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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출가 바이엘 "위기는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현실"

송고시간2019-09-2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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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디스토피아 그린 연극 '렛 뎀 잇 머니'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LG아트센터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아직 전환점(Tipping point)이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위기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현실입니다."

독일의 유명 연출가 안드레스 바이엘(60)이 한국 관객들을 찾아왔다. 20일부터 21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독일 극단 '도이체스 테이터'의 연극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를 통해서다.

이번 작품은 2018년부터 2028년까지 향후 10년을 예측하는 '어떤 미래?!'(Which Future?!) 프로젝트 아래 탄생했다. 2000년대 후반 유럽을 강타한 재정위기를 경험한 바이엘 연출은 '다음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부문 학자들과 시민 250여명이 2년간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 바로 연극 '렛 뎀 잇 머니'다.

이번 작품은 지극히 현실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기후변화와 사라지는 일자리, 반복되는 경제위기 등은 2019년 우리도 피부로 느끼는 위협이다.

무법천지가 된 2028년. 지난 10년간 정치인들은 기본소득을 구제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주는 대신 건강보험 등 사회안전망이 해체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삶의 질은 급전직하했다. 자본주의자들은 특권층의 계급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바다 위 인공섬 주(州)를 세워 국가를 폐지하고 자치권을 획득하자고 주장했고, 이는 현실이 됐다.

그러자 새로운 운동가들이 등장한다. '렛 뎀 잇 머니'의 리더 '일듄'과 해커 '옹즈', 그리고 일듄의 딸 '지나'와 드론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택배기사 '유르겐 반도프스키'는 문제의 책임자들을 납치한다. 유럽위원회 의원 '프랑카 롤뢰그', 전직 노동조합원 '라포 로써'와 유럽중앙은행 총재 '프레리히 콘스트', 자본주의자 '슈테판 타르프'가 그 대상이다. 이들에 대한 심문 과정은 모두 온라인에 생중계되며 1천100만 팔로워의 관심을 모은다.

도이체스테아터 '렛 뎀 잇 머니'
도이체스테아터 '렛 뎀 잇 머니'

[LG아트센터 제공]

바이엘 연출은 20일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1천100석이 매진됐으며 관객 수백 명이 늦은 시간까지 객석을 지키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다가온 위기'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바이엘 연출은 먼저 "연극에서 기본소득이 부정적으로 묘사돼 혼란스러우실 수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충분한 재원 마련 없이 기본소득을 강행하면 풍선효과로 사회보장제도가 쪼그라들고, 사실상 제도가 도루묵이 된다는 점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본소득이 노동자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힘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본소득은 노동과 임금을 분리함으로써 혁명적 측면을 갖고 있다. 나이·종교·성별에 관계없이 월별 무조건 받게 될 이상적인 금액은 1천500유로(약 200만원) 정도라고 생각했다"며 "이를 통해 자기 결정권이 커질 수 있다. 일터에서 지나치게 혹사당할 때 이 일을 계속할지 말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언젠가 독일의 큰 은행 총재가 '우리 은행에는 돈이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낼 의향이 있다'고 하더라. 그들이 낸 세금으로 기본소득을 충당할 방법이 있다"며 "공산주의를 주창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강조했다.

극중 납치된 권력자들이 순진하게 자본에 이용당한 것인지, 혹은 적극적으로 자본에 영합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열린 답을 내놨다.

바이엘 연출은 "극중 유럽위원회 의원과 노조의 대표자는 본성이 악하거나 처음부터 권력 지향적이진 않았다. 진심으로 이상을 갖고 실현하려 했겠지만, 비극적으로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우리 사회에서 한쪽은 완전히 부패했고, 그 반대에 이상적 혁명가들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답했다.

연극에서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린다. 대기가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온 나라를 휩쓸고, 토양은 소금밭처럼 버석버석해졌다. 사람들의 생체정보는 조그만 '칩'에 담겨 거래된다.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LG아트센터 제공]

바이엘 연출은 먼저 "이미 많은 의사가 미세 플라스틱이 질병을 야기할 거라고 경고한다. 생체정보 수집도 가까운 미래에 해당한다. 이런 문제가 현실화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예술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작품은 일듄의 딸 지나가 납치된 사람들을 데리고 조직을 떠나면서 막을 내린다. 앳된 소녀 지나는 팔로워들과 공허한 소통이 아닌, 우정에 기반한 진짜 소통을 원한다고 객석을 향해 외친다.

바이엘 연출은 세계 환경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스웨덴 출신 10대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나를 통해 새로운 시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 전개가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연극은 영상과 전자음악, 아크로바틱을 활용해 신선함을 제공하면서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 다소 불친절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한 관객은 '이런 중요한 문제를 관객에게 더 친절하게 전달할 생각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바이엘 연출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 그 부분을 굉장히 고민했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상태로 그냥 두자는 결정에 이르렀다"며 "'낯섦'이 여러분께 더 많은 토론과 생각을 불러일으키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도이체스 테아터 '렛 뎀 잇 머니'

[LG아트센터 제공]

cla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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