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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목사' 박형규 목사 3주기…"민주화운동의 인도자"

송고시간2019-09-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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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규목사기념사업회 '학술심포지엄' 개최

수주(水洲) 박형규 목사
수주(水洲) 박형규 목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며 '길 위의 목사'로 불린 수주(水洲) 박형규 목사 3주기를 맞아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박형규목사기념사업회는 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학술 심포지엄을 열어 과거 고인이 걸은 민주화 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권진관 학술심포지엄 준비위원장은 "수주 목사님은 우리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삶을 산 분"이라며 "큰 가슴으로 우리를 품어주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학과 미소로 우리를 험한 민주화운동 여정 내내 인도해 온 분"이라고 평가했다.

심포지엄 발제자로 참여한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박형규·본회퍼 그리고 유신체제'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1970년대 전후 한국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사회운동은 박형규 목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항상 사건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했다.

이어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중운동이 최고조에 이르는 동안 극적인 사건들이 계속되었고, 그 극적인 사건들이 이어지는 과정은 박형규 목사의 삶의 여정 그 자체와 그대로 겹쳤다"고 돌아봤다.

서 교수는 "그러한 삶 가운데 박형규 목사의 신학 또한 꽃을 피웠다"며 "한편으로는 체득한 신학적 입장이 그의 실천적 삶의 동기가 됐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실천적 삶 가운데서 고유한 한국적 신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오용식 무주지역자활센터장도 '빈민운동의 선구자'라는 발제문에서 고인이 빈민지역 조직운동을 받아들여 빈민운동의 선구자로서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오 센터장은 "모두가 두려워하고 무너지는 민주주의에 침묵할 때 실무자들과 함께 구속되고 재판받는 과정을 통해 지식인과 성직자, 학생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해서 민주화운동 대열에 동참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2016년 8월 18일 94세로 세상을 떠난 박형규 목사는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박정희 유신체제 때인 1973년 4월 기독교 부활절 연합예배 때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플래카드와 전단을 배포하려다 붙잡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78년에는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3·1 민주선언'을 발표했다가 또다시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생전 모두 6차례 옥고를 치렀다.

그의 거리 위 투쟁은 전두환 군사정부 때에도 이어졌다. 정권의 집요한 방해로 교회 안에서 예배를 볼 수 없게되자 6년을 거리에서 예배를 올린 일은 국제사회까지 널리 알려졌다.

고인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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