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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broad] 체코 소도시 여행 3…카단·자테츠

송고시간2019-11-0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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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단·자테츠[체코]=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체코에서는 아무리 작은 소도시라도 기묘한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또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에서는 맥주 종주국의 참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맥주축제가 열리고 있는 자테츠 시내 [사진/성연재 기자]

맥주축제가 열리고 있는 자테츠 시내 [사진/성연재 기자]

◇ '사형집행인의 골목길'에 얽힌 전설

체코 프라하 공항에서 1시간여 떨어진 서북부의 작은 도시 카단. 독일 국경이 40분 거리에 있을 정도로 독일과 가깝다.

이 도시 광장에는 체코에서 가장 좁은 골목길 '카토바 울리츠카'가 있다.

14세기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길이 51m의 이 골목은 폭이 66.1cm밖에 되지 않는다.

원래 광장의 연못에서 넘쳐흐르는 물을 빼내는 하수구로 쓰였다고 한다.

이 좁고 더러운 골목길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도시의 사형집행인 한 명뿐이었다.

그가 숙소를 떠나 길고 좁고 어두운 거리를 따라가면 널따란 광장이 나오고, 그곳에는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있다.

체코에서 가장 좁은 골목길 '카토바 울리츠카' [사진/성연재 기자]

체코에서 가장 좁은 골목길 '카토바 울리츠카' [사진/성연재 기자]

그는 사형을 집행하고 난 뒤 좁고 긴 골목길을 다시 걸어 내려왔다.

이그나츠 카일이라는 사형집행인에게는 사랑하는 여성이 있었다.

그러나 사형집행인과의 교제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게다가 그 상대 여성은 수녀였다고 한다.

결국 그 스토리는 비극으로 끝이 났다. 수녀는 좁은 길의 벽면에 세워진 채 벽돌에 갇히는 형벌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사형집행인은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한 여인이 갇혀 죽은 그 길을 걸으며 광장을 오가야 했다.

사형집행자를 사랑한 여인의 흉상 [사진/성연재 기자]

사형집행자를 사랑한 여인의 흉상 [사진/성연재 기자]

사형집행인의 집 맞은편에는 그녀의 동상이 있는데 특이한 모습이다. 여인의 가슴이 3개다.

좁고 축축한 이 길은 어둠이 내리면 사람들이 발걸음을 들여놓기조차 두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 두려움을 상쇄할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수녀와 사형집행인의 유령이 길거리를 지키며 악인들로부터 행인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 '도둑과 그의 강아지' 전설

여느 유럽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카단에는 널따란 광장이 있고, 그 앞에는 시청사와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양쪽에 기둥이 떠받치고 서 있는 성당은 웅장한 규모지만, 도시에 있는 성당들에 비해 훨씬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광장에 떠도는 숱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둑과 그의 강아지에 대한 전설이다.

전설에 따르면 수 세기 전, 카단 시청사 건물에서 세금을 거두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던 사람 중 한 명이 몰래 돈을 훔쳐 가곤 했다. 바로 테이블 아래 본인이 키우는 강아지를 데려다 놓고 강아지에게 숨겨 가져가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카단 시청사 광장 앞의 공연 [사진/성연재 기자]

카단 시청사 광장 앞의 공연 [사진/성연재 기자]

그의 범행은 현장에서 발각됐고, 두 가지 형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다.

사형을 당하거나, 수직에 가까운 60m 높이의 시청사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후자를 선택했는데, 이때 그의 강아지가 지상에서 40m 높이의 건물 옥상에서 탑 위를 오르는 주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둑은 탑에 올라가는 데 성공했지만,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가까스로 내려오는 모습을 본 강아지가 기뻐하며 펄쩍거리며 뛰다 40m 아래 지상으로 떨어져 죽어버린 것이다.

많은 카단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주인에게 충성했던 도둑의 강아지를 기리고 있다.

◇ '맥주의 뿌리' 자테츠

자테츠의 하우스 맥주 [사진/성연재 기자]

자테츠의 하우스 맥주 [사진/성연재 기자]

맥주를 생산하는 나라들은 많지만, 체코는 맥주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다.

필스너의 고장 플젠에서는 매년 10월 맥주 축제가 열리고, 맥주 재료인 홉의 본고장인 자테츠에서도 매년 9월 맥주 축제가 개최된다.

카단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도시 자테츠는 특히 맥주의 원료가 되는 홉을 1천년 이상 재배해 온 곳이다.

자테츠는 홉을 재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가공해 전 세계 맥주 메이커들에게 수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07년 체코 농·식품 업계 최초로 자테츠 지역의 홉을 원산지 보호 명칭 및 지리 명칭 지정 목록에 등록했다.

맥주의 원료인 홉 [사진/성연재 기자]

맥주의 원료인 홉 [사진/성연재 기자]

이 가운데 '사즈' 품종은 섬세하고 균형 잡힌 맛을 제공한다.

사즈 홉이 세계적으로 프리미엄 홉이 된 이유 중에는 자테츠의 기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곳은 평년 기온이 섭씨 8∼9도(홉이 자라는 6개월 동안은 14∼16도), 연평균 강수량은 450mm(홉이 자라는 기간에는 약 260mm)로 최상급 홉으로 자라는데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갖췄다.

홉은 날씨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그만큼 자테츠 인근의 날씨는 홉이 자라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자테츠에서 생산되는 홉은 프리미엄 라거의 원재료로 일본, 러시아, 독일 등 전 세계 70개국에 수출된다.

자테츠에 도착한 날이 이곳에서 열린 '도체스나 축제' 기간이어서 자테츠 맥주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맥주 축제에서 건배하는 현지인들 [사진/성연재 기자]

맥주 축제에서 건배하는 현지인들 [사진/성연재 기자]

◇ 물보다 더 싼 맥주

자테츠 축제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와 맥주를 마시며 즐긴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맥주는 지역의 작은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다. 유명 메이커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지역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세계 각국의 맥주 전문가들도 이곳으로 모인다.

때마침 자테츠 축제에 참여한 한 일본 맥주 회사 전문가들이 자테츠 맥주의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일본 맥주 회사 전문가들이 자테츠 맥주의 맛을 음미하고 있다.[사진/성연재 기자]

일본 맥주 회사 전문가들이 자테츠 맥주의 맛을 음미하고 있다.[사진/성연재 기자]

시내에는 '홉의 사원'이 있어 이곳이 맥주의 뿌리임을 설명해주고 있다. 홉의 성장과 발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독특한 장소다.

홉의 사원 바로 옆 철제 구조물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자테츠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석양에 맞춰 전망대를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고장 난 엘리베이터 탓에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10층 높이의 전망대를 전력 질주해 올라가야만 했던 것은 불행이었다.

전망대 건물 3층에는 홉을 보관하는 창고와 연결된 철제 다리가 있어 창고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자테츠 레스토랑 '우 오를로에' [사진/성연재 기자]

자테츠 레스토랑 '우 오를로에' [사진/성연재 기자]

홉의 사원을 보고 난 뒤 오른쪽 골목길로 돌면 프라하 시내에 있는 것과 같은 천문 시계도 구경할 수 있다.

오래도록 체코의 식당에서는 맥주 가격이 물값보다 더 저렴하게 팔렸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국민 보건 등을 이유로 식당에서 맥주를 물보다 저렴하게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게 됐다고 한다.

자테츠에는 최근 한국의 타이어회사인 넥센이 중부유럽 시장을 겨냥해 공장을 설립했다. 그 때문인지 지역 분위기는 활기가 넘쳐 보였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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