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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27년만에 소실된 오키나와 류큐국 심장 '슈리성'

송고시간2019-10-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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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남전·북전 등 불타…"류큐 신화 집약된 소우주"

일본 슈리성 화재 구경하는 사람들
일본 슈리성 화재 구경하는 사람들

(나하 AP=연합뉴스) 31일 일본 오키나와 나하의 인기 관광지 슈리(首里) 성(城)에서 연기와 불길이 솟아오르는 가운데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다. 슈리 성은 이날 화재로 전소했다. ucham1789@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31일 오전 주요 건물이 소실된 일본 오키나와 나하 슈리성(首里城)은 오키나와에 뿌리내렸던 류큐(琉球) 왕국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신화 연구자인 정진희 아주대 교수는 저서 '신화로 읽는 류큐왕국'에서 슈리성에 대해 "류큐 왕권의 신화적 논리가 축약되어 공간적으로 구현된 신화적 소우주"라고 평가했다.

슈리성 누리집은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성으로, 슈리성 역사는 류큐 왕국 역사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류큐 왕국은 1429년 성립해 1879년까지 450년간 존재한 나라로, 수도 이름을 '슈리'(首里)라고 했다. 오키나와섬을 중심으로 일본 열도 남서쪽에 있는 섬들을 지배했으며,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잇는 무역 거점으로 발전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2014년 '류큐 왕국의 보물' 특별전을 열어 국내에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슈리성은 류큐 왕족이 거주하는 왕궁이자 왕이 중요한 정치 행위를 펼치는 행정기관이었다. 또 각지에 있는 신녀(神女)를 통해 왕국 제사를 운영하는 종교 네트워크 거점이었고, 문화 중심지 역할도 했다.

일본 주민들 "'슈리성' 불타, 매우 슬프고 고통스럽다" 절규 (首里城, 沖繩)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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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은 나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있다. 이번 화재로 사라진 건물은 나무로 지은 정전(正殿), 북전(北殿), 남전(南殿) 등이다. 정전은 슈리성에서 핵심이 되는 건축물로, 조선 법궁인 경복궁과 비교하면 근정전(勤政殿)에 해당한다.

전체적으로는 성곽을 기준으로 안쪽인 내곽(內郭)과 바깥쪽인 외곽(外郭)으로 나뉜다. 내곽은 15세기 초반에 만들어졌고, 외곽은 16세기 중반에 완성됐다. 정전을 비롯한 성내 시설은 남북이 아닌 동서 축선을 따라 배치했다. 그래서 슈리성 정전은 남향이 아니라 서향이다.

슈리성 역사를 돌아보면 소실과 재건이 거듭됐다. 1660년에 소실돼 12년 뒤인 1672년 다시 지었으나, 1709년에 또다시 화마를 겪었고 1712년 재건했다.

류큐 왕국이 역사에서 퇴장하자 슈리성은 일본군 주둔지, 학교 등으로 사용됐다. 1925년 정전이 국보로 지정됐고, 1928년에는 대규모 수리가 진행됐다. 그러나 1945년 미군 공격으로 폐허가 됐고, 대학 캠퍼스로 이용됐다.

슈리성 복원은 18세기를 원형으로 삼아 이뤄졌다. 정전은 1989년에야 복원에 착수해 1992년 마무리했다. 2000년에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류큐 왕국의 구스쿠 유적지와 관련 유산'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하지만 슈리성 정전은 재건 27년 만에 다시 잿더미가 됐다.

정 교수는 "슈리성 정전은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실제로는 3층"이라며 "3층은 진귀한 보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다고 하는데, 강한 햇빛을 막고 높은 습도를 조절하는 일종의 다락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전 핵심을 2층 우후구이(大庫理)로 봐야 한다면서 "이곳은 국왕을 제외한 남성의 출입이 금지된 은밀한 내부로, 국왕과 여성 사제들이 매일 아침 동쪽을 향해 의례를 지냈다고 전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슈리성을 떠받치는 핵심적 사상은 태양왕으로 표상되는 신화적 사유"라며 "슈리성은 건축물 자체가 태양왕의 소우주, 즉 왕위의 상징이자 왕권의 공간적 표현이었다"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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