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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broad] 체코 소도시 여행 1…리토미슐

송고시간2019-11-0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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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미슐[체코]=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인파가 몰리는 대도시에서 임무 수행하듯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이동하는 식의 여행이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작은 소도시를 여행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왜 여행을 떠나게 됐는지 깨닫게 된다. 체코의 소도시들은 우리가 놓쳐온 여행의 참맛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 스메타나가 태어난 리토미슐

하늘에서 본 리토미슐 성 [사진/성연재 기자]

하늘에서 본 리토미슐 성 [사진/성연재 기자]

수도 프라하에서 작은 차로 약 160㎞ 동쪽에 자리 잡은 리토미슐을 향해 달리는 도중이었다.

자동차 여행을 할 때 의외로 큰 감동을 주는 것이 여행지와 어울리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선택했는데 마침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버전이다.

장엄한 선율 속에 탁 트인 평원을 달리니, 마치 영화 속에 있는 느낌이다.

지금 마주치는 체코 시골길의 풍광은 195년 전 태어난 스메타나가 느꼈던 그 길의 느낌과 비슷할까.

체코의 국민작곡가 스메타나는 1824년 리토미슐이라는 작은 도시의 성(城)에서 태어났다.

우선 이 리토미슐 성안에 있는 스메타나의 생가부터 가 보기로 했다.

리토미슐은 인구 1만 명가량 되는 작은 도시다.

리토미슐 성 앞에 있는 스메타나의 생가 [사진/성연재 기자]

리토미슐 성 앞에 있는 스메타나의 생가 [사진/성연재 기자]

스메타나는 성에서 소비되는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 본채 맞은편에 있는 생가에는 스메타나의 습작품과 편지, 피아노 등이 전시돼 있다.

스메타나가 작곡가가 된 것은 현악 4중주단에서 활약하기도 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의 천재성은 첫 번째 콘서트를 여섯 살에 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스메타나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6월 말부터 3주간에 걸쳐 '스메타나 리토미슐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젊은 작곡자들과 음악가들을 위해 매년 늦가을에 열리는 '스메타나 어린이 뮤직 페스티벌'일지도 모른다. 스메타나처럼 어린 천재를 발굴할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 리토미슐 성

하늘에서 본 리토미슐 성 [사진/성연재 기자]

하늘에서 본 리토미슐 성 [사진/성연재 기자]

스메타나 생가에서 리토미슐 성 본채를 바라보니 고작 20m쯤 되는 거리다. 성문을 통해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토미슐 성은 10세기에 지어진 성을 1568년부터 1582년 사이 지금의 모습으로 리모델링했다.

르네상스 양식의 아케이드 성으로 분류되는데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등장한 르네상스 아케이드 양식은 기둥과 아치가 조합된 건축 기법으로, 16세기 중부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

성 내부에는 정사각형의 중정이 있고, 기둥과 아치가 중정을 바라볼 수 있는 회랑을 형성하고 있다.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으로 장식된 외관 [사진/성연재 기자]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으로 장식된 외관 [사진/성연재 기자]

성은 벽돌 모양을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 넣은 독특한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으로 장식된 외관과 박공지붕을 포함해 당시 르네상스 양식의 외관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벽돌 모양으로 그려진 그림은 단 하나도 똑같은 문양이 없다.

성 내부에 말의 초상화로 가득 찬 방이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왕족들은 궁전 내부까지 말을 타고 들어왔다고 한다.

성을 둘러보는 투어에 참여하면 1797년에 완공된 소형 극장과 화려한 궁전의 방들을 관람할 수 있다.

50분짜리 투어와 90분짜리 투어로 나뉘어 있다.

지하에는 조각 작품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체코 관광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아름다운 성에서 결혼식도 올릴 수 있다.

오디언스 홀이나 프랑스 정원 등 어디든 선택해서 식을 치를 수 있다.

