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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김명길, 美 잘아는 외교 베테랑…90년대 '핵상무조' 창립 멤버

송고시간2019-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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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협상 라인 리용호·최선희와 오랫동안 손발 맞춰…폭넓은 대미 인맥도

전형적 '흙수저' 출신에 논리 뛰어난 원칙주의자…아들은 美 컬럼비아대 유학도

북한 김명길 순회대사 "트럼프 '새 방법' 환영
북한 김명길 순회대사 "트럼프 '새 방법' 환영

(서울=연합뉴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에서 '리비아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방법'을 언급한 것을 환영하며 향후 실무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사진은 2019년 2월 26일,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방문 당시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김명길 당시 대사의 모습. 2019.9.20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곧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에 미국을 잘 아는 핵 협상의 베테랑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수석대표로 참석한다.

김명길은 20일 발표한 담화에서 자신을 '조미(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라고 밝히면서 "이제는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조미 관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올해 60세인 김명길은 3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초 1차 북핵 위기 때부터 대미 협상에 참여한 인물로, 북한 핵·미사일 협상의 역사와 대응 전략 전술에 정통한 북한의 외교관으로 꼽힌다.

그는 김정일 정권이 1차 북핵 위기 때 미국과의 핵 협상에 대비해 극비리에 조직했던 외무성 '핵 상무조(태스크포스·TF)' 창립 멤버로 알려졌다.

외교관 출신 탈북자들은 "김명길은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면서 외무성 내에 극비리에 조직된 핵상무조의 초대 멤버"라며 "북한 대미 외교와 핵협상의 산증인과 같다"고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당시 핵을 매개로 북미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하면서 강석주 당시 외무성 제1부상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핵TF를 은밀히 조직했고, 미국 담당인 14국(일명 미주국, 현재 북아메리카국) 소속이던 김명길과 국제기구국에 근무 중이던 리용호 현 외무상 등이 선발됐다.

핵TF는 평양 교외의 외무성 산하 고방산초대소에서 합숙하면서 가족과 접촉마저 금지된 가운데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채택될 때까지 핵 외교 전략의 수립과 집행을 전담했다.

북미 실무협상팀 카운터파트. 리용호-폼페이오, 김명길-비건 (PG)
북미 실무협상팀 카운터파트. 리용호-폼페이오, 김명길-비건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김명길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카운터파트이자 북한을 대표하는 자타공인 최고의 '미국통'인 리용호 외무상과 30년 넘게 호흡을 맞춘 셈이다.

또 대미 외교의 시작을 이끈 강석주와 그의 바통을 이은 김계관 등 역대 대미 외교 수장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뛰어난 대미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 역할을 하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경우 1990년대 중반 통역으로 한발 늦게 핵TF에 들어와 김명길과 함께 일했다.

김명길은 2009년 유엔대표부 차석 대사 임기를 마치고 귀환 후 아태 국장과 베트남 대사로 '외도'하기 전까지 20년간 줄곧 대미 외교의 한 우물만을 팠다.

1982년 외무성 입사 후 자메이카 주재 서기관(1985∼89년)을 거쳐 1990∼96년 미주국, 1996∼2001년 유엔 대표부 참사관, 2001∼2006년 미주국 및 군축평화연구소, 2006∼2009년 유엔 대표부 차석 대사로 근무했다.

이런 경력으로 인해 북한이 충격적인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외무성을 주축으로 대미 외교의 라인업을 새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리용호와 최선희의 추천을 받아 비건 대표를 상대할 적임자로 낙점됐을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 "北 미사일 발사 예정대로 한다"
김명길 "北 미사일 발사 예정대로 한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 김명길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공사가 26일 조지아공대(조지아텍)의 샘 넌 국제학대학 및 부설 국제전략기술정책연구센터(CISTP)가 주최한 6자회담 관련 학술회의에 참석해 북한이 예정대로 미사일 발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6자회담 학술회의에 참석한 김명길(왼쪽)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공사가 전해진 애틀랜타 주재 한국총영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09.2.26

김명길이 대미 외교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995년 경수로공급 협상 북측 설명회와 1997년 남북미중 4자회담 설명회에 참석하면서다.

북한의 미사일 추가 발사 문제가 최대 관심사였던 1999년 4자회담 6차 본회담부터는 아예 대표단원으로, 대표단의 '입' 역할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2000년 북미 쿠알라룸푸르 미사일 회담에 참여했다.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대표단원에 공식 포함됐다.

2007년 북미 핵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자금 2천500만 달러 송금 문제 해결에 참여했고, 이어 재개된 북핵 6자회담 경제·에너지 실무그룹 회의 북측 수석대표로 나섰다.

이런 이유로 그는 트럼프 행정부엔 낯선 인물이지만, 미 민주당의 대선 주자인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의 보좌관과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정책팀장을 지낸 프랭크 자누지 등 이전 미 행정부의 대북 협상가 및 전문가들과 폭넓은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서 남북한 대사, 비공식 사진 찰칵…"한반도 해빙 반영"
베트남서 남북한 대사, 비공식 사진 찰칵…"한반도 해빙 반영"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주베트남 김도현 한국대사(왼쪽에서 세 번째)와 김명길 북한대사(왼쪽 끝)가 2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73회 유엔의 날 기념식에서 사진을 함께 찍고 있다. 콘스탄틴 브누코프 러시아 대사(왼쪽에서 두 번째)의 제안으로 성사됐고, 아키프 아이한 터키 대사가 동참했다. 2018.10.24 [독자 제공] youngkyu@yna.co.kr

자수성가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김명길은 자강도 만포시의 평범한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부모를 일찍 잃었지만, 워낙 성적이 뛰어나 김일성종합대학 영문과에 입학할 수 있었고 재학 중 영어권인 남미 가이아나에서 유학했다.

외무성 내 그 흔한 '처가 배경'마저 없는 '흙수저'지만, 뛰어난 논리 전개 능력을 갖춘 데다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원칙주의자로 인정받아 일찍부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아들은 김명길의 유엔 대표부 근무 시절 미 컬럼비아 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만 해도 해외 주재원의 경우 대학생 자녀를 데리고 나갈 수 없는 데다 최대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대학을 다닌다는 건 북한 당국의 특별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컬럼비아 대학과 북한의 다양한 교류·협력 상황과 함께 김명길에 대한 북한 당국의 신임으로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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