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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인민해방군 투입 협박속 홍콩인 수십만명 빗속 '평화시위'

송고시간2019-08-1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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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 빅토리아 공원에 방독면·수갑 찬 '민주여신상' 등장

시위대 "홍콩인 힘내라, 경찰도 법규 지켜라" 외쳐

중국군 투입설 추측 분분…"韓 촛불집회 잘 안다…우리도 버텨 승리할 것"

18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의 송환법 반대 집회장에 세워진 '민주 여신상'
18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의 송환법 반대 집회장에 세워진 '민주 여신상'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2019.8.18]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18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홍콩 빅토리아 공원.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인 수많은 인파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공원 한복판을 굳건하게 지키고 선 '민주 여신상'이었다.

1989년 6월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던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세워져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100만 중국 시위대의 상징이 됐던 '민주 여신상'이 20년 후 홍콩 땅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이날 '민주 여신상'은 노란 헬멧과 방독면을 쓰고 있었고, 손목에는 수갑을 차고 있었다.

이는 홍콩인의 지금 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톈안먼 시위 유혈진압처럼 홍콩 시위도 중국군에 무력진압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방독면과 수갑이 상징하는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분노가 그것이다.

우산을 쓰고 시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
우산을 쓰고 시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집회의 주제가 '검은 폭력과 경찰의 난동을 멈춰라'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교회 신도들과 함께 집회에 나왔다는 한 30대 여성은 "시위대와 경찰 모두 폭력에 호소해서는 안 되겠지만, 최근 홍콩 경찰의 폭력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치명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주말 시위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한 여성이 경찰의 빈백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하는 등 최근 홍콩 시위에서는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시위 참가자의 실명을 유발한 경찰의 폭력진압을 비판하는 시위대
시위 참가자의 실명을 유발한 경찰의 폭력진압을 비판하는 시위대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해 최근 시위 사태에서 폭력 사용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며 "경찰이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시위 진압 때 과도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살 아들의 손을 잡고 남편과 함께 나온 40대 주부 폴린 씨는 "경찰이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의무를 다할 때는 반드시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18일 홍콩 빅토리아공원의 송환법 반대 집회에서 시위대에 생수를 제공하는 위너씨
18일 홍콩 빅토리아공원의 송환법 반대 집회에서 시위대에 생수를 제공하는 위너씨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2019.8.18]

추최 측은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집회를 주최한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의 천쯔제(岑子杰) 간사는 이날 집회를 평화시위로 만들자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천 간사는 "오늘 하루 평화와 이성으로 비폭력 시위를 이루자"며 "홍콩인들은 용감하고 싸움에 능하지만, 또한 평화와 이성, 비폭력을 통해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우리의 요구에 응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도심 시위에서 많은 홍콩의 젊은이들이 헬멧과 고글, 마스크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거리에 나선 것과 달리 이날은 마스크조차 쓰지 않았다.

이들이 평화시위를 강조한 것은 인민해방군 투입마저 불사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위협'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에도 홍콩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중국 도시 선전(深천<土+川>)에서는 무장경찰 수천 명이 대규모 시위 진압 연습을 하는 장면이 목격됐고, 이는 중국 관영 매체들에 의해 자세히 공개됐다.

홍콩에서 10분거리 선전에서 목격된 중국 무장경찰 차량들
홍콩에서 10분거리 선전에서 목격된 중국 무장경찰 차량들

[로이터=연합뉴스]

이러한 중국 정부의 명백한 '위협'에 대해 시위 참가자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4살 때 미국에서 건너와 20여 년간 홍콩에서 거주한 조너선 씨는 "홍콩인으로서 나 또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최근 홍콩의 상황을 보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중국군 투입도 현실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시위 참여자들에게 차를 제공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위너 씨는 중국 정부가 무력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홍콩은 중국 경제에 있어 '황금알을 낳은 거위'와 같다"며 "전 세계가 홍콩 시위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력으로 진압해 그 거위를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집회 참가자들은 중국 정부의 위협에 맞서 스스로 결의를 불어넣듯 집회 중간중간 "홍콩인 힘내라"고 외쳤다.

18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송환법 반대 집회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
18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송환법 반대 집회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2019.8.18]

집회에 참여한 20대 후반 직장인 로이 씨는 한국의 '촛불집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얼마 전 시위에 나갔다가 친구들과 향후 송환법 반대 시위의 전개 방향에 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다"며 "그때 한국의 '촛불집회'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장이 나왔었다"고 전했다.

2016년 10월 29일부터 20주 동안 매주 열린 촛불집회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선고를 끌어낸 한국의 촛불집회 경험은 홍콩 시위대에게 적지 않은 인상을 남긴 듯했다.

최근 홍콩 애드머럴티 지역에 있는 정부청사 인근 집회에서 만난 '우산 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黃之鋒)도 촛불집회를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조슈아 웡은 "한국은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간 정부와 직선제를 쟁취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특히 대규모 도심 집회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뤄낸 촛불시위는 대단히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로이 씨는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상당수 사람은 우리의 투쟁도 한국의 촛불집회처럼 '끈질기게' 전개돼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며 "이를 통해 우리도 꼭 승리를 끌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 6월 홍콩 어머니들이 개최한 송환법 반대 촛불집회에서는 한 어머니가 기타를 들고 무대에 나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눈길을 끌기도 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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