리토미슐 성의 화려한 내부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리토미슐 성의 화려한 내부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고풍스러운 성과는 별도로 1990년도 이후에 세워진 리토미슐의 건축물들은 이곳을 '현대 체코 건축의 수도'라는 명성을 얻게 했다.

건축물들은 인근 브루노와 프라하 출신의 건축가들이 설계했다.

◇ 의외의 감동 주는 피아리스트 교회와 수도원 정원

리토미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피아리스트 교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교회 자체보다는 그 뒤뜰인 수도원 정원이다.

교회 내부는 다른 여느 교회와 달리 화려하지 않고 회색빛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과거의 고난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교회는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큰 화재로 거의 망실되다시피 했다.

1735년의 화재로 양쪽 타워가 불탔고 그보다 더 심한 화재가 1775년에 일어나 제단, 벽화 등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공산주의 시절에 교회는 창고로 전락했으며, 심지어 내부에 트럭들이 주차되기도 했다. 무너뜨리는 게 낫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2010∼2014년 결국 대대적인 수리가 이뤄져 지금의 모습을 찾게 됐다.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인 수도원 정원 [사진/성연재 기자]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인 수도원 정원 [사진/성연재 기자]

교회 뒤쪽으로는 아름다운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뒤뜰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큰 규모다.

보는 순간 녹색의 융단을 깔아놓은 듯 잘 가꿔진 잔디밭은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이곳은 체코 전체에서도 가장 넓은 잔디밭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수도원 정원은 중세에는 교회 묘지였던 곳을 피아리스트 교회의 공원으로 개발했고, 2000년에 들어서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낮은 돌담 벽 쪽에 붙어 있는 작은 잔디밭과 노래하는 분수도 매력적이다.

분수에서는 스메타나의 곡이 울려 퍼진다. 주변에 청동 동상들이 호위하듯 서 있어 예술적인 느낌을 더한다.

이곳은 매년 6월 말부터 열리는 음악 축제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 시내 곳곳 예술의 향기가 솔솔

요세프 바할의 벽화 [사진/성연재 기자]

요세프 바할의 벽화 [사진/성연재 기자]

리토미슐은 체스키크룸로프를 떠올리게 한다.

높지 않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도시를 걷다 보면 거리 곳곳에 숨겨진 예술의 향기에 새삼 놀라게 된다.

특히 새벽녘에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어보자.

시골 도시이기 때문에 소매치기 걱정은 접어도 좋다. 길 가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뿐이다.

은은한 불빛에 이끌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다 보면 어느새 리토미슐에 흠뻑 빠져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길고 좁은 리토미슐 광장은 아케이드 상점들이 양옆으로 펼쳐져 있다.

길이가 500m가량 되는 이 광장은 체코에서 가장 긴 광장으로 알려져 있다.

광장 앞의 건물들은 저마다 특색있는 장식으로 꾸며져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카페 나 스크리프쿠 [사진/성연재 기자]

카페 나 스크리프쿠 [사진/성연재 기자]

예술가 요세프 바할은 시내 한 거리의 펜션 파세카 빌딩 벽면에 자신의 유명한 소설 '핏빛 소설'(Bloody Novel)의 스토리를 재현했다.

리토미슐에서 태어난 요세프는 그래픽 아트와 프린팅에 재질이 있는 예술가였다.

바할의 그림을 따라 걷노라면 펜션과 함께 운영되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카페 나 스크리프쿠(Na Sklipku)를 만날 수 있다.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해 비를 핑계로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아치 모양의 천장을 한 아름다운 식당 내부 모습이 눈에 띈다. 이곳은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로컬들이 관심 있는 곳은 뭔가 다르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출입구를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 하나의 작품이다. 고풍스러운 문의 형식과 외부 벽에 그려진 바할의 작품까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시내 곳곳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들에는 다양한 형태의 설치 미술품들도 눈에 띈다.

어떤 곳에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이 잔디만 깔린 곳이 있는가 하면, 하얀 모래를 깔아 바닷가 같은 느낌이 나도록 한 공간들도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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