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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촬영소 22년만에 역사 속으로…마지막 촬영 현장을 가다

송고시간2019-11-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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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자산어보' 촬영 끝으로 폐쇄…"추억 많은 곳이었는데"

영화인들 "이제 어디서 영화 찍나" 하소연

'자산어보' 촬영 현장
'자산어보' 촬영 현장

(남양주=연합뉴스) 경기도 남양주종합촬영소 야외 세트장에서 '자산어보'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남양주=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경기도 남양주종합촬영소 야외 사극 세트장.

이준익 감독이 '슛! 액션'을 외치자 순간 적막이 흘렀다.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잡고 있던 배우 변요한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촬영 끝에 이 감독이 큰 소리로 '컷! 오케이!'를 외치자 세트장 곳곳에 있던 120여명 스태프가 일제히 손뼉을 쳤다.

설경구·변요한 주연 영화 '자산어보' 촬영 현장이다. 흑산도로 유배당한 정약전(설경구 분)이 섬 청년 창대(변요한)를 만나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며 조선 최초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찍는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끝으로 개관 22년 만에 완전히 폐쇄한다.

'자산어보' 촬영 현장
'자산어보' 촬영 현장

(남양주=연합뉴스) 경기도 남양주종합촬영소 야외 세트장에서 '자산어보'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 야외 세트장에서만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를 찍은 이 감독은 "한국 사극의 부활과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한 곳"이라며 "마지막으로 세트장 모습을 카메라에 담게 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야외 세트장은 조선 후기 천재 화가 장승업 일대기를 그린 임권택 감독 '취화선'(2002)을 찍기 위해 지은 곳이다. 그래서 '취화선 세트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9천140㎡(2천765평) 부지에 기와집과 초가 등 건물 61채와 골목길, 장터 등이 들어서 조선의 실제 동네 같은 느낌을 준다. 낡은 기왓장, 초가집 툇마루, 나무 기둥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정일성 촬영 감독의 조언에 따라 카메라와 인물 동선을 고려해 만든 곳으로, 당시 영화 제작비 60억원 중 22억원이 세트 제작에 투입돼 화제가 됐다.

'자산어보' 촬영 현장
'자산어보' 촬영 현장

(남양주=연합뉴스) 경기도 남양주종합촬영소 야외 세트장에서 '자산어보'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500m 분지에 들어선 남양주종합촬영소는 착공 7년 만인 1997년 11월 준공됐다. 촬영소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유는 당시 동시녹음 작업 등을 고려했기 때문. 각종 소음을 차단할 수 있고, 주변 경관이 수려한 데다 서울에서 이동 거리가 1시간 30분 이내라는 조건을 충족해서다.

전체 132만3천113㎡(약 40만 평) 부지에는 취화선 세트장을 비롯해 JSA 세트장 등 오픈 세트장과 7개 실내 스튜디오, 의상·소품 보관 창고 등이 들어섰다.

강우석 감독 '투캅스'를 시작으로 '공동경비구역JSA', '스캔들' '올드보이' '형사' '음란서생' '남극일기' 등 수많은 작품이 여기서 촬영됐다.

이곳을 운영하던 영화진흥위원회는 2013년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2016년 부영그룹에 촬영소 부지와 시설을 1천100억원에 팔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관람 체험 시설 운영을 종료한 데 이어 '자산어보'를 끝으로 촬영소 운영도 중단했다.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 제작의 산실인 남양주종합촬영소가 폐쇄된 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취화선 세트
남양주종합촬영소 취화선 세트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날 현장을 찾은 설경구는 "'취화선' 촬영 때 (최) 민식이 형을 만나러 온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이 야외 세트장의 처음과 마지막을 제가 함께하다니, 이게 무슨 운명인지 모르겠다. 추억이 많은 곳인데 없어진다니 속상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세트장 내 초가집을 가리켰다. "저 벽 좀 보세요. 나무가 썩어서 틈새가 생겼는데, 바람과 비, 눈에 씻긴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죠. 이런 멋과 분위기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설경구는 산 중턱에서 촬영소 전경을 바라보며 추억을 되짚었다. "'역도산'(2004)을 일본에서 찍었는데, 보조 출연료가 너무 비싸서 레슬링 경기 장면은 여기서 600명가량의 보조 출연자를 모아놓고 찍었죠. '타워'(2012) 때는 춘사관에서 늦잠을 자다 촬영에 늦을 뻔했어요. 그나마 숙소가 촬영장 안에 있어서 허겁지겁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죠."

남양주종합촬영소 취화선 세트
남양주종합촬영소 취화선 세트

[연합뉴스 자료사진]

촬영소 내 춘사관은 영화 관계자들이 묵는 숙소다. '사도' '구르물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등의 각본을 쓴 조철현 감독도 "춘사관은 저렴하면서도 시설이 깔끔하고, 조용해 시나리오를 집필하기에 좋은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사도' 시나리오를 쓸 때 새벽 2~3시에 큰소리로 직접 시연을 하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옆방에서 찾아와 '내일 임권택 감독님 새벽에 촬영해야 하니 주무셔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렇게 정이 흐르는 공간이었는데…"

그는 "선배 영화인들이 만들어놓은 세트장을 후배들이 쓸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며 "국내 세트장 가운데 가장 효용 가치가 큰 곳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인들은 '포스트 남양주 시대'를 걱정한다.

영진위는 부산 기장군에 부산종합촬영소를 짓는다는 계획이지만, 부지만 확정됐을 뿐 착공 일자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제 부산종합촬영소 건립부터 가동까지는 3~4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남양주종합촬영소 판문점 세트장
남양주종합촬영소 판문점 세트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 영화 관계자는 "현재 전국 여러 곳에 민간이나 방송국이 운영하는 촬영소나 스튜디오가 있지만, 남양주촬영소보다 이용료가 비싸고, 6개월가량 장기 촬영하는 방송을 더 선호한다"면서 "숙박시설 등 촬영소 밖 부대 시설 이용료까지 고려하면 제작비가 지금보다 크게 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준익 감독은 "애초 촬영소를 산 중턱이 아니라 평지에다 지었으면 20여년이 지난 지금쯤은 테마파크 수준의 세트장으로 확장됐을 텐데, 그 당시 행정가들 결정이 아쉽다"며 "앞으로 어디서 영화를 찍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현재 촬영소 내에는 입주 업체는 다 철수했고, 소품 약 40만점을 보유한 서울영화장식센터만 이전할 곳을 찾지 못해 남아있다. 영진위는 이 업체에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촬영소를 사들인 부영그룹은 해당 부지와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영은 촬영소 일부 건물 누수 현상 등을 이유로 잔금을 다 지급하지 않아 아직 소유권을 영진위로부터 넘겨받지는 못했다. 부영 관계자는 "촬영소 부지와 건물 활용 용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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