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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릉급 무덤 동하총 목관, 250살 금송으로 제작"

송고시간2019-10-1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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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 '능산리' 심포지엄서 연구 결과 공개

동하총 목관 재현품
동하총 목관 재현품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백제 사비도읍기(538∼660) 왕릉급 무덤이 모인 부여 능산리고분군에서도 큰 고분으로 분류되는 동하총(東下塚) 목관을 수령 250년 이상 금송(金松)으로 제작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신용비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동하총 목관 뚜껑판 일부를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로 조사한 결과, 목재 지름은 56㎝ 이상이고 수령은 251년 이상으로 추정됐다고 17일 밝혔다.

신 연구사는 부여박물관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학회, 부여군과 함께 18일 여는 '사비백제 고분문화의 중심, 능산리' 학술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의 목관 분석 결과와 복원 방법을 발표한다.

능산리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무덤 6기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고, 1971년 보수공사 도중에 한 기가 추가로 발견돼 7기가 정비됐다. 동하총은 아래 열 동쪽에 있는 무덤으로, 무덤방에 그려진 벽화로 유명하다.

동하총 목관 재료는 대부분 소실됐으나, 마구리(길쭉한 물건의 양 끝에 대는 것) 금동장식판과 금동제 관정(관에 사용하는 못) 등이 남았다.

동하총 목관 머리 쪽 마구리 장식
동하총 목관 머리 쪽 마구리 장식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신 연구사는 발표문에서 "목재 벌목 연대는 430∼480년으로 판단되며, 관을 놓는 관대를 봤을 때 관 바닥 규격은 가로 60㎝·세로 210㎝로 예상된다"면서 "목관 재료 위에 안료와 뼛가루를 혼합해 칠한 뒤 토회(흙과 재)를 섞어 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목관 몸체 폭은 하단 57㎝·상단 60㎝이며, 관 뚜껑 폭은 머리 쪽 60㎝·발 쪽 57㎝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신 연구사는 마구리와 관정에 대해 "순동에 수은아말감 기법으로 도금했다"며 "다리 쪽 마구리 장식판과 관정이 머리 쪽 재료와 비교해 두 배 이상 두꺼운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부여 능산리고분군
부여 능산리고분군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정현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일제강점기 동하총 조사 성격과 동하총 특징을 정리하고 무덤 주인공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그는 "동하총은 능산리고분군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한 2호 중하총(中下塚)과 나란히 위치하며,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는 돌)이 잔존한 고분 가운데 가장 크고 견고하다"고 말했다.

정 연구사는 입지, 봉분과 석실 규모, 축조 방법, 장식적 요소를 두루 고려했을 때 동하총은 왕의 무덤으로 봐야 한다면서 위덕왕, 7세기대 세상을 떠난 왕비, 고구려와 교류한 인물 등 여러 견해 중 위덕왕일 가능성이 크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했다.

그는 중하총을 사비 천도를 주도한 성왕(재위 523∼554) 무덤, 익산 쌍릉 대왕묘를 무왕(재위 600∼641) 무덤으로 가정한다면 동하총에 묻힐 수 있는 왕은 위덕왕(재위 554∼598), 혜왕(재위 598∼599), 법왕(재위 599∼600)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비 시기 능묘는 능선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고, 중하총을 둘러싼 무덤 중 동하총이 중하총과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동하총은 위덕왕 무덤으로 유력시된다"면서도 "쌍릉 대왕묘와 유사한 요소도 있어 동하총과 중하총 사이에는 어느 정도 시기 차가 존재한 듯하다"고 추측했다.

부여박물관이 다음 달 24일까지 여는 특별전 '사신이 호위하사, 백제 능산리 1호 동하총'과 연계해 마련한 심포지엄에서는 이 밖에도 백제 사비기 고분의 위계, 부여 능안골고분군의 단상에 대한 발표도 진행된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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