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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로 돌아온 소리꾼 이자람

송고시간2019-10-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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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판소리로 각색은 '완전히 새로운 것의 탄생'"

두산아트센터서 3년 만에 신작 발표…"무섭고 기대돼요"

소리꾼 이자람
소리꾼 이자람

[두산아트센터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소리꾼 이자람(40)은 국악계에 신기한 '현상'이었다. 다섯살 때 아버지 이규대 씨와 동요 '내 이름 예솔아'를 깜찍하게 부른 소녀는 국악고 재학 중에 판소리 '심청가'를 완창했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 희곡을 판소리로 재해석한 '사천가'(2007)와 '억척가'(2011)는 매진 행렬을 이끌었다. 뮤지컬 '서편제'에서는 한(恨) 서린 송화 그 자체였다. 찬사가 쏟아졌다. 한 인간이 지닌 색깔이 이토록 다채로울 수 있다니.

이자람은 잠시 숨을 골랐다. 2016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단편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를 판소리로 각색한 '이방인의 노래'를 끝으로 신작 구상은 한편에 고이 접어뒀다. 대신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배우로, 여러 창극 출연자 겸 예술감독으로 일하며 창작욕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올해, 헛된 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맞았다. 그가 드디어 신작으로 돌아온다.

11월 26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노인과 바다'를 올리는 이자람을 최근 이메일로 만났다. 평생을 예인(藝人)으로 산 그에게 무대 준비가 익숙하리라 넘겨짚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긴장감이 바짝 죄어든다고 했다.

지난 5월 '현대카드 큐리에이티드 51 소리꾼 이자람 판소리 시리즈 <바탕>' 공연 때 일화로 말문을 열었다.

"1시간 이상 홀로 채우는 공연으로 관객과 만나는 게 3년 만이었어요.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내가 과연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의심하며 무대 뒤에서 관객들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선… 스며들듯이 어떤 감각들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어딘가 더 헤엄쳐 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아마 이번 공연은 더욱더 심하게 떨고,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무섭고 기대돼요."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동명 소설(1952)이 원작이다. 이자람은 희곡이나 근현대 소설을 판소리의 다양한 소재와 형식으로 개발하는 작업에 공을 들인다. 이번 작품은 극단 양손프로젝트 박지혜가 연출을 맡았다. 이자람은 3년 전 박 연출에게 지나가는 말로 '나 하고 싶은 작품을 찾았어, 한 10년 후에 만들어보고 싶은'이라며 이 작품을 짚었다고 했다.

"'노인과 바다'를 오랜만에 다시 읽으며 사실은 머리가 하얀 노인이 되면 해볼까, 아니지 내가 나에게 만들어주는 판소리는 힘이 드니까. 그래도 체력이 좀 있는 때 해야지 했더랍니다. 그게 바로 지금부터 10년 후였고요. 그런데 박지혜 연출이 '왜 지금은 아니죠?'라고 되물었어요. 그러게요. 왜 미루려고 했을까요. 그렇게 지금으로 와버렸습니다."

원작 주인공은 노인이다. 평생을 쿠바 바다에서 낚시로 살았다. 늘 커다란 고기를 낚아오던 타고난 어부였지만, 이제는 운이 다했는지 좀처럼 고기가 찾아오지 않는다. 고기 비린내 구경도 못 한지 85일째가 되던 날,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와 조우한다. 바다 깊은 곳의 청새치와 외줄낚시로 버티는 노인의 한판 싸움. 청새치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노인 역시 살기 위해 싸운다.

이자람에게 가장 치열한 싸움의 순간은 언제였냐고 물었다. 무엇이 그를 싸우게 했는지 궁금했다. "모든 것들을 대할 때 결국 남는 싸움의 대상은 저 자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 이 분노하는 마음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이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필요 없는 소모는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나. 왜 그런 소모를 하는가, 무엇이 아쉬운 건가. 이 싸움에서 내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졌는가, 이다음에는 이것을 어떻게 대해 낼지 배웠는가. 포기하는 것에 후회는 없는가. 다시 일어날 동력은 얼마나 남았는가. 삶에서 다가오는 충돌들은 피할 수 없을 거예요. 모두가 그 충돌 앞에서 자신을 껴안고 잘 버티며 한발 또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저도요."

이자람은 이번에 각색과 작창, 소리를 도맡는다. 이 쉽지 않은 작업을 '소리를 하는 이자람에게, 소리할 대본과 작창을 만들어 주고 싶은 이자람이 작품을 고르고 열심히 창본으로 다듬고 문장과 단어에 음을 새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헤밍웨이 소설이 워낙 강력해 이 소설로부터 멀어져 '판소리'로 오는 길이 꽤 고생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장르의 변화, 그중에서도 희곡에서 판소리 혹은 소설에서 판소리로의 변화는 우리가 흔히 아는 각색과는 완전히 다른, '완전히 다른 것으로의 탄생'"이라며 "이 작업을 해온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게 늘 외롭긴 하다"고 고백했다.

이어 "헤밍웨이가 오래전 쿠바 바다에서 받은 영감으로 탄생한 노인과 청새치 이야기를 2019년 서울에서 판소리라는 세계 위에 새로운 그림으로 펼치는 일, 그것이 제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관객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아닌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로 초대해야 한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여신동 감독은 소리가 잘 들리고 소리꾼이 잘 보이는 무대를 준비 중이다.

한창 작품을 지어 올리고 있는 이자람은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끝까지 정성을 놓치지 않고 가볼게요. 오시는 걸음들이 아깝지 않은 시간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여신동 시노그래퍼와 소리꾼 이자람, 박지혜 연출
여신동 시노그래퍼와 소리꾼 이자람, 박지혜 연출

[두산아트센터 제공]

cla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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