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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Abroad] 사막과 포도밭, 그리고 도시의 미술관

송고시간2019-11-1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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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근교 여행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미국 서부의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를 여행지로 떠올리지 않았던 이유는 한인타운이나 할리우드나 LA다저스 같은, 너무 유명해서 직접 보기도 전에 식상해져 버린 이미지가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평양을 낀 이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신비로운 풍광의 사막과 풍요로운 포도밭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대도시의 매력은 엔터테인먼트나 쇼핑 스폿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미술관에도 가득하다.

모하비 사막의 밤 [사진/한미희 기자]

모하비 사막의 밤 [사진/한미희 기자]

◇ 신비로운 사막의 밤

LA 동쪽 팜스프링스로 향했다. 황색 언덕 위에 수천개의 하얀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풍력발전단지를 지날 때는 달리는 차도 흔들렸다. 방향을 틀어 평평한 사막 도시를 지나는가 싶더니 마른 풀만 보이는 황량한 산이 나타났다.

골짜기로 이어지는 도로에 들어서자 귀가 먹먹해졌다. 땅덩이가 넓다 보니 산을 오른다는 느낌도 없이 어느새 해발고도 1천m를 오르내리는 조슈아트리국립공원의 서쪽, 모하비 사막에 들어섰다.

조슈아트리국립공원은 고지대인 서쪽의 모하비 사막과 저지대인 동쪽의 콜로라도 사막의 경계에 걸쳐 있다. 그만큼 다양한 생물 종이 어우러진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공원의 이름이 말해주듯, 이곳 모하비 사막에서만 자생하는 조슈아 트리(Joshua Tree)가 대표적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록 밴드 U2의 대표작인 5집 앨범 '조슈아 트리'가 바로 이곳 모하비 사막의 그 조슈아 트리다.

1987년 나온 이 앨범은 미국을 테마로 만들어졌고 모하비 사막 등에서 앨범 사진을 촬영했다. U2는 '조슈아 트리' 발매 30주년 기념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위해 12월 처음 한국을 찾는다.

조슈아 트리 [사진/한미희 기자]

조슈아 트리 [사진/한미희 기자]

조슈아 트리는 150년 동안 12m까지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나무'라고 불리긴 하지만, 학명이 '유카 브레비폴리아'(Yucca brevifolia)라는 용설란과 식물이다.

기이하게 비튼 몸통 끝에 뾰족한 잎사귀가 무성한 조슈아 트리는 작열하는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 아래 황색 암석과 모래가 가득한 고원의 사막에서 낯설고도 경이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바위산 꼭대기를 붉게 물들이던 해가 지고 석양이 깔리면 분홍빛에서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에 강렬한 실루엣을 만들면서 신비로움을 더해갔다. 얇은 초승달이 떴다 사라지자 사막의 밤하늘은 별마당으로 변했다.

3천㎢가 넘은 광대한 국립공원에서는 볼 것도, 할 것도 많다. 하지만 짧은 일정에 이곳을 다 누빌 수는 없으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포장된 메인 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달리는 가장 쉬운 방법부터 수천 년 동안 물과 바람에 조각으로 변한 거대한 바위 사이를 걸으며 선인장과 야생화, 사막거북 같은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8천여개가 넘는 등반 코스는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암벽 등반 애호가들을 불러모은다. 조슈아 트리만큼이나 독특한 초야 선인장이 빽빽한 정원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공원 인근, 개척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파이어니어 타운'에 머물며 할리우드 서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곳곳에 있는 캠핑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별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아마도 가장 낭만적인 선택이 될 것 같다.

저물녘의 조슈아트리국립공원 [사진/한미희 기자]

저물녘의 조슈아트리국립공원 [사진/한미희 기자]

◇ 사막과 바다 사이의 포도밭

일 년 내내 날씨가 좋은 캘리포니아에서는 미국 와인의 80%를 생산한다.

풍부한 햇살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으로 만들어지는 안개, 다양한 토양이 그만큼 다양한 개성의 와인을 만들어낸다.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나파 밸리나 소노마 밸리 등 북부의 와인 산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사막이나 산악 지역을 제외한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와인을 생산한다.

와인 애호가들이 꼽는 영화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사이드 웨이'(2004)의 배경은 LA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산타바버라의 산타 이네즈 밸리다.

LA 남쪽으로는 사막 지역에서 불과 한두 시간 거리에 테메큘라 밸리가 있다.

1820년 처음 양조용 포도를 재배했고, 1984년 연방 정부가 인정하는 '미국포도재배지역'(AVA.American Viticultural Areas)으로 지정됐다.

테메큘라 밸리의 와이너리 [사진/한미희 기자]

테메큘라 밸리의 와이너리 [사진/한미희 기자]

이곳에는 나파 밸리의 명성을 누르고 '올해의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에 네 번이나 선정된 '사우스 코스트 와이너리'를 포함해 규모도 특색도 다양한 38곳의 와이너리가 있다.

이 중 몇 곳을 골라 돌아보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편안한 숙박·휴양 시설과 식당이 갖춰진 곳에 묵으면서 와인을 즐길 수도 있다.

박물관을 갖춘 곳도 있고, 콘서트를 즐기며 피크닉을 할 수 있다. 넓은 야외 정원과 시설을 갖춘 곳에서는 결혼식이나 연회가 벌어지기도 한다.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시음장과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야외공간을 갖춘 작은 규모의 와이너리를 먼저 찾았다.

와이너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1인당 20달러 정도에 5∼6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충분히 맛본 다음 마음에 드는 와인을 병으로 사면 된다.

