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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 "요즘 한국 영화 식상…돈의 논리로 만들어"①

송고시간2019-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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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감독 같은 신인, 봉준호처럼 키우려면 지속해서 지원해야"

"젊은 영화감독 중심으로 새로운 영화 운동 일어나야"

"한국영화100주년기념사업 준비 한창…스타 많이 참여했으면"

이장호 감독
이장호 감독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장호 감독이 19일 연합뉴스 광화문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19. 9. 19
jin90@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이도연 기자 = "한국 영화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네요."

올해 10월 27일은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 최초의 영화로 꼽히는 '의리적(義理的) 구토(仇討)'가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됐다. 이를 기념해 다음 달 10월 26~27일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배우 장미희와 함께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장호(75) 감독을 최근 광화문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나 행사 준비와 소회 등을 들어봤다.

이 감독은 "요즘 한국 영화가 성공한 영화 공식만 좇다 보니 식상해졌다"면서 "젊은 영화감독을 중심으로 새로운 영화예술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1970∼1980년대 리얼리즘(사실주의) 영화의 선구자로 꼽힌다. 1960년대 중반 신필름에 들어가 신상옥 감독 밑에서 일했고, 1974년 신성일을 기용한 장편 데뷔작 '별들의 고향'을 선보였다. 국도극장에서 단관 개봉한 이 영화는 당시로는 최다인 46만 명을 불러모았다. 이 감독은 이후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비롯해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어우동'(1985), '공포의 외인구단'(1986),'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시선'(2013) 등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이장호 감독
이장호 감독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장호 감독이 19일 연합뉴스 광화문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19. 9. 19
jin90@yna.co.kr

다음은 이 감독과 일문일답.

-- 100주년 행사 준비는 잘되는지.

▲ 행사가 닥쳐오는 게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념행사 바로 전날 다른 대규모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잡혀있어 무대 설치 등에 어려움이 있다. 또 행사 당일 스타를 많이 불러야 하는데, 매니지먼트사들과 연락해보니 쉽지 않더라. 배우들이 옛날처럼 협조를 잘 안 한다. 지금은 전부 돈으로 계산해야 하는 시대다. 그래도 많은 VIP를 초청하려고 감독이나 PD 등이 개인적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이런 행사를 한번 한다는 게 피 말리는 일이더라. 이렇게 힘들게 하고도 (행사 뒤에) 욕먹을 것 같다.

-- 보람도 있을 것 같다.

▲ 그나마 올해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타는 바람에 빛이 났다. 봉준호 감독이라는 효자 하나 잘 둬서 다행이다. 지금 한국 영화는 세계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경제보다 영화가 더 앞선 것 같다.

-- 요즘 한국 영화를 어떻게 보는지.

▲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너무 돈의 논리로 만든다. 관객의 문화 의식이 높아지고 그에 맞춰 영화도 변하고 발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악순환이다. 관객 취향에 맞춘다고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스피디한 영화만 만든다. 예전에 할리우드 자동차 추격신 등을 보면서 한국 영화가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도 한풀이하듯이 그런 영화만 만든다. 그런 영화가 1천만명이 든다고 생각하고 만들다 보니 한국 영화가 똑같아지고, 점점 식상해진다. 감동적인 영화가 흥행해야 투자자들도 이런 영화도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 텐데, 안타깝다. 전부 '극한직업' 등 성공한 영화에서만 모델을 찾는다. (대부분 영화가) 잠깐 눈요기를 하고 나면 내가 무슨 영화를 봤는지, 생각도 안 나고 감동도 없다.

-- 한국 영화가 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영화예술 운동 같은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젊은 감독들도 데뷔하려고 독립영화를 만들지만, 독립영화가 성공하면 곧 기성 상업 영화 쪽으로 옮긴다. 그러다 보니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 영화예술 운동은 무엇을 뜻하나.

▲ 옛날에는 '한국 영화가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 A급 감독들이 작가의식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엘리트 감독이 스스로 먼저 대기업과 손을 잡는다. 예전에 제작자와 결합하는 것은 B급 영화를 만들던 의식이었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젊은이들도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다가 성공하면 그쪽으로 휩쓸리니까 지속적인 영화 운동이 안된다.

-- 최근 눈여겨본 젊은 감독이 있나.

▲ 얼마 전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절제하면서 감독이 가진 장점을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감탄했다. 관객 입장에서 영화에 빠지면서 보게 되더라. 이런 영화들이 더 확산하려면 김보라 감독이 봉준호처럼 계속 자기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신인 감독을 계속 대우해주고 지원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재능있으면 데려다가 대기업으로 속해버리게 만드는 구조다.

-- 과거에는 제작 환경이 어땠나.

▲ 옛날에는 제작비가 많이 들지는 않았지만, 기자재 등이 안 좋았다. 그래도 감독이 직접 기획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 제작자는 돈만 투자하지, 기획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도 감독이 현장에서 고치기도 했는데, 지금은 철저히 기획사가 검증한, 투자자 요구에 맞춘 시나리오가 나오다 보니 그것대로 찍지 않으면 안 되더라. 감독이 권한이 줄어들고 (스튜디오 중심의) 할리우드식으로 바뀌었다.

--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같다.

▲ 맞다. 다만 사회 변화를 틈타서 영화가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 시대 전후에 젊은이들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그때 '네오리얼리즘'(2차 세계대전 이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포착하고자 했던 운동)이 전 세계 영화 흐름을 바꿔놨다. 프랑스에서도 누벨바그가 나왔다. 미국은 텔레비전이 전국에 보급되면서 TV와 경쟁하다 보니 차별화를 위해 대작 중심 영화를 만들었다. '클레오파트라' 같은 영화를 만들면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그런 영화에 대한 반발로 젊은 사람들이 뉴욕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게 '뉴 아메리칸 시네마'다. 그런 흐름이 미국 영화를 소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우리도 어떤 사회 변화가 있을 때 독립영화가 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 사회 변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 영화 '1987'이 나왔을 때 참 좋은 변화를 맞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명량'도 좋은 영화였다. 당시 세월호 참사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을 때, 이순신 장군이라는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그려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어쩌다 만든 영화로는 영화계가 변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만든 작품이 유대감을 형성할 때 영화계가 변하고, 관객도 바뀐다. 내 이야기라 쑥스럽지만, '별들의 고향'이 나오기 전까지 한국 영화는 '고무신 관객'이라 불리는 주부들만 봤다. 주로 멜로드라마만 봤다. 그러나 나 같은 해방둥이(1945년생)가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세대 문화가 확 달라졌다. 해방둥이 세대가 자라면서 한국형 팝이나 발라드를 만들었고, 사람들의 사랑받기 시작했다. 그런 영화 음악이나 소설 등이 '별들의 고향'을 통해 젊은 관객들에게 확산했다. 그 뒤로 한국 영화 관객들이 젊은 층 위주로 바뀌고 문화 흐름도 달라졌다.

-- 한국 영화 나아가야 할 방향은.

▲ 제일 중요한 것은 고전적인 의미의 영화가 계속 살아남도록 보호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TV를 안 본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나 유튜브만 본다. 지금 한국 영화를 이대로 놔둬도 미디어는 다양하게 발전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남아야 할 것은 클래식한 영화다. 우리가 100∼200년 전 음악을 듣는 이유는 문화 의식의 큰 부분을 차지해서다. 영화도 그렇게 돼야 한다.

-- 고전적 의미의 영화를 살리려면.

▲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국비를 사용해서라도 고전적인 영화 명맥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선전 등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순수하게 문화적 사명감을 가지고 제작해야 한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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