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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세상] '감정노동자를 가족같이' 문구에도 시각차

송고시간2019-08-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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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방패' 없다" vs "가족 아닌데 가족으로 대하라니"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김민호 인턴기자 = 이달 초 'cherryb******'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한 외식업체 매장에서 내건 고객 안내문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안내문에는 '매장 직원이 가족의 한 사람일 수 있다'고 강조하며 고성, 욕설 등 직원에 대한 폭력을 자제하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누리꾼은 "내가 가게 직원에게 반인권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이 '가족'일 수 있어서가 아니다"라면서 "'노동자도 사람이다', '노동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달라' 등의 문구가 더 적절하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다.

한 외식업체 매장의 직원 응대 안내문
한 외식업체 매장의 직원 응대 안내문

[트위터 캡처]

가족의 개념을 감정노동자 보호용 '방패'로 사용하는 경우는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견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0월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홈페이지를 통해 배포한 전화 연결음 7종 가운데 4종에서도 가족과 관련한 표현이 발견된다.

'우리 엄마', '누군가의 딸·아들·엄마·아빠', '소중한 우리 가족' 등 감정노동자를 가족 관계에 빗대고 있는 것.

또 어느 기업이나 자유로이 사용하도록 오픈소스로 공개, 19개 기업과 관공서가 사용 중인 GS칼텍스의 '마음 이음 연결음'에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 등의 상담원을 가족처럼 느끼도록 묘사한 어구가 등장한다.

전화 연결음 예시를 만든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직접적인 표현도 좋지만 감성적인 표현을 쓰는 곳도 많아 7가지 중 절반가량에 가족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그대로 쓰라는 것은 아니고 자체 제작이 어려운 사업장에서 참고해서 쓰라고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의 통화연결음을 사용하는 LG유플러스 홍보팀 관계자는 "사람이 감정의 동물이다 보니 고객이 응대 근로자의 말을 좀 더 귀 기울여 듣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같은 연결음을 사용하는 세종시 민원콜센터 운영업무 담당자는 "멘트에서 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싫다며 일부 시민이 반발하기도 하지만 고객 응대 근로자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근로자들도 만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트위터에서 고객 안내문이 비판받은 외식업체 관계자도 "기업이 '제2의 가족'이라는 공감 키워드로 홍보를 하는 맥락에서 안내문을 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정노동자
감정노동자

[연합뉴스TV 제공]

그러나 감정노동자측은 '가족'을 앞세운 보호는 근본적인 대응책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감정노동 전국네트워크 이성정 집행위원장은 24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서비스) 현장에서는 '폭언·폭력은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며 "그러나 처벌만 강조하면 너무 경직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의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콜센터 노동자 등이 속한 희망연대노조 신희철 조직국장도 "가족을 내세우며 (감정노동자를 보호할 것을) 돌려서 표현하다 보면 이용자에게 경각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가족을 강조해도 폭력을 행사하는 민원인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법적 조치 등이 사전에 제대로 안내되지 않으면 나중에 폭언 등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근거가 없다'고 주장할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5년 발간한 '감정노동 종사자 직업건강 가이드라인'은 고객 응대 종사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감정노동 종사자와 소비자 간에 평등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객관적 서비스 기준을 마련하고 ▲소비자가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도록 감정노동과 관련한 객관적 기준을 고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원장을 지낸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성규 교수는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 '가족처럼 대하라'라는 것은 어불성설로 특히나 유교적 전통이 남은 우리 사회는 가족 안에서 차별적, 수직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며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가족이든 아니든 모르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답게 예의를 갖춰 대하는 시민의식이 성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대 사회학과 최항섭 교수는 "'가족처럼 생각하라'라는 말은 노동자에게 고객 갑질이나 감정 분출도 다 받아들이라는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상쇄할만한 노동자 인권 침해 요소도 있다"면서 "앞으로 1인 가구가 더 늘어나 가족의 의미가 쇠퇴하는 시기가 오면 상업 현장에서 가족을 강조하는 풍토는 옅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csm@yna.co.kr

nowhe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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