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적당한 타협 안돼" 숨가빴던 젊은 미술가의 자취를 보다

송고시간2019-08-21 18:20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학고재서 신경희 유작전…1990년대 화단 스타였으나 투병하며 절필 후 별세

장르 구분 없이 재료·기법 탐구에 몰두한 작업 전시

신경희,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기억, 194×154cm, 수제 종이에 혼합 매체, 1995
신경희,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기억, 194×154cm, 수제 종이에 혼합 매체, 1995

[학고재갤러리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작업을 하면서 소망하는 것이 하나 있다. 20년 후, 지금 하는 일기 쓰기 작업을 뒤돌아볼 때 (중략)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물이 아닌 내 삶의 진실한 기록물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1995년 젊은 작가를 위해 신설된 공산(公山)미술제의 첫 대상 수상자인 신경희(당시 31세)는 수상기념전 도록에 이같이 썼다.

신경희는 그해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기억'을 완성했다. 허여멀건 추상화처럼 보이는 그림은 작가가 직접 만든 종이에 철사로 낙하산 수백 개를 수놓은 대작이다. 재료와 기법의 부단한 연구, 손으로 만들어낸 서정적인 정서를 보여준다.

신경희는 1990년대 국내 화단에서 주목받는 대표적인 젊은 작가였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모색' 전시에 초대받았고, 공산미술제 대상에 이어 석남미술상을 받았다. 갤러리인 등 국내 화랑뿐 아니라 호주, 미국에서도 그의 개인전이 쉼 없이 이어졌다. 판화 부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템플대 타일러스쿨오브아트는 1999년 '가장 성공한 졸업생'으로 신경희를 호명했다.

21일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막한 '땅따먹기'는 어느샌가 완전히 잊히다시피 한 신경희 자취를 돌아보는 자리다. 건강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2010년부터 암으로 투병하면서 붓을 꺾었고, 7년 뒤 세상을 떠났다.

신경희 유작전 '땅따먹기' 전시장
신경희 유작전 '땅따먹기' 전시장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신경희 유작전 '땅따먹기' 간담회에서 사람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2019.8.21. airan@yna.co.kr

오랜 친구인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를 비롯한 지인과 유족이 파주 헤이리 작업실에 남겨진 작품 중 초·중기 작업 39점을 추려 유작전에 내놓았다.

어린 시절 땅따먹기 등 개인적인 기억을 일기 쓰듯 작업으로 풀어낸 작가는 붓 대신 손을 즐겨 썼다. 장르 구분에 연연하지 않았고, 재료 탐구에 지독할 정도로 매달렸다.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방울방울'이 그 단적인 예다. 색칠한 비닐을 여러 겹 손바느질로 꿰맨 뒤, 왁스에 담갔다 꺼낸 솜방울 수백 개를 일일이 달아 만든 회화다.

'정원 도시' 연작은 식물 도상에서 추출한 이미지를 기하학적 추상으로 풀어냈다. 수천수만 번 점을 찍고 선을 그어 완성한 그림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든다. "적당한 타협물이 아닌, 진실한 기록물"을 남기고자 고군분투했을 고통을 짐작게 한다.

반복과 군집은 신경희의 다채로운 작업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템플대에서 판화로 석사학위를 딴 영향도 있겠지만, 치밀했던 그의 기질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1990년대 구상과 추상으로 나뉘었던 한국 미술이 혼성화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신경희는 이를 앞장서서 이끌었다"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다음 달 10일까지.

생전의 신경희 작가
생전의 신경희 작가

[학고재갤러리 제공]

airan@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