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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지배하는 평평함…다시 보는 평면의 가치

송고시간2019-09-0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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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W. 힉맨 '평면의 역사'

B. W. 힉맨 '평면의 역사'

세상을 지배하는 평평함…다시 보는 평면의 가치 - 1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우리는 평면이 지배하는 공간에 산다. 평평한 종이, 평면 디스플레이, 평평한 바닥과 벽, 도로와 철도, 의자와 테이블 등 평면은 이 세상의 근간을 이룬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평면성을 거의 알아채지 못하고 불가피한 것 또는 거의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지한다. 평평함에서 지루함과 피로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B. W. 힉맨의 '평면의 역사'는 이처럼 이중적인 평면의 실체를 파고드는 책이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와 서인도대학교 명예교수로 역사와 지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저자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면서도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했던 평면의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고찰한다.

평면은 문명화의 상징이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평평한 표면은 계획돼 만들어지거나 인위적으로 설계된 것들이다. 5천만㎞가 넘는 도로, 100만㎞에 이르는 철도가 평평하게 다져진 농경지와 건축학적으로 평면인 도시를 연결한다.

평면은 굴곡 없음, 수평, 예측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속성은 이동과 활동에 최적화된 것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효용성이 크다.

반면에 평면은 단조로움, 단일성, 부재, 결핍, 평범, 결함과 같은 뜻도 담고 있다. 흔히 우리는 흔히 평면적인 것보다 입체적인 것을 더 높게 평가한다.

평평한 풍경은 특징 없음, 지루함, 흥밋거리가 없음, 우울함으로 폄하되기 쉽다.

그 이유는 지금 시대의 인간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즉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웅장함 등과 같은 것의 반대 개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평발, 빈약한 가슴, 납작한 얼굴, 낮은 코 등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신체적 특징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진 문화도 있었다.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정을 원한다. 굴곡과 방해물을 원치 않는다. 평평한 길이 걷거나 운전하기 좋으며, 평평한 부지가 안전하고 건물을 짓기에 좋다.

평면이 없는 현대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음에도 평평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갈증은 계속되는 셈이다.

이처럼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평평함의 가치를 파고들수록 평면의 세계는 새롭게 다가온다.

평면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규모와 시각의 차이 때문에 달라지기도 한다.

바다에서 배는 평평한 대양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구는 둥글다. 끝없이 뻗은 지평선도 마찬가지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평면성이라는 개념은 모두 사라진다.

저자는 "사물은 규모와 시각에 따라 달라 보이기 때문에 평면의 공간적 개념이 은유적이고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의미를 띨 때 물질세계와 마찬가지로 모호해진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평면의 중심적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먼저 인간이 평면을 인식하는 방식을 짚어본다. 이어 인위적으로 평면을 만드는 이유와 방식을 다룬다. 끝으로 지도 제작과 예술에서는 평면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지구 환경 변화는 세상의 풍경을 어떻게 바꿀지 이야기한다.

평평함의 세계를 저자와 여행하다 보면 평면적인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소소의책. 324쪽. 2만3천원.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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