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장르의 비빔밥 국악판타지 '붉은 선비'

송고시간2019-11-20 06:30

이 뉴스 공유하기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 조정

국립국악원 제작 '붉은 선비' 리뷰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국립국악원이 제작한 '붉은 선비'는 국악판타지를 표방한 작품이다. 국악과 판타지를 엮어놓은 조어처럼 '붉은 선비'는 다양한 장르를 마구 뒤섞었다. 동양의 옛날이야기에 서양의 고전이 스며들고, 신화의 세계에 현실의 이야기가 끼어든다.

현장 학습을 온 지홍과 학생들. 즐거운 한때를 보내지만, 갑작스레 산불이 일자 가까스로 대피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화염 속에 갇힌 흰 사슴을 발견한 지홍은 망설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지홍이 실종됐다는 소식, 그리고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 영산은 오열한다. 영산은 반드시 남편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때마침 그의 앞에 득도한 고승이 나타나 팔모야광주를 전해주고 표홀히 사라진다.

'붉은 선비'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들어봄 직하다. 저승으로 떠난 '임'을 찾는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그리스비극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등에 많은 빚을 진다.

영산은 남편을 찾아 나서기 위해 이승에서 저승으로 향하고, 지홍은 아내 영산을 만나기 위해 저승에서 이승으로 향한다. 이 수렴의 방향성이 극을 추진하게 만드는 주요 연료다.

신화에서 빌려온 이야기 구조 덕분에 관객들이 친숙하게 극에 몰입할 수 있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뮤지컬, 창극, 판소리, 연극 등 다양한 장르가 산재하다 보니 장르에서 파생되는 장점도 있다.

'붉은 선비'
'붉은 선비'

국립국악원 제공

학생들과 선생님이 어울리는 첫 장면은 '그리스' 같은 하이틴 뮤지컬 느낌을 주는데, 이는 국악이 주는 무거움을 덜어내는 데 일조한다. 절창도 있다. 흰색 옷을 입은 무당이 노래를 부를 때는 인생을 많이 산 사람의 깊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아닌가. 문제는 스토리텔링이다. 전반적인 이야기 힘이 부족하다 보니 여러 장점이 이야기 속에 오롯이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국악계는 관객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그야말로 몸부림치고 있다. 창극을 만들고, 급기야 국악 뮤지컬이라고 할 '국악 판타지'라는 것도 만들었다. 하지만 장르의 '합종'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장르를 뒤섞는다고 괜찮은 작품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는다. '붉은 선비'는 국악계에 뛰어난 스토리텔러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상기하는 작품이다.

국립국악원은 '붉은 선비'를 함경도 망묵굿에서 불리는 신화를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판타지 음악극이라고 소개했다. 오는 23일까지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한다.

'붉은 선비'
'붉은 선비'

국립국악원 제공

buff27@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