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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산하에 깃든 '불온한' 기운

송고시간2019-08-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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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 제주·인천서 서울 리얼리즘과 구분되는 작업…가나아트센터 초대전

현대사 온몸으로 부대끼며 느낀 비극적 실존 그림에 녹아들어

붉은 물결
붉은 물결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막한 강광 초대전 출품작. 작가는 1989년 완성한 그림에 '헤엄치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2019.8.25. airan@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시뻘건 물속을 누군가 유유히 가로질러 헤엄치는 중이다. 불이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한 저 흐름은 열 살 소년이 겪은 한국전쟁의 화마였을까, 20대 중반 젊은이가 마주한 월남의 전장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오래전 제주에서 일어난 학살의 흉터였을까.

22일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내걸린 강광의 1989년도 그림에는 '헤엄치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49살에 이 그림을 그렸고, 이제 여든을 앞둔 작가는 말이 없었다. 별 뜻이 없다며, 마음 가는 대로 보라고 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림에서는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함께 걸린 1980년대 다른 그림들도 마찬가지다. 1982년 신군부가 김경인, 임옥상, 신경호, 홍성담과 함께 강광을 '불온 작가'로 낙인찍고 작품들을 압수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1940년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난 강광이 서울에 온 것은 6살 때였다. 4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강광은 1965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1968년 여름 귀국한 그가 정착한 곳은 고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였다. 그곳에서 중고 교사와 대학 강사로 생계를 꾸리는 한편, '관점'이라는 동인을 조직해 지역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강광 초대전 '아름다운 터에서'가 열리는 가나아트센터 1층 작업은 이러한 과거와 떼어놓을 수 없다. '들길'(1984), '풍경-썰물'(1983) 등 우리네 산하를 극도로 단순화한 화면에 눈이 텅 빈 인물을 하나씩 등장시킨 무채색조 그림에는 바람 잘 날 없던 현대사와 삶의 비극적인 존재가 함께 서려 있는 듯하다.

강광, 그날, 합판에 유채, 98×132cm, 1981
강광, 그날, 합판에 유채, 98×132cm, 1981

[가나아트센터 제공]

구상성과 추상성을 함께 띠며, 투박하되 부드러운 강광의 그림은 같은 시기,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추던 서울 중심의 리얼리즘 미술 흐름과는 결이 다르다.

과묵한 작가는 전시 작가노트에서 이러한 생각을 슬쩍 꺼내놓았다. "예술가는 한 시대를 고발하고 정화하는 예언자다. 음악이나 문학, 그 외 다른 수단으로 표현되는 예술가의 사명 또한 마찬가지다. 이는 예술가 사회참여와 구분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박신진 가나아트센터 큐레이터는 "강광이 동시대의 사회비판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조형성을 실험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천 강화도 마니산 자락으로 삶터를 옮긴 뒤인 1990년대∼2000년대 작업은 한결 화사하며,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호랑이를 찍어낸 그림에서는 민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대작 위주 20여점을 선보인 '아름다운 터에서'는 2012년 제주도립미술관 초대전 '제주-강광-인천'을 다녀간 이호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마련됐다. 전시는 다음 달 22일까지.

초대전 여는 강광 작가
초대전 여는 강광 작가

(서울=연합뉴스) 2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를 찾은 강광(79) 작가. 강광의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작업을 망라한 초대전 '아름다운 터에서'는 다음 달 22일까지 열린다. 2019.8.24 [가나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photo@yna.co.kr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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