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日,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총리에게 배워야"

송고시간2019-10-31 13:16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총·균·쇠' 쓴 美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방한 기자간담회

"독재 국가 중국의 발전에는 한계 있어"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여러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지리와 환경의 관점에서 분석한 '총·균·쇠' 등의 저작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교수는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과 관련해 "일본은 피해 국가 폴란드를 방문해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빌리 브란트 전 총리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작 '대변동'의 출간에 즈음해 방한한 다이아몬드 교수는 31일 서울 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일 갈등의 해결책에 대한 질문에 "일본의 진솔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본에 인척들이 있기도 해 일본을 잘 안다는 다이아몬드 교수는 "중국과 북한이라는 공동의 라이벌을 두고 있는 한일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라면서 "독일과 폴란드의 화해 과정을 참고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그 이전까지도 독일의 지도자들은 쓰인 연설문을 읽으면서 폴란드에 형식적으로 사과하기는 했으나 1970년 빌리 브란트의 당시 총리가 바르샤바를 방문해 진심으로 잘못을 비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양국은 진정한 화해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해 12월 바르샤바의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 위령탑을 방문한 브란트 전 총리는 헌화하던 도중 연설문을 제쳐 놓은 채 한겨울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묵념하는 방식으로 사죄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 행동은 TV 중계와 현장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의 보도를 통해 전 세계에 전달됐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브란트의 사과는 자연적인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치로 인한 세계 정세의 불안에 대해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은 두 나라 사이에 낀 작은 국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한쪽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면서 "러시아와 서방의 틈에서 균형을 잘 잡아간 핀란드를 롤 모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있지만 중국은 독재체제를 택하고 있어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이번 세기가 중국의 세기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이나 한국 같은 민주국가에서는 지도자가 잘못된 일을 할 경우 국민이 반대하고 항의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선거를 통해 권력을 교체할 수도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은 과거 교육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켜 교사들을 논밭으로 내쫓는 과오를 저질렀고 경제 실패로 인해 3천만명이 굶어 죽는 참사를 겪었지만 이를 막을 만한 정치 시스템이 없었다고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적했다.

남북 문제에 관해 참고가 될 만한 사례로도 핀란드를 들었다. 핀란드는 위협적 이웃 국가인 러시아와 국가지도자급은 물론 최말단 공직자에 이르기까지 각 수준별로 끊임없이 대화함으로써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신뢰할 수 있게 돼 갈등이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핀란드와 러시아는 양국의 대화를 요란하게 홍보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내실있게 진행했다"면서 "북한과의 접촉이 늘 일회성에 그쳤으면서도 이를 홍보하는 데 주력해온 한국은 핀란드와 러시아의 역사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념 갈등에 대해서는 "한국에 와보니 미국과 마찬가지로 좌우의 이념대립이 심각해 놀랐다"면서 "이는 전 세계 민주국가에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갈등의 해소 방안으로 다이아몬드 교수는 "좌우를 떠나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치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지도자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세계 최고의 문자'인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날이나 광복절, 한국전쟁 종식 기념일 등에 이런 메시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근 발간한 저서 '대변동'에 관해 그는 "핀란드와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호주, 미국 등 내가 살아 봤고 잘 아는 국가의 위기 요인을 분석했다"면서 "이대로 간다면 개별 국가만이 아니라 세계가 위기에 빠지리라는 것이 나의 예측"이라고 밝혔다.

올해 82세인 그는 이어 "2050년이면 나는 생존해 있지 않겠지만 나의 쌍둥이 아들들은 여전히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세계의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대변동'을 썼다"고 설명했다.

아내와 자식들, 새, 뉴기니, 피아노 연주가 주된 관심사라고 한 다이아몬드 교수는 "학문적으로는 리더십에 흥미를 갖고 연구 중인데 재직하고 있는 UCLA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해 보고 그 반응을 봐가며 새 책을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인류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생리학 및 생물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다이아몬드 교수는 역사학·지리학·언어학·인류학·생물학·심리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국가간·문명간 비교 연구로 탁월한 업적을 쌓아 왔으며 연구와 저술의 공로를 인정받아 퓰리처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여러 해동안 한국의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총·균·쇠'와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 등 '문명대탐험 3부작'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6년 만에 '대변동' 출간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6년 만에 '대변동' 출간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받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31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신작 '대변동'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10.31 jin90@yna.co.kr

cwhyna@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