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봄이 왔지만 봄을 몰랐던 1945년, 두 여인이 있었네

송고시간2019-09-15 06:00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국립오페라단 신작 '1945' 고선웅 연출 인터뷰

"생명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많은 예술인이 문화로 역사를 조명했다. 국립오페라단의 선택도 그랬다. 이달 말 개막하는 신작 오페라 '1945'는 해방 소식이 전해진 1945년을 다룬다.

그런데 독특하다. 애국심을 고취하거나 반일감정을 돋우는 방식이 아니다. '해방'과 '독립' 같은 거대한 단어로 뭉뚱그리지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지도 않는다. 인물의 삶은 저마다 이유를 갖고 생생하게 복원된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고선웅(51) 연출을 만나 이 독특한 작품에 대해 물었다.

오페라 '1945' 원작인 국립극단의 2017년 연극
오페라 '1945' 원작인 국립극단의 2017년 연극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1945' 원작은 국립극단이 2년 전 선보인 동명 연극이다. 동시대 최고 극작가로 평가받는 배삼식 작가가 자신이 쓴 원작을 오페라에 맞게 각색했다. 여기에 최우정 작곡가가 1930∼40년대 유행한 창가와 군가 등을 차용해 곡을 붙였다.

1945년 가을 만주.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이한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전재민(戰災民) 구제소에 머물고 있다. 고선웅은 이 시기를 '혼돈'이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봄이 왔지만 봄을 느낄 수 없고, 물가로 내려갔지만 물을 마실 수 없는 상태인 거죠. 우리나라가 아닌 만주 땅에서 해방이 온 게 실감 났겠어요?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혼돈의 시기였을 겁니다."

어느 날 구제소에는 조선 여인 '분이'와 일본 여인 '미즈코'가 도착한다. 일본군 위안소에 갇혀 있던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구제소까지 왔다. 조선으로 향하는 열차에는 조선인만 탈 수 있지만, 분이는 함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미즈코를 버릴 수 없다. 미즈코는 아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아이까지 가진 상태다. 분이는 미즈코를 벙어리 동생으로 속이고 자매 행세를 한다. 결국 국적이 들통난 미즈코에게 분노의 화살이 향할 때도, 분이는 그를 품으며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숭고함을 지킨다.

고 연출은 "납득할 수 없는 부도덕이 범람하던 시대였다. 전쟁이 한 개인의 삶을 침탈하고 착취하는데, 그 시절을 견딜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준 사람의 국적이 무슨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1945'는 결국 평화와 생명에 대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오페라 '1945' 고선웅 연출
오페라 '1945' 고선웅 연출

[국립오페라단 제공]

창작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국립오페라단은 1962년 '왕자 호동'을 시작으로 '천생연분', '봄봄', '동승' 등 우리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를 다수 만들어냈지만,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공연되는 작품은 많지 않다. 다행히 고 연출은 연극 '푸르른 날에', 뮤지컬 '아리랑',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에서 한국적 소재를 무대로 옮기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인물. 그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 사람이다. 다른 건 간이 안 맞고, 외국 나가도 별로 좋은 줄 모르겠다. 그러니 한국 이야기를 한다"며 "'1945'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이야기라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작품에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70명을 포함해 총 160명의 인원이 올라간다. 2018 평창패럴림픽 개·폐막식에서 1천명의 움직임을 진두지휘한 고 연출은 "이 정도면 할 만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탈리아어, 독일어로 노래하는 게 익숙할 성악가들이 절절한 우리말 가사에 눈물을 훔치며 연습 중이라고 했다.

고 연출은 "배삼식 작가 특유의 넉넉한 품이 있다. 해학이 자리할 요소가 적은 시대 배경이지만, 이 안에는 사랑도 있고 유희도 있고 사람 사는 모습이 있다. 그래서 성악가들도 연기에 더욱 몰입해주는 듯하다"고 말했다.

요즘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극작가 겸 연출가인 고선웅. 앞으로 계획을 묻자 몇 년째 똑같은 대답이라며 모자를 매만졌다.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고 살았어요. 딱히 계획이라기보다는, 주어진 걸 하나씩 하면서 지냈습니다. 훌륭한 성악가들과 훌륭한 노래, 훌륭한 대본이 있는 '1945'를 많은 분이 보러 와 주시는 게 당장의 바람이에요."

공연은 오는 27∼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0월 4∼5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다. 서울 공연 관람료는 1만∼8만원.

오페라 '1945' 고선웅 연출
오페라 '1945' 고선웅 연출

[국립오페라단 제공]

clap@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