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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향토극단] 통영 연극 100년 명맥 잇는 '바보 벅수들'

송고시간2019-08-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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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단원 9명으로 창단, 당시 일용직 노동으로 장비 등 구입

지역 콘텐츠 활용작 '호평'…해외 극단 교류 통해 경쟁력 키워

창작극 '코발트블루' 공연 중인 벅수골
창작극 '코발트블루' 공연 중인 벅수골

[극단 벅수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통영=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통영시'란 지명은 조선시대 해군 사령부에 해당하는 통제영이 설치된 데서 유래했다.

통영은 임금이나 고위 관리에게 바치는 진상품과 군사용 군수품을 제작하는 12공방의 예술혼이 면면히 이어져 온 예술의 고장이다.

독특한 지역 전통공연예술인 통영오광대, 남해안별신굿, 승전무 등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근대 이후로는 전국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음악, 문학, 미술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유명 예술가를 배출해냈다.

1914년에 이미 '봉래좌'라는 극장이 들어섰으며, 1927년 극작가 유치진이 오페라 '카르멘'을 현대극으로 각색·연출해 개화기 이후 등장한 연극 조류인 신극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극단 벅수골은 통영 연극 100년의 맥을 잇는 단체다.

1981년 3월 20일 단원 9명으로 출발해 지역 연극단체로 드물게 39년째 통영을 지키고 있다.

특히 70년대 이후 명맥이 끊긴 통영 연극계의 오랜 휴식기를 거쳐 10여년 만에 부활한 정통 극단이라 그 의미가 더 깊다.

통영의 극단 벅수골 입구
통영의 극단 벅수골 입구

[박정헌 촬영]

50년대 전후 부흥기와 60년대 황금기를 거치며 성장한 영화산업 영향으로 연극 인기가 시들해지며 통영 연극계도 한동안 침체기를 맞는다.

그러던 1979년 12월 극작가 유치진의 희곡 '통곡' 공연에 참여한 젊은 연극인들이 중심이 돼 벅수골을 창단했다.

당시 '독서회'라 불린 젊은 연극인 모임을 이끌던 장현, 장영석 두 형제가 창단 주역이다.

이들은 "통영에서 활동한 선배 연극인들의 후예임을 자각하고, 향토연극 중흥의 기수가 돼 건전한 작품을 통해 지역사회 정신문화 창달에 기여할 것을 다짐한다"는 창단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통영을 지키는 장승 '바보 벅수'와 같이 통영 연극을 지키자는 의미에서 극단이름을 벅수골로 지었다.

돌 장승인 벅수는 마을의 전염병과 액운을 막기 위해 1906년 당시 세병관 입구에 세워졌다.

이후 '대한민국 민속문화재 자료 제7호'로 지정된 벅수는 아직 통영 문화동 한쪽을 지키고 있다.

여기에 현재 대표이자 서울에서 연극을 공부한 장창석(63)씨가 상임 연출가로 합류하면서 극단은 천천히 지역 문화계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인터뷰하는 벅수골 장창석 상임 연출가
인터뷰하는 벅수골 장창석 상임 연출가

[박정헌 촬영]

시청 소유 창고를 임대해 극단을 꾸민 이들은 무대장치와 조명시설 등 부족한 부속장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기도 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연극에 대한 열정과 걸출한 예술가를 배출한 예향 도시다운 전통을 되살리겠다는 사명감이 인고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창립공연 '토끼와 포수'부터 최근 공연한 '나의 아름다운 백합'까지 작품 295편을 무대에 올린 중견 극단으로 발돋움했다.

현재 상주단원은 7명 정도로 대부분 사무업무를 전담한다. 배우와 스태프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오디션으로 뽑는다.

인원을 꾸려 연극 한 편을 공연하려면 제작비만 4천만∼5천만원이 필요하다.

배곯는 한이 있어도 무대를 밟아야 하는 연극인들이지만, 가난한 지역 극단이 부담하기에는 너무나 큰 액수다.

극단 벅수골 내부 모습
극단 벅수골 내부 모습

[박정헌 촬영]

다행히 2000년 이후 문화지원사업이 많아져 제작비의 60% 정도는 전국 단위 공모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됐다.

나머지는 극단이 자체 부담해 관람료 수익 등으로 메꾼다.

벅수골은 창단 당시부터 재정적으로나 운영 측면에서 열악했으나 지역 작가와 지역 이야기 등 통영을 주제로 한 지역 콘텐츠를 활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이 겪은 '동백림사건'과 시인 백석의 연애담을 엮은 작품 '통영 나비의 꿈'이 대표적이다.

벅수골은 이 연극으로 '제33회 전국연극제'에서 은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지금도 매년 무대에 올리는 4∼5개 작품 중 1∼2개는 꼭 벅수골 창작공연을 포함한다.

그러나 지역 소재 이야기는 대중성 확보가 쉽지 않아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일반 창작품 기획으로 회귀하는 경우도 있다.

지자체 지원이나 공모도 단발성에 그치기 일쑤여서 수익성을 외면한 채 긴 안목과 열정만으로 극단을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85년 연극 '해평 들녘에 핀 꽃' 벅수골 공연팀
1985년 연극 '해평 들녘에 핀 꽃' 벅수골 공연팀

[극단 벅수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벅수골은 상품성, 대중성, 작품성 3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콘텐츠 기획·제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통영의 역사, 공간, 인물 등을 활용한 '통영 로드 스토리텔러'는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기획은 통영의 역사, 공간, 인물 등을 희곡화하고, 무대의 배경이 된 공간을 직접 찾아 배우가 이야기꾼 역할을 하면서 지역 문화자원을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다.

제자들의 시각에서 인간 윤이상을 재구성한 '연못가의 향수', 지역 초등학생들을 참여시킨 '통제영의 바람' 같은 작품이 단적인 예다.

지금은 개들의 일상을 인간 삶에 빗대는 '블루 도그'를 준비해 10월에 초연할 계획이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과 함께 벅수골은 이 지역 대표 향토극단으로 우뚝 올라섰으나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무대에서 관객을 만날 준비도 착실히 하는 중이다.

창작극 치마꽃 공연 중인 벅수골
창작극 치마꽃 공연 중인 벅수골

[극단 벅수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해외 극단과 교류를 통해 외국에 벅수골 창작극을 선보이는 등 향토 극단의 국제적 경쟁력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포부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 공연을 한 차례 다녀왔고, 현재는 이탈리아 방문을 추진 중이다.

장창석 벅수골 대표는 "해외에 벅수골 연극을 알려 통영이 우리나라 연극의 메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가난한 극단 생활이지만 해외 교류를 통해 지역 연극문화를 발전시켜야 정체되지 않고 살아있는 조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척박한 지역 연극계를 40년 가까이 이끌며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게 가장 큰 자산이며, 좋은 후배들을 많이 양성해 벅수골이 경쟁력을 유지하게끔 토대를 닦는 게 남은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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