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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액티브] 무인주문의 그늘…'키오스크 교육' 받는 노인들

송고시간2019-10-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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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전송화 인턴기자 = "키오스크(무인주문기) 그거 별것 아니라고 해도 몇 번 주문에 실패하다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쭈뼛쭈뼛하게 돼. 이제 배웠으니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

서초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된 무인주문기 이용법 교육 현장
서초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된 무인주문기 이용법 교육 현장

[촬영 전송화]

지난 14일 오전 9시 서울 서초구 중앙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 학생' 14명이 모여 '키오스크·디지털 교육'을 받고 있었다.

어떻게 스마트폰 와이파이에 연결하는지부터 무인주문기로 각종 티켓을 예매하는 방법까지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자리였다.

강사가 "마이크 버튼을 눌러 음성인식으로 '코버스'(고속버스 예매 홈페이지)를 검색해보세요"라고 하자 "무슨 어플에서요?" "호바스요? 코바스요?" "어딜 누르라고요?" "선생님, 인식이 안돼요"라는 등 갖가지 질문이 쏟아졌다.

'무한 질문'을 소화하려고 질문 전담 보조 강사가 따로 배치됐을 정도. 강사들은 노인들의 스마트폰을 하나하나 눌러가며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버스표를 예매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강의를 들은 송모(68)씨는 "손주는 공부하느라 바쁘고 아들은 일하고 오면 피곤하대서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며 "이렇게 교육을 해주니 이제 무인주문기가 있는 햄버거집에서 혼자 주문할 수 있겠다"고 기뻐했다.

서초구는 지난 9월부터 무인주문기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사용법이 생소한 노인들에게 '키오스크·디지털 교육'을 하고 있다. 노인의 '디지털 소외'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9월에 이어 두번째로 교육을 듣는다는 양은애(74)씨는 "무인주문에 익숙하지 않은데 내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으니 조바심이 나서 쉽게 주문할 수 없었다"며 "이 강좌는 다른 노인도 다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손주에게 키오스크 주문을 부탁했다던 김의순씨도 "젊은이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됐다. 도전정신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문제는 대개 PC·스마트폰 등을 통한 온라인 영역에서 문제가 되다가 최근엔 무인주문기의 보급으로 오프라인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등에서 무인주문기가 널리 사용되다 보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이 물건을 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

패스트푸드점 무인주문기
패스트푸드점 무인주문기

[촬영 전송화]

무인주문기가 배치된 매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중장년층의 불편 민원이 늘었다고 말했다.

영화관에서 일하는 성지영(25)씨는 "많을 때는 한 시간에 5차례 이상 키오스크 이용법에 대한 문의가 들어온다"며 "중장년층 이상 고객은 한두번 터치하다 포기하고 직원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성씨는 "키오스크의 장점도 있지만 사람만큼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을 겪는 고객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신수정(23)씨도 "노년층은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다가 도중에 못 하겠다며 카운터로 오는 분이 많다"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되려 사과하는 어르신을 뵈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울 서초구 외에는 관련 교육을 하는 지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광주광역시 고령사회정책과 관계자는 "시에서 주관하는 교육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부산, 대구, 대전, 인천 등 다른 지자체도 현재로선 노년층 키오스크 교육은 예정에 없다고 전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디지털 활용 능력의 차이는 삶의 질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노인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디지털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디지털 소외를 해결하려면 세대 간 연결(generation mixing)도 필요하다. 세대 간 연결이 원활할 때 행복도와 디지털 기기 적응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청년 세대와 노년층이 교육이나 봉사 현장에서 만나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send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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