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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은 우연히 우리 삶을 작동시킨다

송고시간2019-11-1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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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유정문학상 편혜영 '호텔 창문'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죄책감은 우연히 우리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는 삶의 행로를 좌우한다. 올해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편혜영의 '호텔 창문'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다.

누구나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고, 실제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그 사건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당할 때가 있다. 그래서 결국 직접 하지 않은 일에 부채 의식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불가피한 경우에 부닥친다.

편혜영은 이 단편소설을 통해 이러한 죄의식의 아이러니를 고찰한다. 여러 사정상 큰 집에 얹혀살아야 했던 주인공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큰 집 사촌 형 덕분에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다.

"얹혀사는 주제에"라며 늘 자신을 위협하고 억눌렀던 사촌 형은 함께 물에 빠졌을 때 주인공이 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디딤돌 역할을 한다. 이런 역설은 우연이었지만 평생 주인공에게 죄책감으로 작용한다. 큰 집에서 사촌 형의 부재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주인공 몫이었다.

성인이 된 주인공은 사촌 형의 열아홉번째 기일에 참석하지 않고 사촌 형 친구를 만난다. 그에게서 한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 이야기를 듣는데, 원인이 자연발화로 나중에 판명됐는데도 지인이었던 한 직원이 실화 또는 방화를 일으켰다는 의심 속에 해고됐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묘하게 주인공의 부채 의식과 오버랩한다.

이런 대화를 나누던 도중 마침 근처 호텔에서 불이 난다. 주인공은 화염에 휩싸인 호텔이 사촌 형의 죽음으로 죄책감에 뒤덮인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긴다.

죄책감은 우연히 우리 삶을 작동시킨다 - 1

최근 6년 만에 단편 소설집을 낸 편혜영은 국내 최정상급 서스펜스 소설가로 자리를 굳힌 이야기꾼이다.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쓸고 지난해 미국 셜리 잭슨 상(최고의 호러·서스펜스·미스터리물에 주는 상) 장편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도서출판 은행나무출판사는 '호텔 창문'을 표제로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펴냈다.

편혜영의 표제작 외에도 김금희 '기괴의 탄생', 김사과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김혜진 '자정 무렵', 이주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조남주 '여자아이는 자라서', 최은미 '보내는 이'까지 6편 수상 후보작이 함께 실렸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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