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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게 빛난 벨체아 콰르텟의 절묘한 균형

송고시간2019-09-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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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체아 콰르텟 내한공연 리뷰

'벨체아 콰르텟의 리허설'
'벨체아 콰르텟의 리허설'

[목프로덕션 제공]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이것은 당신을 위한 곡이 아니라 미래의 청중을 위한 곡이오."

일찍이 베토벤은 그의 현악 4중주 '라주모프스키'를 이해하지 못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21세기가 된 지금, 베토벤의 말은 사실임이 드러났다.

지난 20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 벨체아 콰르텟이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8번 '라주모프스키' 연주를 마치자 이 시대의 청중은 일제히 '브라보'를 외치며 기립 박수로 환호했다. 클래식 음악회 가운데서도 난해하다고 알려진 현악 4중주 음악회에 기립박수라니! 이는 베토벤의 음악 덕분이기도 하지만, 베토벤의 음악을 설득력 있게 연주해낸 벨체아 콰르텟이 아니었다면 힘든 일이었다.

1994년 창단된 벨체아 콰르텟은 25년간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며 꾸준한 연주 활동을 해왔다. 25년이면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창단 멤버인 바이올리니스트 코리나 벨체아와 비올리스트 크리슈토프 호젤스키는 변함없이 25년간 이어진 연주 활동을 함께 하며 벨체아 콰르텟만의 고유한 음색을 지켜왔다. 그들만의 고유한 음향 전통과 음악 작품에 대한 통찰력은 이번 내한공연에서 찬란한 빛을 발했다.

사실 벨체아 콰르텟의 연주 스타일은 현대의 여러 현악4중주단이 지향하는 힘차고 과격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가벼운 음색과 정교함을 추구하는 고악기 연주 스타일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단원 개개인의 음색이 화려하거나 감각적인 것도 아니며, 음악 작품을 과장되거나 자극적인 어조로 해석하지도 않는다. 그저 반듯한 운궁(활 쓰기)으로 음 하나하나를 충실히 표현하며 다소 여유 있는 템포 속에 4대의 악기들이 언제나 안정된 밸런스를 유지한다.

언뜻 들으면 그들의 연주는 그리 화려하지 않아서 특징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 그 연주를 잘 들어보면 어떤 곡에서도 4대의 악기가 놀랄 만큼 밸런스를 잘 유지하며 4명의 소리가 잘 어우러지고 있어 감탄하게 된다. 선율을 서로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듯 전개되는 절묘한 앙상블은 마치 품위 있는 신사 숙녀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야말로 현악 4중주의 이상적인 연주라 할 만하다. 그래서 벨체아 콰르텟의 연주를 들으면 '연주자들'이 드러나기보다는 아닌 '음악 작품' 그 자체가 빛난다.

벨체아 콰르텟의 연주로 드러난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들은 재기발랄하거나 유머러스하기보다는 우아하면서도 숭고한 면이 두드러졌다.

공연 전반부에는 베토벤 현악 4중주 제3번이 첫 곡으로 연주됐다. 음악회 초반이라 관객들이 아직 다 입장하지 못해 콘서트홀의 잔향 시간이 길고 지나치게 울리는 감이 있었으나, 벨체아 콰르텟은 연주법을 조절하며 서서히 콘서트홀 음향에 적응하는 듯했다. 조금은 느린 듯 여유 있는 템포에 휴지부를 더 길게 처리하며 서서히 콘서트홀의 조건에 적응해나간 그들은 베토벤 초기 4중주곡의 우아한 선율미를 잘 드러낸 고상한 연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연 전반부 두 번째 곡으로 연주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번에선 특히 느린 3악장의 연주가 압권이었다. 변형된 변주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곡에서 처음의 명상적인 주제가 여러 가지로 변주될 때마다 더욱더 깊은 음악 삼매경에 빠져들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단연 돋보인 곡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8번 '라주모프스키'였다. 러시아 대사 안드레아스 라주모프스키 백작을 위해 작곡된 3곡의 4중주곡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인 이 곡에서 벨체아 콰르텟은 좀 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이 곡의 활기와 역동성을 강조한 연주를 선보여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이번 공연은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진지한 프로그램에다 연주 시간이 짧지 않았음에도, 공연을 관람하는 청중의 깊은 몰입이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진지했다. 공연 후에도 커튼콜과 기립박수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벨체아 콰르텟은 바버의 현악 4중주의 아다지오 악장과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제3번의 스케르초 악장을 앙코르로 연주해 청중의 환호에 답했다.

herena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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