와이너리 야외 공간에서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사진/한미희 기자]

와이너리 야외 공간에서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사진/한미희 기자]

눈부신 가을 햇살 아래 익어가는 포도밭을 바라보며 온갖 향기를 품은 와인을 맛보고, 유기농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곁들이며 즐기는 한가로운 오후가 행복한 건 어른들만은 아니었다. 함께 나온 아이들도, 반려견들도 모두 그렇게 보였다.

규모가 조금 더 큰 다른 와이너리에는 맛볼 수 있는 와인의 종류도, 판매하는 기념품도, 사람도 더 많았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가 있는 와이너리로 돌아와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뜨거웠던 초가을의 햇볕이 사라진 저녁은 쌀쌀했지만, 옆 공간에서 들려오는 재즈 연주를 듣기 위해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올해의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에서 시음 시간을 놓치고 그냥 고른 와인은 다행히 좋았다.

LA의 현대미술관 '더 브로드'의 전시관 입구에 있는 제프 쿤스의 '튤립' [사진/한미희 기자]

LA의 현대미술관 '더 브로드'의 전시관 입구에 있는 제프 쿤스의 '튤립' [사진/한미희 기자]

◇ LA다운 미술관들

LA에는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 말고도 크고 작은 미술관들이 많다.

다운타운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바로 옆에 있는 더 브로드(The Broad)는 2015년 개관한 가장 핫한 현대 미술관이다. 부동산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엘리 브로드가 개인 소장한 작품 2천여점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그 작품들이 쿠사마 야요이, 제프 쿤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바스키아, 앤디 워홀 등 미술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익히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들의 것이라는 게 더욱 놀랍다.

작품이 전시된 3층에 들어서자마자 제프 쿤스의 화려하고 반짝이는 '튤립'이 눈을 확 사로잡는다.

그의 다른 작품인 은빛 '토끼'와 파란색 '풍선 개', 황금빛 '마이클 잭슨과 버블'이 구멍이 뚫린 외벽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방에 모여 있다.

전시관은 임시 벽으로 촘촘하게 공간을 나누고 방마다 혹은, 벽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모아뒀다.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의 방-수백만 광년 떨어진 곳의 영혼들'(Infinity Mirrored Room - The Souls of Millions of Light Years Away)을 보려면 3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미술관 1층 키오스크에서 예약해야 한다.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면 대기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 때 알려 준다.

아트 디스트릭트의 벽화 [사진/한미희 기자]

아트 디스트릭트의 벽화 [사진/한미희 기자]

더 브로드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아트 디스트릭트는 세계 곳곳에서 유행하는 도시재생공간이다. 황량한 공장지대였던 이곳은 미술관과 맛집, 바닥과 벽을 채운 그라피티, 브루어리, 예술가 커뮤니티 등으로 채워져 활기가 넘친다.

홍콩, 런던, 뉴욕, 취리히 등 세계 곳곳에서 지점을 운영하는 갤러리 '하우저 & 워스'도 이곳에서 밀가루 공장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라크마'라고 부르는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은 미국 서부에서 규모가 가장 큰 미술관이다.

현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BCAM(브로드 컨템포러리 아트 뮤지엄)은 대형 엘리베이터 자체가 바버라 크루거의 작품이다. 중국의 반체제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를 비롯한 중국 현대 작가들의 설치 작품전도 진행 중이다.

9월 막을 내린 '선을 넘어서 : 한국 글씨 예술' 특별전

9월 막을 내린 '선을 넘어서 : 한국 글씨 예술' 특별전

특별전이 열리는 레스닉 파빌리온에서는 '선을 넘어서 : 한국 글씨 예술'(Beyond Line: The Art of Korean Writing) 전시를 만났다.

6월 개막한 이 전시의 마지막 날이었다.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 광개토대왕비 탁본과 김정희의 글씨 '곤륜산에서 코끼리 타기', 훈민정음 해례본 등 한국에서도 미처 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만나니 새삼스럽게 들여다보게 됐다.

몬드리안, 마크 로스코, 뒤샹, 자코메티, 피카소, 마그리트 등의 작품이 있는 메인 전시관인 애먼슨 빌딩은 현재 공사로 폐쇄된 상태였다.

로비에 걸린 마티스의 '다발' 한 점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입장료 25달러가 조금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미술관 야외 광장에서 공연을 기다리며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한미희 기자]

미술관 야외 광장에서 공연을 기다리며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한미희 기자]

하지만 전시관 외부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공 미술 작품도 있다. 마이클 하이저의 '공중에 떠 있는 돌'(Levitated Mass)이다.

리버사이드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340t에 달하는 거대한 돌을 고정하고 그 아래로 비탈길을 만들어 지나가면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금요일 저녁마다 미술관 광장에서 열리는 무료 재즈 공연이다. 해가 지기 전부터 광장의 무대 앞 객석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광장 주변의 잔디밭에도 피크닉 담요나 캠핑 의자가 놓이고 사람들은 와인과 음식을 펼쳐놓은 채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린다.

해가 지고,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 뒤로 1920∼1930년대 가로등 202개를 모아놓은 크리스 버든의 '어번 라이트'에 불이 켜지는 것은 비슷한 시간이다.

젊은 연인들은 가로등 아래서 손을 잡고 춤을 췄고, 멋지게 차려입은 노인은 와인잔을 들고 서서 몸을 흔들었다.

미술관 광장에서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무료 재즈 공연. 뒤로 '크리스 버든의 '어번 라이트'에 불이 들어왔다. [사진/한미희 기자]

미술관 광장에서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무료 재즈 공연. 뒤로 '크리스 버든의 '어번 라이트'에 불이 들어왔다. [사진/한미희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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