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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선수들, 폐쇄적 체육계 문화 바꾸어야

송고시간2019-11-0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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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우리나라 초중고생 운동선수 상당수가 성폭력 등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초중고교 선수 6만여명을 대상으로 인권실태를 알아보았더니 4%에 가까운 2천212명이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9천35명(15.7%)은 언어폭력을, 8천440명(14.7%)은 신체폭력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어린 초등학생조차 438명이 성폭력 피해를, 2천320명이 신체폭력 피해를 보았다. 이렇게 폭력을 당하고도 별다른 조처 없이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인권위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공적인 피해구제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코치들이나 선배 선수, 또래 선수들에 의한 폭력은 새롭게 밝혀진 일은 아니다. 올해 초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고교 시절부터 코치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체육계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외침이 잇달았다. 빙상계에서 다른 피해자가 나왔고 유도와 태권도 선수들도 피해 사실을 밝혔다. 성폭력 피해 사실 폭로가 줄을 잇자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훈련장이나 경기장, 라커룸 등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아직 별 성과는 없어 보인다.

성폭력을 포함해서 선수들에 대한 폭력이 빈번한 것은 우리 체육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겉으로 드러난 금메달의 영광 이면에는 체육계의 어두운 현실이 존재한다. 모든 국민이 즐기는 체육이 아니라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된 엘리트 체육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 합숙 훈련에 들어가 폐쇄된 환경 속에서 도제식 훈련을 받는다. 코치와 선수의 관계는 코치가 선수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주종의 권력 관계로 흐르기 쉽다. 자신의 종목을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선수 생활을 지속하지 못할까 봐 폭행을 당해도 참아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용기를 내서 신고한다고 해도 묵인과 방관, 은폐와 '솜방망이' 징계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폐쇄적 성격 탓에 선수만 2차 피해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피해를 보아도 많은 수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접고 참고 그냥 넘어가게 된다.

인권위는 보호 체계를 정교화하고 합숙 훈련을 없애며, 체육 특기자 제도를 재검토하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를 정례화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강압적 지도체제와 훈련방식을 당연시하는 체육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손보지 못하면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체육계 내부의 반성과 각성을 끌어내고 고질적인 폐쇄적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온 국민이 국제대회 우승과 금메달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지금처럼 국가 주도의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이 지속한다면 폭력을 비롯한 체육계의 병폐가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연 엘리트 체육이 지금 시대에 맞는가.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고 체육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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