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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사이좋게 이웃한 마을…100년 맞는 군위성결교회

송고시간2019-10-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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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우 기자
양정우기자

읍내 주변으로 향교·교회·성당이 나란히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군위성결교회' 개교 100주년 앞둬

군위성결교회
군위성결교회

[촬영 양정우]

(군위=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전체 인구가 2만3천여명에 불과한 경북 군위를 찾으면 종교적으로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비슷한 규모의 고장, 이보다 인구가 더 많은 곳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읍내 경찰서를 정면으로 오른쪽 언덕배기에는 군위성결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 교회는 내년 문을 연 지 100년을 맞는다. 군위성결교회를 중심으로 뒤편에는 군위장로교회가, 길 하나를 두고는 목 좋은 곳에 군위향교가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다.

군위성결교회 이웃으로는 천주교 군위성당도 있다. 군위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5살 때부터 살았던 고향이다. 아버지가 이웃으로부터 옹기를 빌려 그릇을 구웠던 곳이라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군위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박물관과 함께 조성돼 있다.

성당에서 걸어 5분 거리에는 원불교 교당이, 읍내 주변 곳곳에는 작은 불교 사찰들이 자리한다. 어느 종교 하나 도드라지지 않고 이웃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옹기종기 모인 건물들은 스마트폰에 하나로 담겼다.

군위 읍내 주변으로 각기 다른 종교가 한데 모이게 된 배경을 또렷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조선왕조 숙종 때인 1701년 군위향교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고,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1920년 군위성결교회가 길 하나 건너에 문을 열었다는 정도다.

군위성결교회가 유교적 색채가 강한 군위에 세워진 뒤로 다른 종교들이 잇따라 들어왔다는 점에서 교회는 종교 다변화의 문을 연 셈이다.

개교 초기 한옥을 예배당으로 썼던 교회는 일제강점기 동안 '동방요배(東方遙拜)'를 거부하며 갖은 고초를 겪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방요배는 일제 천황이 있는 동쪽으로 허리를 숙이는 일이다. 핍박받는 한국민에게는 치욕이었다.

1939년 10월 부임한 최헌 목사는 동방요배는 물론 신사참배, 시국강연 등 일제의 요구를 거부하다 끌려가 모진 고문과 취조를 받는다. 당시 보안법 위반죄로 1년 2개월간 징역을 살았던 최 목사는 교회로 돌아왔지만, 다시 체포돼 옥에 갇혔다.

그의 후임인 천세광 목사도 함께 옥고를 치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종교가 사이좋은 군위
종교가 사이좋은 군위

[촬영 양정우]

일제는 1943년 말 성결교회 일제 폐쇄령을 내리기에 앞서 성결교회 교역자들을 잡아뒀다가 석방했지만 두 목사는 예외였다. 최 목사는 1944년 출옥 이후 새로운 사역을 위해 탄광으로 떠났고, 천 목사는 교회 재건을 맡아 다시 초석을 놓는다.

1993년부터 군위성결교회에서 사역해온 허병국(60) 담임목사는 "최헌 목사 등이 일제강점기 때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벌인 점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안다"며 "오늘날까지도 다른 교회보다 많은 교인이 교회를 찾는 배경이 됐다"고 전했다.

이 교회는 목회자의 항일운동 외에도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예배당의 특징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920년 한옥에서 시작했던 이 교회는 1937년 제2예배당을 지어 하느님께 헌납한다. 2명의 목회자가 불의의 낙상사고로 목숨을 잃으며 완성한 예배당이었다.

단층 짜리 예배당 전면으로는 쌍둥이 같은 출입문이 두 개가 나 있다. 109㎡에 불과한, 크지도 않은 예배당은 왜 출입문을 2개나 갖게 됐을까.

교회 역사를 소개한 최석호 서울신학대 교수는 "당시에는 조선에 유교적 특색이 여전히 강했던 터라 예배당을 만들면서 남자와 여자가 각각 다른 출입문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을 뜻하는 남자는 음을 따라 왼쪽 출입문을 이용했고, 음을 뜻하는 여자는 양을 의미하는 오른쪽 문으로 교회를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교회는 지역 다문화가정의 한글 교실로 이 예배당을 활용하는 대신 나머지 예배당 2곳에서 예배를 올리고 있다. 제2예배당은 2007년 지역 문화재로 등록되긴 했지만, 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교회 지붕에는 십자가가 없다.

또 종탑을 잃어버린 종은 녹슨 채 교회 앞마당 한 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허 목사는 "십자가와 종을 복원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복원하기에는 관련 사료가 부족했다"며 "내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십자가, 종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왜 문이 2개일까
왜 문이 2개일까

[촬영 양정우]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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