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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이 더 많이 학살된 전쟁, 6·25를 다시 얘기하자"

송고시간2019-06-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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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길언, 장편 '묻어버린 그 전쟁' 출간

"정치적 목적으로 과거 들춰내면서도 6·25 전쟁엔 너무나 무심"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김일성 장군님, 가암사합니다. 우우리를 이렇게 만나게 해주시니." 경빈은 손목을 부여잡으면서 울부짖듯이 되풀이해서 말했다. 승규는 그를 껴안았다. 앙상한 뼈들이 가슴을 눌렀다.

문단 원로 현길언(79)이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묻어버린 그 전쟁'(본질과현상 펴냄)에서 6·25 전쟁통에 남과 북으로 흩어진 두 목회자가 오랜 세월을 지나 해후하는 장면이다.

승규와 경빈 모두 해방 직후 공산주의 세력에 저항하던 기독교 목사였지만 탄압을 피해 월남해 목회 활동을 한다. 경빈은 가족과 함께, 승규는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러던 중 6.25가 일어나자 경빈은 교인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가족을 승규에게 맡기고 한강을 건너게 하고는 서울에 남는다.

이를 계기로 두 목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승규가 개척한 '서울제2교회'는 대형 교회로 성장하고, 전쟁 기간 공산당에 부역한 경빈은 북한군 퇴각 때 북으로 함께 올라가 훗날 고위직에까지 오른다.

이들의 가족 운명도 마찬가지로 분단과 전쟁에 큰 영향을 받는다.

대한민국을 택한 경빈의 아내와 자녀들은 '연좌제' 덫에 걸려 공직에 임용되지 못하고 여권 발급까지 거부되는 부당한 불이익을 겪는다. 북에 남은 승규의 가족들도 힘든 삶을 살긴 마찬가지였지만, 불이익을 받는 대신 적극적인 충성을 통해 북에서 인정받는 쪽을 택했다.

'반동'인 아버지, 형, 남편을 부정하고 당의 신임을 받아 사회주의 일꾼으로 성장한다. 승규가 반세기 만에 평양을 방문해 만난 친동생은 인민군 장성에까지 올라 있었다.

묻어버린 그 전쟁
묻어버린 그 전쟁

소설은 이런 엇갈린 운명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드러낸다.

특히 작가는 6·25 전쟁과 분단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이념과 권력욕에 희생되는 민간인'을 부각하는 데 주력한다.

6·25 전쟁, 제주 4·3 사건 등은 이데올로기의 허위와 폭력성에 의해 무고한 민간인들만 학살되고 희생된 역사적 사례라는 게 작가의 시각이다. 제주도 출생인 그는 어린 시절 4·3 사건을 직접 겪은 당사자다.

그래서 현길언은 '데탕트'를 유행처럼 말하는 이 시대에 '6·25'를 다시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거듭 고백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 전쟁의 또 하나 특징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보다 비전투 상황에서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과거를 샅샅이 들춰내는 오늘의 상황에서, 이 전쟁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심하다"고 강조했다.

현길언은 198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해방 이후 이어진 이념 대립의 상처를 휴머니즘을 통해 치유하려는 문학을 구현하고자 했다. '용마의 꿈', '나의 집을 떠나며' 등 소설집과 4·3 사건을 다룬 장편 '한라산' 등을 남겼다.

한양대와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다수 문학이론서와 인문문화 서적을 펴냈다.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녹색문학상, 백남학술상, 제주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길언 작가
현길언 작가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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