층에 속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에겐 '무관심'의 존재였다"며 "당시 일을 통해 사람들이 난민에 대해 생각해보고 찬성하든 반대하든 다양한 의견을 내며 난민을 공론화하는 과정이 생겼다는 보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난민협약국인 대한민국이 이들에게 일자리도 주지 않고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으면 이들은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쓴소리했다.

문 대표의 이러한 생각은 카페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포스터 문구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아내가 썼다는 '쓰지 않을 거야 인생도 커피도'라는 짧은 문장은 내일의 커피 운영 철학과 그가 느낀 난민에 대한 단상을 압축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커피가 쓰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커피는 원두에 따라 쓴맛이 강하기도 하고 아예 없기도 하고 신맛이 나기도 해요. 난민이 다 무섭다는 건 커피가 쓰다는 것처럼 편견이죠"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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