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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n스토리] 사재 털어 궁중 꽃 박물관 세운 무형문화재 황수로

송고시간2019-09-0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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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채화장인, 경남 양산 소재 박물관 21일 개관

조선시대 궁궐 의례 장식 재현 "박물관은 살아있어야…박제 안 돼"

황수로 궁중채화장
황수로 궁중채화장

[한국 궁중 꽃 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연합뉴스) 박창수 기자 = 200억원에 가까운 사재를 털어 옛 궁중에서 사용하던 꽃장식인 궁중채화(宮中綵花) 박물관을 세운 이가 있다.

국가 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장 황수로(85) 장인이다.

예와 악을 중요시하던 조선시대에는 궁에서 많은 의례가 진행됐는데 꽃장식에는 생화가 아닌 조화를 사용했다.

"생명을 존중하는 불교 사상과 왕가의 영원성을 드러내기 위해 시들지 않는 조화를 사용했다"며 "상의국에 소속된 화장이 비단이나 모시, 삼배, 종이 등으로 조화를 만든 게 궁중채화"라고 황 장인은 설명했다.

경남 양산시 매곡외산로에 자리 잡은 '한국 궁중 꽃 박물관'에서 만난 황 장인은 "꽃을 하나 만들기까지 6개월씩 걸린다"며 일부 과정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고령으로 청력은 다소 쇠퇴했지만 또렷한 목소리, 그리고 꼿꼿한 자세로 3∼4명의 제자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며 연꽃잎 하나를 만들어 보였다.

"비단을 사용해 꽃을 만드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특히 조화에 밀랍을 묻혀 내구성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궁중 꽃 박물관
한국 궁중 꽃 박물관

[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황 장인이 궁중채화를 시작한 것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설치미술 작업을 하던 작가였던 그는 한 사찰에서 작업에 필요한 나무를 꺾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 조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자르는 꽃보다 더 많이 만들고, 가꾸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동아대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고려사 번역에 참여한 것도 계기가 됐다.

하지만 사료는 희귀했고, 연구도 안 돼 있었으며, 유물은 드물었다.

그는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의궤, 이규보의 청장관전서에 나오는 윤회매십전 등 사료와 도록 등을 연구해 전통 채화 양식을 알아냈다.

이후 황 장인은 1992년 제1회 국제 꽃 예술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2005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개최 기념 특별전,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 초대전, 2013년 프랑스 파리 문화유산 박람회, 2016년 미국 클리블랜드뮤지엄 초대전 등 국내외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는데 그 과정도 만만찮았다고 회상했다.

[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처음 문화재 장인 신청을 했을 때 꽃을 보고 '남대문시장에서 사 온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며 "이후 연구원들과 함께 문헌을 주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10년 만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박물관 건립은 황 장인 일생의 숙원 사업이다.

재력이 있지만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후원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탰고 그중에는 함께 작업하다가 암 투명 끝에 숨진 제자의 아들도 있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설계에서부터 건축 등 모두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해 나중에는 되레 거절했다"며 "박물관은 작가 의도대로 건설돼야 하고 살아 있어야 하며 박제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황 장인은 "앞으로 박물관을 운영하는 게 걱정이기는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잘 운영해 어렵게 재현한 궁중 꽃을 잘 보전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박물관은 21일 개관을 기념해 '고종정해진찬의'를 재현한 '왕조의 신비' 특별전을 개최한다.

pc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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