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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들의 아픔] ① 자살 유족 "지금도 따라갈까 생각하죠"

송고시간2019-09-09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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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군'이지만 관심 부족 '사각지대'…자살시도 경험 일반인의 7.6배

"경험자가 도와주는 시스템 만들어야…정신치료·경제적 지원도 필요"

유족
유족

[연합뉴스TV 캡처]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남편이 세상을 뜨고 나니 세상 맞은편에 나 혼자 놓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잘 지내는데 나만 혼자라고 생각되니까요. 남편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사실 자살 유가족은 아주 위험해요."

서울에 사는 임시은(가명·38)씨는 세계 자살예방의 날(10일)을 하루 앞둔 9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남편을 잃은 고통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임씨의 남편은 2016년 여름 어느 날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했다. 평소에도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를 겪었고, 병원에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재산 문제로 가족과 다툼이 생기면서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은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남편을 떠나보낸 임씨는 3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임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나쁜 생각을 할 때가 있다"며 "마음이 유리알이다 보니 별것 아닌 일에도 상처를 받는다. 그러다 보면 위험한 순간들이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17년 1만2천46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에 34명꼴이다. 자살 1건당 5∼10명의 유족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세계보건기구(WHO) 발표를 적용하면 그해에만 많게는 10만명 이상이 가족 자살에 따른 악영향을 받은 셈이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자살자 유족은 가족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정', 큰 슬픔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울', 자살자를 원망하게 되는 '분노', 자신 때문에 사망했다는 '죄책감' 등 크게 4가지 감정을 경험한다.

문제는 이런 감정이 깊어지면 유족이 고인처럼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지혜 중앙심리부검센터 유족지원팀장이 지난 8월 자살예방 종합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살 유족의 실태와 효과적인 지원방안 모색'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자 유족(2촌 이내 혈족과 배우자 또는 고인과 동거했던 4촌 이내 혈족)은 고인 사망 후 일반인보다 자살 시도 경험이 7.64배, 자살 계획 경험은 8.64배 높다.

자살자 유족들의 잠재적 위험도에 비해 사회적 관심은 낮은 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족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사각지대에 놓인 자살 고위험군'이라고 한다. 언제든 죽음을 결심할 수 있지만 심각하게 여겨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다.

올해 정부의 자살 예방사업 예산 218억원 중 유족 지원사업 예산은 6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올해 처음 편성됐다.

전문가들도 자살을 줄일 방법의 하나로 유족 지원을 꼽는다. 특히 같은 상황을 겪은 유족들이 다른 유족을 위로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삶을 지속할 의지를 줘 자살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9년 전 남편을 잃은 김모씨는 이후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신을 책망하며 지냈다. 두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남편 일을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한 방송사 프로그램의 제안으로 미국에서 열린 '자살예방의 날' 행사에 아들들과 참석했고, 같은 아픔을 겪은 유족들과 이야기하면서 회복과 위로를 경험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아이들과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 대화시간'을 갖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자살 예방 강사로 활동한다.

김씨는 유족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이는 같은 아픔을 경험한 유족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을 만나면 위로받을 뿐 아니라 '나도 저렇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며 "유족이 또 다른 유족을 도울 수 있는 체계를 사회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블로그 갈무리]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블로그 갈무리]

남편을 잃은 임시은씨 역시 서울시 자살예방센터가 자살 유족을 위해 운영하는 '자작나무 모임'을 통해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자작나무 모임은 같은 아픔을 경험한 유족들이 모여 유대감을 형성하고 회복하고자 대화를 나누는 자리다. 임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에 참석해 다른 유족들을 만난다.

임씨는 "유족 모임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며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하다 보면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있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고, 말하기 힘든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것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했다.

유족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다. 생계를 책임지던 가족 구성원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 경우 남은 가족이 궁핍에 시달리다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할 우려도 있다.

이구상 중앙심리부검센터 부센터장은 "자살 사고가 나면 장례 절차부터 유족 정신치료, 경제적 도움까지 한 번에 지원하는 원스톱 서비스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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