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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끝에 어머니 살해 20대에 징역 7년…법원 "사회가 품어야"

송고시간2019-10-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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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때 왕따로 우울증…아버지 "아내도 선처 구할 것, 아량 베풀어 달라" 호소

재판부 "한 개인과 가족 문제 아냐…정신질환자 관리시스템 사회가 고민해야"

울산지방법원
울산지방법원

[연합뉴스TV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엄마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망상 끝에 흉기로 어머니를 살해한 20대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살인자로 돌변한 아들에게 아내를 잃은 아버지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비가 조금이라도 희망을 느낄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어 달라"고 선처를 구했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함께 관리했더라면 이 참혹한 결과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조현병으로 대표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한번 촉발되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남겼다.

판결문으로 본 피고인 A(22)씨 성장 과정과 그 가족의 삶은, 비극적인 이번 사건을 그저 한 개인과 가족의 문제만으로 돌릴 수 없도록 우리 사회에 무거운 교훈을 남겼다.

A씨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자상한 부모님은 모범적으로 성장한 형을 편애하거나 A씨를 차별하는 법 없이 마음에 병이 있는 A씨를 사랑으로 보살폈다.

A씨는 초등학교 때 '입 냄새가 난다'라거나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교실이나 화장실에서 폭행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가족이나 선생님이 걱정할까 봐 내색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중학교에서 교사의 관리로 폭행 피해는 없었지만, 왕따는 계속됐다.

이 무렵 A씨는 우울증과 회피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자신이 정신과 환자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약물치료를 거부하면서 약을 먹이려는 어머니와도 갈등을 빚었다.

고교 진학 무렵 교사는 '적응을 못 하고 따돌림당할 것'이라며 대안학교 진학을 권했다. 그렇게 대안학교에 입학했지만, 선배의 말에 겁을 먹고 등교를 거부하다가 결국 자퇴했다.

이후 A씨는 방에서 인터넷 게임을 하거나 사이트 게시판에 댓글을 달면서 일상을 보냈다.

부모님은 외출을 거부하는 A씨를 위해 한적한 곳으로 집을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아버지가 해외에 근무하고 형이 다른 지역 대학에 진학하면서, 약 1년 동안 대부분 시간을 A씨는 어머니와 둘이서 생활했다.

심각한 대인기피 증세에도 폭력성이 없었던 A씨는 "모든 문제는 엄마 때문이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욕설하거나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모의 권유로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A씨는 우울증과 신체추형장애(신체적 결함이나 외모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강박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역시 치료를 거부했다.

약을 제대로 먹지 않던 A씨는 6월 20일 오후 불안해하는 증세를 보인 끝에 흉기로 어머니를 살해했다.

A씨는 범행 직후 스스로 112에 "엄마를 죽였다"고 신고해 체포됐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사건에 대해 진술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얘기를 했는데, 간헐적으로 '약을 먹으면 이상해질 것 같았고, 엄마가 적으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A씨 아버지는 '믿을 수 없는 사고로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졌고, 지옥의 한 가운데로 내동댕이쳐진 심정이다.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동시에 잃어버린 무능한 가장이지만, 아들이 재기할 기회를 달라. 아내도 하늘나라에서 아들의 선처를 구할 것'이라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A씨 이모도 탄원서에서 '조카를 선처해 달라는 호소를 차마 드릴 수 없음에도 편지를 쓰는 이유는, 항상 언니 옆에서 칭얼대던 아이가 자신을 평생 보살펴 줄 존재를 스스로 떠나보냄으로써 받게 될 벌과 남은 형부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다. 언니도 제가 이 편지를 써서 아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랄 것'이라고 했다.

울산지법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치료감호를 명령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머니 생명을 앗아간 참혹한 범죄로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되거나 용서받을 수 없는 반사회적 범죄"라고 양형 이유를 밝히면서도,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당부를 덧붙였다.

재판부는 "합리적 이성과 자유의지를 전제로 형벌을 부과하는 전통적인 형사법 체계는 피고인처럼 자신이 무슨 일로 어디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책임능력 경계에 선 사람들에게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처럼 문제해결 법원 등을 통해 정부·시민·공공기관·지역사회·의료전문가·법원 등이 공조하는 시스템 도입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제안했다.

이어 "정신질환자 인권 보호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인권만을 강조해 이들을 방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역시 무책임한 처사다"라면서 "이런 끔찍한 범행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매우 놀라지만, 정작 놀라운 사실은 범행 원인과 대책에 대한 고민은 순식간에 휘발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만 남아 쌓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피해자를 생각하면 극심한 고통 속에서 비통하게 숨을 거둘 때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다른 정신질환자 가족과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이들을 치료하고 사회구성원으로 품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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