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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춘풍전은 조선 후기 아닌 1900년 전후 작품"

송고시간2019-08-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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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부산교대 교수 주장…이본 필사시기·내용 분석

이춘풍전
이춘풍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여성을 능동적 존재로 그린 고전소설 '이춘풍전'(李春風傳) 창작 시점이 기존에 알려진 조선 후기가 아니라 1900년 전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 고전소설 연구자인 김준형 부산교대 교수는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와 한국어문교육연구회가 최근 중앙대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남준여걸과 이춘풍전' 발표를 통해 이춘풍전이 학계 통념보다 훨씬 늦은 시기에 완성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춘풍전은 해방 직후 서울대 교수를 지낸 이명선이 "조선 이야기책계의 신경지를 개척했다"며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책과는 매우 다르다고 평가한 소설이다.

작자 미상 작품으로, 창작 시점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주인공 이춘풍이 조선 숙종 때 인물이라는 설정 때문에 18세기인 영조나 정조 때 소설로 보기도 한다.

주요 등장인물은 양반 이춘풍과 부인 김씨다. 춘풍은 부인이 모은 돈을 들고 평양으로 떠났다가 기생 추월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추월 집에서 심부름하는 하인이 된다. 이 소식을 접한 김씨는 남장을 하고 평양에 가서 추월을 규탄하고 춘풍이 한양으로 돌아가도록 한 뒤 집에서 남편을 맞는다.

김 교수는 이본(異本) 존재 양상과 유사한 작품 비교를 통해 이춘풍전 창작 시기를 추정했다.

그는 "현재까지 확인된 이춘풍전은 모두 28종"이라며 "이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필사된 텍스트는 성산 장덕순본으로 필사 시기가 1905년이고, 나머지는 1909∼1957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춘풍전 소장처가 국립중앙도서관을 제외하면 대부분 개인이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김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1912년 4월부터 1915년 12월까지 한국 고문헌을 적극적으로 수집했으나, 이춘풍전이 없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그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이춘풍전 필사 시점은 1931년"이라며 "1900년 이전에 필사한 이춘풍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고, 현존하는 이본은 1970년을 전후해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장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주장했다.

이춘풍전이 1900년 무렵 작품이라는 또 다른 근거는 판소리 '무숙이타령' 사설을 적은 대본인 '게우사'와 한성신보에 1896년 연재된 소설 '남준여걸'이다.

게우사는 1890년에 필사한 자료로 김종철 서울대 교수가 1991년 소개했다. 게우사 줄거리는 이춘풍전과 흡사하다. 무숙이가 평양 기생 의양에 빠져 재산을 잃고 의양 집에서 심부름한다는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이춘풍전은 게우사에서 주변부에 놓인 주인공의 어진 아내를 부각하고, 착한 기생 의양이를 나쁜 기생 추월로 바꾼 점이 다르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 훼절(毁節)소설의 남성 주인공은 여색에 대해 초연한 정남(貞男) 행세를 하지만, 게우사와 이춘풍전에서는 주인공이 방탕한 탕자"라며 "서사구조 유사성과 등장인물 동일성이라는 요인은 두 작품이 같은 뿌리에 있음을 알려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우사가 담아낸 여성 연대를 통한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도전의 면모를 이춘풍전은 오히려 가정 결속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며 "이춘풍전은 게우사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그 방향이 노골적인 가족이라는 근대적 사유로 귀결됐다"고 논했다.

남준여걸은 이춘풍전과 거의 같은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내용이 같다. 김 교수는 "세부 모티프에서는 제법 차이를 보이지만, 약간의 변개를 보인 이본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한성신보에서는 '금화사몽유록'을 직역한 '몽유역대제왕전'을 제외하면 고전소설에 바탕을 둔 작품이 없기 때문에 남준여걸은 한성신보에 처음 소개된 작품이고, 이춘풍전은 남준여걸과 게우사 이후 등장한 소설이라고 결론지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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