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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액티브] 한여름 오토바이 헬멧 속은…

송고시간2019-08-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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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배달업종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서울=연합뉴스) 주보배 김민호 인턴기자 = "버스가 옆에 잠깐이라도 지나가면 화염 방사기를 쏘는 것 같다고들 해요. 차에서 나오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폭염이 기승을 부린 이달 초 오토바이를 잠시 멈추고 서울 강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달업 종사자 박재덕(46)씨와 강모(20대 중반)씨의 얼굴은 새까맸다. 인터뷰를 위해 잠깐 시간을 냈다는 강씨는 자꾸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봤다. '콜'이라고 부르는 배달 주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조금 쉬기로 했지 않느냐"는 동료 박씨의 핀잔도 소용이 없었다.

"콜이 뜨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져요. 빨리 가야만 할 것 같고…"

한여름 헬맷 밖 온도는 섭씨 48.9도? 헬멧속은 섭씨 60도 가까이 올라간다고 한다.
한여름 헬맷 밖 온도는 섭씨 48.9도? 헬멧속은 섭씨 60도 가까이 올라간다고 한다.

[라이더유니온 제공]

지난달 배달노동조합 '라이더 유니온'은 혹서기 오토바이 배달업 종사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폭로하며 폭염 수당 도입, 쉴 권리 보장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나 '배달업 종사자는 개인 사업자로 더우면 쉴 자유가 있는데 왜 사회적 대책을 요구하나'라는 댓글이 달리는 등 여론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한여름 배달업 종사자의 노동 환경은 실제로 어떨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또 다른 '라이더' 이현준(가명·30대 중반)씨는 7월 한 달간 쉰 날은 단 이틀이라고 했다.

그는 "더위가 심한 낮은 주문이 몰리는 때이기도 해서 그때 쉬면 그만큼 수입이 준다는 생각 때문에 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뿐 아니라 취재에 응한 라이더들은 모두 왜 폭염에도 쉬지 않느냐는 질문에 "생계를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저임금으로 유지되는 배달 산업의 구조 때문에 쉬고 싶을 때 쉴 수가 없다는 것.

배달업 종사자가 1건당 받는 운임은 3천원 정도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은 "오토바이 대여료와 보험료 같은 비용을 고려하면 1시간에 6∼8건을 해야 최저임금(2019년 현재 8천350원) 수준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달을 담당하는 구역이 넓고 '콜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이현준씨는 "내가 속한 성북구와 강북구는 지역이 넓고 콜 수가 적어 음식을 픽업하는 장소와 목적지 간 거리가 3km 이상 떨어진 경우가 많다"며 "하루에 총 140km가 넘는 거리를 주행해야 목표치인 35∼40건 정도를 채울 수 있어서 사실상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배달업에 종사한 지 29년째라는 박재덕씨는 8월초에 직접 헬멧 내부 온도를 재봤다고 했다.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한 뒤 헬멧 내부 온도를 재봤더니 전자 온도계 수치가 섭씨 60도 가까이 올랐다.

그는 "헬멧을 벗으면 머리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다. 잠깐 시간이 나서 헬멧을 벗더라도 바로 다음 오더(주문)를 받고 나가야 해서 열이 식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또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2∼5시에도 배달 대행업체가 할인 쿠폰을 발행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바쁠 때도 있다"고 했다.

이현준씨는 최근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는 사고를 겪었다. 휴일 없이 장시간 근무한 탓에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배달에 나섰다가 벌어진 사고였다.

이씨는 "장시간 뜨거운 햇빛에 노출되면 몽롱한 느낌이 들면서 기운이 빠지는데 그때 쉬지 못하고 배달을 나간 적이 많았다"며 "사고로 일주일 동안 일을 하지 못하고 있어 가족을 책임질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도로 위의 배달 노동자
도로 위의 배달 노동자

[연합뉴스TV 제공]

"정말 더울 때는 어떻게 쉬냐"고 묻자 "요령껏 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박씨는 "음식점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거나 다음 배달을 대기하는 몇 분간 숨을 돌리는 것이 전부"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마저도 시원한 곳에서 앉아서 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휴식다운 휴식은 아니다"고 했다.

박씨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강씨도 "음식점 안에서 배달할 음식을 기다리는 몇 분이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는 유일한 시간"이라며 "하지만 라이더가 음식점 안에서 대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업주가 많아 밖에서 땀을 흘리며 서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단골 휴식처'는 주차장이라고 한다. 강씨는 "아파트 주차장이나 골목 그늘에서 주로 쉰다"며 "등을 기댈 수 있는 곳도 별로 없고 그늘이라고 해도 한여름에는 시원하지 않아서 잠깐 쉰다고 해도 피로가 가시진 않는다"고 털어놨다.

여름 내내 폭염을 겪고 나서 얻은 건 식욕 부진과 소화불량, 탈모 증상이라고도 했다.

이경희(33)씨는 전화통화에서 "장시간 폭염 속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보면 현기증이 나면서 속이 메스꺼운 증상은 기본으로 달고 산다"고 말했다.

이현준씨도 "일하다 혹시라도 쓰러질까 봐 알약 형태의 포도당을 늘 들고 다닌다"며 "식욕부진,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생긴 지는 이미 오래"라고 말했다.

폭염 속 배달업 종사자의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류현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폭염 대책을 요구한 라이더 유니온 회견에서 "배기가스를 마셔야 하고 아스팔트의 복사열을 견뎌야 하는 배달 노동자의 작업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며 "더위와 폭우로 고통받는 이들의 노동 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염에 폭우까지, 라이더가 위험하다'
'폭염에 폭우까지, 라이더가 위험하다'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라이더유니온이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의 폭염, 폭우 안전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부 배달 대행업체에서 법적 지위가 개인사업자인 배달 종사자를 직접 고용한 직원처럼 부린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27일 서초구 '요기요'(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요기요 측이 배달 노동자에게 시급제로 임금을 지급하고 업무 지시와 감독을 하는 등 '직원'처럼 관리했지만 각종 수당은 주지 않는 등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배달업 종사자가 법적으로는 개인 사업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배달 대행업체에 속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껏 꾸준히 제기됐다.

인권법재단 공감의 김수영 변호사는 "배달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법적 정의와 다를 바가 없다"면서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방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jootreasure@yna.co.kr

nowhe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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