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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굶주림에 빵 훔친 30대, 외면하지 않은 우리 사회

송고시간2019-11-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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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훔치는 '청년 장발장'
빵 훔치는 '청년 장발장'

[광주 북부경찰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광주에서 포항까지 면접장으로 향하는 경찰 차 안에서 '청년 장발장' A(35)씨는 긴장감을 이기지 못해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해낼 수 있다'는 청년 장발장에 손 내민 포스코…정직원 채용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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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aG8jNPbqxY

동행한 형사는 그의 떨림을 느끼고 바삐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바다가 펼쳐진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A씨의 입에서는 "바다를 얼마 만에 본 줄 모르겠네요"라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빵을 훔치다 붙잡힌 30대 청년이 경찰, 대기업 등의 도움으로 다시 희망을 되찾았다.

기자가 그의 사연을 접한 건 지난달 22일이다.

경찰서 형사과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에게 담당 형사는 "젊은 놈이…"라고 꾸짖었고, 그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며 입을 닫는 장면을 봤던 것이 계기가 돼 그의 인생을 일부나마 들여다봤다.

A씨는 열흘째 제대로 먹지 못한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지난달 18일 동네 마트에 들어가 빵과 라면 등 식품만 한 바구니 훔쳐 나왔다가 날이 밝기도 전에 붙잡혔다.

배고픔에 빵 훔치는 30대
배고픔에 빵 훔치는 30대

[광주 북부경찰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허리를 다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던 A씨의 사연을 전한 기자는 기사 말미에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는 일은 오로지 그의 숙제로 남았다'고 적었다.

A씨를 다룬 기사에 달린 그를 꾸짖거나, 동정하는 수많은 댓글 중 '의지를 되찾는 일이 왜 오롯이 저 청년의 몫이냐, 우리 사회의 모두의 몫이다.'는 내용의 한 누리꾼의 꾸짖음이 기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청년 장발장의 생활을 꾸준히 취재하던 중 좋은 소식이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은 그를 검거한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과 형사들이었다.

조사를 마친 형사들은 그의 삶에 대한 의지가 희박함을 느끼고 상담부터 받도록 도왔다.

병원에 입원 시켜 지친 마음부터 회복할 수 있게 돕고, 입원비는 북구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지원을 받도록 했다.

퇴원할 그를 위해 먹고 잘 곳을 수소문하고,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도록 관련 절차도 밟아갔다.

'십시일반, 돕고 싶다'는 시민들의 문의도 경찰서에 빗발쳤지만, 북부서 형사과는 "일시적인 금전적 도움보다는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며 하나하나 정중히 사양했다.

절도 피해자인 마트 사장은 A씨의 사연을 듣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포스코
포스코

[연합뉴스TV 제공]

그러던 중 대기업 포스코로부터 "기사의 주인공에게 취업 기회를 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함께 이력서를 써 제출한 형사들은 경찰차에 태워 그와 함께 면접장으로 가기로 했고, 면접 복장은 광주시 예산으로 운영 중인 일자리 카페에서 빌렸다.

면접 당일인 지난달 31일 포스코휴먼스 회사가 있는 포항으로 향하는 길에 A씨는 "포항이든 광양이든 취업만 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고 말했으나, 몸은 떨고 있었다.

동행한 형사는 "떨려도 당당하게 의지를 보이라"고 면접장 앞에까지 함께 가 다독였다.

의지를 다지고 면접장에 들어간 그는 "장애 6급으로 허리가 아픈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를 큰소리로 외쳤고, 광주로 되돌아오던 그 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오는 4일 첫 출근을 앞둔 A씨는 "저를 도와준 이들이 실망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희망을 다시 쥐여준 우리 사회와 기업에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의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광주 북부경찰서 로고
광주 북부경찰서 로고

[연합뉴스TV 제공]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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